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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요 Mar 26. 2021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동화 같은 SF

김초엽 작가의 SF소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온라인 모임에는 딸랑 4명이 모였다. 그 중 다 읽은 사람이 2명, 덜 읽은 사람이 2명. 오늘 모임에는 왜 이렇게 참석률이 저조할까 하는 발제자의 질문으로 시작했으나, 모든 소설이 꼼꼼하게 소환된 보람찬 시간이었다. 


1. 책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요? 호불호가 갈리는 책인 것 같은데요...

정 _ 기대가 컸던 책이라 읽을 때보다는 읽고 난 뒤가 더 좋았던 책이에요. 읽을 때는 진입장벽이 있고 내가 과학을 잘 모르는데다 남녀 성별이나 나이 구분도 없는 이상한 이름들 같은 것들이 싫었지만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책이었습니다.

포 _ 잔잔하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줘서 좋았어요. 구입해서 가지고 있을만한 가치가 있어요.

윤 _ 저는 한 작품만 읽었지만 좋았고요, 야근만 없었으면 다 읽었을 것 같습니다. SF는 주로 영화로 봐서, 소설을 처음 읽었는데 좋았어요.

옥 _ SF동화 같았어요. 상상력을 자극하고, 윤리적인 문제의식을 담고 있고, 서술체가 부드럽고, 마무리가 동화적이라서요. 


2. 가장 좋았던 단편은 무엇인가요?

옥 _ 공생가설, 스펙트럼

정 _ 공생가설, 감정의 물성,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나의 우주영웅에 관하여 

우 _ 공생가설


공통적인 의견은 첫 작품으로 '순례자들은 왜 돌아오지 않는가' 보다는 다른 작품이 나았을 거라는 의견이었다. '순례자들..'은 진입장벽이 높고, 서술이 길어서 첫 작품만 보고 이 책을 덮어버렸을 사람들이 많았을 것 같기 때문이다.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에 대해서 좋다는 의견과 별로라는 의견이 나뉘었는데, 옥은 그 할머니가 애초에 가족을 따라가지 않은 것이 이해가 가지 않는다 했고, 윤과 정은 일하다 보면 그럴 수 있다고, 하필 타이밍이 그렇게 될 때가 있다고 적극적으로 안나를 변론했다. 윤은 아무리 시골 오지라도 하루에 한번은 버스가 다니는데 슬렌포니아를 버린 것인가? 거기 사는 사람들은 어떡하라고? 왜 우주선이 가지 않나?를 궁금해했다. 그에 대해선 비용이 너무 커서 그렇다는 옥의 대답이 있었고, 정은 현실에서도 그런 예는 무수히 찾아볼 수 있으며, 용산참사 후에 개발하지 않고 놔둔 땅을 비롯 그렇게 버려진 곳은 너무나 많다고 했다. 옥은 안나 한 명 때문에 거기를 부수지 않고 놔둔 것이 비현실적이라고 했는데, 정은 부수는 비용이 들 경우 그냥 놔둔다고, 안나를 봐줘서 놔둔 게 아니라 방치한 거라고 했다. 윤은 창동역 앞 15년전 짓다만 건물이 여전히 방치되어 있다는 이야기를 하며 그 부분을 이해했다.  

'공생가설'을 읽고 메리포핀스를 떠올렸다는 정은, 메리포핀스가 키우던 쌍둥이 아이들이 자기들 만의 말을 하며 새와 동물들의 말도 알아듣는데 어느 날 새가 평소처럼 이야기해도 아이들이 못 알아듣자 새가 "쟤들도 컸어."하며 떠나던 장면이 있다고, 이 소설은 메리포핀스에서 착안한 것 같다고 했다. 포는 언젠가 꾸었던 인류의 탄생과 죽음 이후에 관한 꿈이 생각나는 소설이었다고 했다. 우는 여기에 나오는 우주씨앗가설을 찾아봤더니 실제로 있는 가설이었고, 내용을 보니 영화 [프로메테우스]의 첫 장면이 생각났다고 했다. 윤은 아이 때는 자연에 가까우니까 자연이 재미가 없고, 그래서 만화, SF 같은 게 좋고, 어른이 되면 자연에서 멀어지니까, 자연으로 돌아가고 싶어서, 꽃사진 찍고, 등산 다니는 거 아닌가 싶다고 했다. 

