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학을 전공한 여성과학자가 청담동 성형외과에서 상담원으로 일하면서, 성형수술(양악)을 받고, 그 경험과 성형수술의 사회적인, 또 과학적인 의미들을 발견하며 쓴 책이다. 과학자가 쓴 에세이면서, 성형수술에 대한 논문이다 보니 약간 두서가 없고, 혼란스럽다는 단점이 있지만, 우리나라에서 유일무이한 책이다.
아무도 성형수술을 겪어보지 못한 5명이 모여 성형수술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봤다.
책에 대한 감상, 이 책을 읽고 성형에 대해 달라진 점.
영 _ 책을 읽으며 내가 알게모르게 성형수술 한 사람을 차별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나도 형편이나 상황이 됐다면 성형수술을 할 수도 있었을텐데, 안했다는 이유로 그런 사람들을 비난하거나 낮춰보는 시선이 있었다. 이 책을 읽고 '신체를 조정해서 나를 향상시킬 수 있다면 선택의 자유가 있어야 한다'는데 동의하게 되었다.
정 _ 모르던 많은 것들을 알게 되었다. 얼굴에서 인중의 길이가 중요하다는 것, 미용의학회와 성형의학회가 따로 있다는 것 등등.
광 _ 성형외과는 무조건 수술을 많이 하라고 권하는 줄 알았는데, 과잉진료를 하지 않는다는 게 의외였다. 성형외과 의사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좋아졌다. 그렇게 과잉진료를 안하는 이유 중에는 부작용에 대한 부담감도 작용하는 게 아닌가 싶다.
예 _ 사실 관심없는 분야였다. 하지만 생각해보니 나도 10년 동안 압구정과 신사동으로 출퇴근을 하며 모녀가 함께 양악수술하고 붕대 감고 내려오는 장면, 방금 수술한 것 같은 환자가 술 마시러 가는 전화통화하는 장면 등을 목격했었다.
불쾌하거나 유쾌한 대상화를 당한 경험, 내가 했던 대상화
예 _ 대학 때 복학한 선배가 만나자고 해서 만난 적이 있는데, 카페 들어가는 순간 내 온 몸을 아래위로 스캔하는 게 느껴져서 불쾌했다. 여자만 대상화를 당한다고 생각했는데, 광고회사 취업해서 서울 오니 어느 날 사장님이 "어제 강남 모 고급 클럽에 갔는데, 부잣집 사모님이 내가 들어가자마자 아래위로 스캔해서 무서워서 구석에 찌그러져 있었다"고 해서, 남녀의 문제가 아니구나 싶었다.
정 _ 나도 대상화는 여자만 당하는 줄 알았다가 서울 와서 여자들도 남자 외모 이야기를 많이 하길래 그게 아니라는 걸 알게 됐다. 나는 예쁜 얼굴이 아니라, 파괴된 얼굴에 대한 두려움이 있다. 선풍기 아줌마나 화상 환자들을 평점심을 가지고 보지 못한다. 그럴 때 내가 대상화하는구나 싶다.
영 _ 회사에서 60~70대 임원들이 자꾸 나한테 "40대처럼 행동하라"고 요구한다. 40대가 꼭 그래야 한다는 법이 어디 있으며, 왜 나를 자꾸 그런 식으로 규정하는지 모르겠다. 기분이 안좋다.
라 _ 다른 누구보다 엄마한테 대상화 당하는 것 같다. 어릴 때는 내가 엄마의 악세서리인가 했다가 요즘은 엄마는 내가 자궁으로 보이나(더 늙기 전에 결혼해야 애를 낳을 수 있다고 하니까) 싶다. 그에 비해 수영 강습을 할 때, 수영 강사님이 나의 몸을 오로지 운동하는 고깃덩어리로 대할 때, 신체접촉을 당하지만 아무렇지 않다. 이게 유쾌한 대상화가 아닐까 싶다.
사회가 요구하는 여자/남자다움을 갖추기 위한 노력과 시행착오의 경험
정 _ 여자는 살림을 잘하고, 남을 잘 도와야된다는 요구에 취약한 사람인데, 스무살 때 어느 목사님 댁에 갔다가 사모님이 부엌에서 우리를 위해 요리하고 계실 때 도와줘야 되나 좌불안석하던 나머지, 같이 간 오빠가 손목시계 받아달라고 툭 친 걸, '너는 왜 부엌에 가서 요리를 돕지 않니?'로 받아들이고 벌떡 일어나 부엌에 간 적이 있다. 그때 내게는 손님이라는 정체성보다 여자라는 정체성이 (집에서 하도 일을 안한다는 소리를 들어서) 더 크게 느껴진 것 같다.
