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 모두들 예약은 Reservation이라고 배우지 않았나?
_진짜 멋진 할머니가 되어버렸지 뭐야, 김원희 저, 달
#카타니아
이탈리아 본토 여행을 마치고 시칠리아로 넘어왔다.
7박 8일 동안 카타니아, 라구사와 시라쿠사 이렇게 세 개의 도시를 이동하게 되는데 엄마가 24인치 캐리어를 끌고 다니는 게 아무래도 마음에 걸렸다. 로마 숙소를 예약하기 전에 캐리어를 맡기고 시칠리아를 다녀와도 될는지 문의를 하니 고맙게도 흔쾌히 그러라고 하였다. 필요한 짐만 내 캐리어에 넣고 나머지는 엄마 캐리어로 옮겼다.
시칠리아에서는 기차는 연착이 잦고 버스보다 이동 시간도 많이 걸린다고 했다. 엄마와 나는 기차를 선호하지만 이런 이유로 버스를 타고 이동하기로 하였다. 카타니아 버스터미널 매표소에 가서 라구사로 가는 표를 두 장 달라고 하였다. 직원은 오늘 라구사로 가는 버스가 없다고 하였다. 전혀 예상치도 못 한 일이라 당혹스러웠다. 정신을 가다듬고 이유를 묻자, 직원은 이탈리아어로 이야기를 하다가 단어 하나를 강조하며 마무리하였다.
"Strike."
내 머릿속에는 야구가 맴맴 떠돌았다. 답답한 마음에 재차 이유를 물어보았다. 직원은 야속하게도 같은 대답을 하였다. 스트라이크를 검색해 보아도 도통 연관성을 찾을 수 없었다. 라구사까지 가는 다른 방법을 묻자 기차를 타고 가면 된다는 명료한 답변이 돌아왔다. 나도 모르는 바는 아니지만 기차를 타면 이동 시간이 더 길어져서 체력적으로 부담이 될 것이다. 이 모든 게 그의 탓은 아니었지만 남의 속도 모르고 무심하게 던지는 말 한마디에 약이 올랐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 보면 하루 더 카타니아에 머물고 다음 날 라구사로 가도 좋았다. 물론 당일 숙소를 구하고, 라구사 숙소에 상황을 알려야 하는 번거로운 과정이 따를 테지만 말이다. 금전적인 손해도 떠안아야 한다. 당시에는 라구사로 어떻게 해서든 가겠다는 생각만 붙잡고 있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길 건너편에 있는 버스승강장으로 갔다. 버스승강장에 있는 직원에게 라구사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한다고 하니 기다리라고 했다. 역시나 매표소 직원이 사정을 모르고 잘못된 정보를 알려준 게 틀림없었다. 함께 기다리던 승객들이 하나 둘 떠나가고 버스는 오고 가지만 라구사행 버스는 오지 않았다. 기약 없는 기다림에 점점 지쳐갔다. 엄마는 직원에게 가서 다시 한번 더 확인을 해보라고 했지만 나는 조금만 더 기다려 보자고 하였다. 엄마는 의사소통을 원활하게 할 수 있다면 벌써 물어봤을 거라며 답답함을 토로하였다.
고민 끝에 라구사 숙소 주인에게 연락을 해서 자초지종을 설명한 후, 직원과 통화를 부탁드렸다. 직원에게 쭈뼛쭈뼛 다가가 휴대폰을 내밀었다. 통화가 이루어지는 짧은 시간 동안 중대 발표를 기다리는 수험생 마냥 가슴이 두근 반 세근 반 뛰었다. 파업으로 오후에 버스를 운행한다고 하였다.
Strike는 파업이었다. 스크라이크 한 방 크게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