'나의 우주영웅에 관하여'를 읽으면서 우리는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박사 생각을 많이 했다. 고산이라는 최초의 우주인이 별 문제 없이 그대로 갔다면 기회가 없었을 이소연. 기밀을 빼내는 짓을 하고도 잘 하려다 그랬다는 쉴드를 쳐주고 용서받았던 남자와 훌륭히 임무를 수행하고 왔지만 구설수에 오르고 배신이니 매국이니 욕을 먹었던 여자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재경이모는 여성에게 두번째 기회를 준 여자이자 몸이라는 한계를 벗어나는 사람이라는 점에서 매력적이었다. 

3. SF를 좋아하시나요? 어떤 SF를 좋아하시나요?

포 _ 고등학생 시절 아이작 아시모프의 소설을 읽으며 SF에 눈 떴어요. [파운데이션]의 완결을 못봐 아쉽습니다. 지금 보면 재미없을 것 같거든요. 영화는 [토탈리콜]과 [블레이드 러너]부터 시작했는데, [공각기동대] 도 충격이었고, 어릴 적에 [혹성탈출] 마지막 부분 보고 무서워서 울었습니다.ㅎㅎ 요즘은 드라마가 괜찮은 것 같아요. [블랙미러] 같은 거 잘 만들었죠.

정 _ 저는 SF를 좋아하지는 않습니다만 읽은 SF소설 중 좋았던 것은 [나를 보내지마](가즈오 이시구로), [타워](배명훈), [보건교사 안은영](정세랑) 등입니다. 영화는 [마션]과 [그래비티]를 재밌게 봤는데, 완전 우주SF는 싫어하지만 현실과 연결시켜 놓은 부분이 그럴 듯 하면 좋아합니다. 대체로 정세랑의 소설처럼 현실 기반에 일부만 SF인 걸 좋아하고요, 그런 의미에서 박혜란 작가의 드라마들(피노키오, 너의 목소리가 들려)을 좋아합니다. 

윤 _ 저는 SF를 좋아하는데, 거의 대부분 영화로 봤습니다. [마션], [인터스텔라], [그래비티], [가디언스 오브 갤럭시], [스타워즈], [보건교사 안은영] 등. 책으로 읽은 건 [타워] 하나인 듯.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는 SF보다는 판타지를 좋아하는 것 같아요. [해리포터] 류요.

옥 _ 저는 SF 영화를 좋아했는데, 영화는 사건 중심으로 돌아가니 윤리의식이 세부적으로 드러나지 않잖아요? 그냥 적은 나쁜 놈 이런 식이라, 소설을 더 많이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프로메테우스]를 좋아하는데, 지금은 신에게서 삶의 의미를 찾을 수 없는 시대잖아요? 그걸 외부에서 찾을 수 있다는 게 두근두근했어요. 희망적인 답은 아니지만 뭔가 우리가 모르는 게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어요. 

우 _ 내가 가장 좋아했던 SF 영화는 단연 [스타워즈] 시리즈인데, 과거형으로 표현한 건 에피소드가 그만 좀 나왔으면 싶어서요. ㅎㅎㅎ (그래도 나오면 어쩔 수 없이 보게 되지만) 이외에도 많은 SF 영화를 봤는데, 지금 기억나는 건 [그래비티]. 넓은 상영관에서 혼자 봤었는데 긴장감 오졌구요, 산드라 블럭도 좋았어요.  


SF는 주제의식 없이 권선징악, 나쁜 놈은 처벌한다는 식이라 이번 소설이 주제의식이 잘 담겨 있어 좋았다는 의견이 있는 반면, SF야말로 세계관과 주제의식이 첨예하게 빛나는 장르가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SF의 스펙트럼이 넓다 보니 각자 다른 SF를 소비해서 생기는 차이가 아닌가 싶다.