영 _ 회사에 임원들이 대부분 60~70대 남자들이다. 그들과 밥을 먹으러 식당 가면 숟가락 챙기기, 국 푸기 등을 내가 자연스럽게 하게 되는데, 그 사실이 짜증난다. 회사에 과일이 들어오면 깎아서 내는 것도 하는데, 그런 날은 집에 들어오면 기분이 안좋다. 그런 걸 고마워하는 게 아니라 너무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니까.
광 _ 평소에는 그런 게 없는데, 10년 만에 만난 형이 "여자가 여자다워야지, 남자가 남자다워야지, 남자는 자고로 듬직하고 풍채가 좋아야지" 같은 소리를 끊임없이 했다. 내가 살빠졌다고 그러는 것 같은데, 내가 보기엔 그 형이 배가 나오고 뚱뚱해진 건데... 그래서 느끼는 게, 여자다움과 남자다움으르 강요하는 건 세대의 문제 같다. 그 형 세대가 마지막 인 것 같다.
예 _ 결혼하고 난 뒤, 회사에 출근했는데 대표가 집에서 남편 밥 잘해주냐, 집 정리는 잘하냐 같은 헛소리를 해댔다.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라 _ 요즘 고민에 빠져 있는데, 내가 나의 성향이라고 생각했던 것들이 실은 내 안에서 나온 게 아니라 사회적인 요구에 대한 반항심에서 나온 게 아닌가 싶어서다. 이를테면 열심히 운동하는 것, 요리 싫어하는 것이 "여자는 근육 생기면 안돼, 여자는 요리 잘해야 돼" 같은 요구에 반항하려다보니 이렇게 된 게 아닌가 싶은 것이다.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과 다시 태어난다면 가지고 싶은 얼굴
영 _ 자기 몸을 좋아하는 사람의 몸을 나도 좋아하게 된다. 즉 자신의 외모를 자신있게 드러내고 당당한 태도가 아름다움을 만드는 것 같다. 이를테면 이슬아 작가의 경우, 예쁜 외모는 아니지만 그런 특징을 당당히 드러내는 태도가 아름답다. 하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한지민.
정 _ 외꺼풀의 동양적인 외모를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김연아, 뉴진스의 민지 같은 얼굴. 또 피부가 좋은 동안 얼굴인 문근영, 고현정 등도 좋아한다. 하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이영애.
라 _ 자연스러운 아름다움을 좋아한다. 혜박, 한혜진 등이 해당한다. 하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블랙핑크의 제니.
예 _ 생기와 에너지가 생긴 형태보다 아름다움을 좌우한다고 생각한다. 회사 다닐 때 힘들어서 우울했던 언니가 회사 때려치고 생기가 생기자 아름다워보이는 게 그 예다. 하지만 다시 태어난다면 에밀리 클라크(왕좌의 게임. 물론 이분도 생기 있음).
광 _ 남자들은 단순하다. 예쁜 게 예쁜 거다. 나는 눈, 코, 입은 서양미인을 좋아하고 얼굴형과 피부 등은 동양미인을 좋아한다. 어릴 때 미스코리아 김성희가 예쁘다고 생각했고, 인도여자들도 예쁘다. 쌍꺼풀은 포기 못한다. 다시 태어난다면 차은우.
이 마지막 질문들에서 우리는 엄청 웃었다. 내가 생각하는 아름다움을 이야기할 때는 생기, 태도, 동양적인 미모 등을 이야기했던 사람들이, 막상 내가 어떤 얼굴로 태어나고 싶으냐니까 전형적인 미모의 연예인들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ㅋㅋㅋ 성형수술에 대한 더 나아간 이야기를 하지 못하고(성형수술을 해본 사람이 없었다), 연예인들 성형수술이나 외모에 대한 이야기만 한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도 있었다. 하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끌림은 사람의 본능이라고 생각한다.
비록 이 책이 좀 혼란스럽고 어수선했지만, 자신의 몸을 실험도구로 써가며 성형에 관한 책을 낼 수 있는 과학자가 세상에 얼마나 되겠나를 생각하면, 의미있는 책이었다. 더 나은 다음 책이 나오길 바라지만, 쉽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