 4. 이 소설의 주제의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옥 _ 최근 이다 때문에 떠오른 AI의 윤리의식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이다의 경우, 사용자의 혐오를 AI가 그대로 학습한다면, AI의 개발사가 아닌 사용자나 대중에게 책임이 전가될 가능성도 있구요. 기술이 발달한다고 차별이 없어지지는 않으며 오히려 유투브 알고리즘처럼 '필터 버블(인터넷 이용자가 특정 정보를 편식하게 되는 현상)'을 강화할 것 같은 생각도 들어요. 딥머신 러닝은 특정 부류의 사람들이 가진 가치관을 강화하는데, 그 특정 부류가 가장 권력있는 사람들이라면? 이런 것들을 생각하면 누가 어떤 생각으로 개발하느냐에 너무 많은 게 달려있는데, 지금 개발중인 프로젝트에는 그런 문제의식이 없어서 아쉬워요. 그런 윤리적인 문제를 관리하는 기관이 필요한데, 우리 현실은 개인 회사에 자체적으로 맡기는 수준이니까 미래가 두렵죠.

(이에 대해서 엄마인 윤은 AI의 학습이 아기를 기르는 것과 비슷하다고 봤다. 집에서 부모가 하는 말을 아이들이 그대로 쓰고, 부모의 세계관이 아이의 세계관이 되는 것처럼. 정은 그런 것들이 인터넷 안에서 이루어져 얼마나 다행이냐며 히틀러 시대에는 혐오로 인해 전쟁이 벌어져 사람들이 죽어나갔는데 그보다는 가상세계에서 그런 일이 일어나는 편이 낫지 않나 했다. 포는 그렇게 미래를 두려워할 필요 없을 것 같다며, 핵전쟁이 안 일어나고 있는 거 보면 경쟁관리가 일어나고 있는 것 아니겠냐 했다. 예를 들어 트럼프가 환경보호보다는 악화하는 산업을 하지만 한편으로 유럽에선 전기차가 대세가 되는 것 같은 것들.)

포 _ 지구 이후의 삶을 만들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예전의 SF는 미래의 가능성에 대해 이야기했는데 요즘은 벗어날 수 없는 부분을 고민하고 있는 것 같아요. 그래서 대안이 없는, 데우스엑스마키나를 기다리는 끝맺음만 있는 것 같아요. 새로운 행성이나 신인류 같은. 

정 _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사람 사는 세상은 다 비슷하구나, 같은 고민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5. 가장 좋았던 묘사나 생생한 장면을 그림으로 그리거나 표현해 봅시다. 

감정의 물성에 나왔던 이모셔널 솔리드를 그린 정.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의 안나가 버려진 우주정류장에서 기다리는 장면

옥 _ 이 책의 표지 그림이 '스펙트럼'과 '공생가설'에서 묘사하는 풍경과 맞닿아 있다고 느꼈어요.  

포 _ '스펙트럼'의 행성을 묘사한 부분이 좋았는데, '프로메테우스'의 행성과 비슷하지 않을까 상상했고, 거기 시공간이 달라 할머니는 10년이지만 지구에선 40년일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윤 _ 나는 '스펙트럼'의 행성이 가오갤의 행성일 거라 상상했는데...

우 _ 88p에 희진이 "그럼 루이, 네게는 저 풍경이 말을 걸어오는 것처럼 보이겠네." 했을 때, 우와, 노을을 언어로 읽을 수 있다니! 놀라웠고요, 네 번째 루이가 희진을 보고 어색하게 웃는 표정이 궁금했어요. 


이 후에도 비누를 만드는 윤에게 감정의 물성을 기반으로 향까지 들어가는 비누를 만들어 달라 주문했고, 그렇다면 우울은 어떤 향이고 분노는 어떤 향이냐는 말들이 나왔다. 아쿠아블루, 우디, 흑연, 심지어 마라향까지 나왔다. ㅋㅋ  '관내분실'에 나오는 영상화된 도서관 같은 묘지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나눴다. 죽은 자에 대한 기억을 잊기 싫은 사람과 잊힐 권리에 대해서 옥신각신하다가 다들 도서관 같은 답답한 곳보다는 공원이 낫다는데 의견을 모았다. 포가 우울 감정 공원이 있어, 그 공원에 갔다오면 우울감이 사라지는 그런 곳이 있으면 좋겠다고 해서 모두의 박수를 받았다. 얼른 개발해보시길!


2021년 3월 20일 

우리가 빛의 속도로 갈 수 없다면 (김초엽|허블)

참석자 : 옥, 윤, 정, 포,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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