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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방식 자체가 더 매력적인 도시

by 경희
그냥 관광으로 베를린에 오면 좀 시시하게 느껴질 것이다. 브라덴부르크문 같은 관광 명소는 있지만, 그보다 사람들 삶의 방식 자체가 더 매력적인 도시다.

_양식당 오가와 p98, 오가와 이토 저, 권남희 역, 위즈덤 하우스



#바르셀로나

버스 배차 간격이 꽤 긴 편이라 버스를 놓치고 나면 출근 시간 맞추기가 어렵다. 무엇보다도 아침 일찍 일어나 부지런히 움직인 시간이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버스정류장까지 건너야 하는 횡단보도는 총 2개다. 첫 번째 횡단보도를 건너 두 번째 횡단보도에 다다르기도 전에 이미 파란불이 들어와 도착을 하자마자 빨간불이 되어버린다. 두 번째 신호까지 무사히 건너려면 거의 경보 수준으로 걸어야 한다. 그렇게 해서 어렵사리 횡단보도를 건너면 금방 빨간불이 되어버린다.

시청에 전화를 걸어 이런 불편한 사항을 이야기하였더니 신호체계를 보행자에게까지 맞출 수 없다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너무도 당연하다는 듯한 직원의 태도에 적잖이 놀랐다. 보행자의 권리가 무참히 짓밟힌 듯해 상당히 불쾌하였다. 현수막에 적혀있던 지능형 교통시스템 신호 체계 개선 작업에 대해 문의하니 담당 부서 직원과 통화를 해 보라고 했다.

앞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은 두 번째 직원분은 그렇지 않다며 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주셨다. 다만 신호체계를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려우며, 법에 관련 규정이 있는지 확인해보겠다고 하였다. 횡단보도 신호로 민원이 들어오기는 처음이라고 하였다. 나는 내년에 작업을 하실 때 직접 걸어서 확인을 해 달라고 부탁드렸다.

긴 여정에 문득 떠오른 곳이 바르셀로나였다.

횡단보도를 건너 다음 횡단보도에 다다르면 바로 파란불이 들어왔다. 그리고 신호가 없는 횡단보도에서 머뭇거리고 있으면 운전자들이 먼저 지나가라고 손짓을 보냈다.

확답을 받지는 못 하였지만 내년에는 즐거운 마음으로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기를 바라본다.



#콜마르

초등학교 1학년 때부터 자전거를 타고 옆 마을에 있는 학교에 다녔다. 자연스레 자전거는 내 삶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되었다.

직장 생활을 한 지 10년이 되어가지만 아직 운전을 하지 않는다. 직장이 위치를 옮기기 전에는 자전거를 타고 종종 출근하였다. 강변 자전거 도로를 타고 가다가 큰 도로를 한 번 건너면 사람들 통행이 거의 없는 인도를 달렸다. 도심을 벗어난 교외의 들은 계절 따라 매번 다른 즐거움을 안겨 주었다. 봄에는 새로 돋아나는 잎사귀의 연둣빛과 벚꽃의 분홍빛이 너울거리고, 가을에는 파아란 하늘 아래 누렇게 익은 들판이 넘실거렸다.

직장이 도심으로 위치를 옮기고서는 자전거를 타고 출근하는 게 썩 내키지 않았다. 매캐한 자동차 매연을 뚫고 지나는 회색빛의 길에는 수확할 수 있는 즐거움이 없었다. 사방팔방 얽혀 있는 길은 주행을 할 때 신경 써야 할 부분이 많다. 도로를 달리자니 운전자들의 눈총이 따갑고, 인도를 달리자니 보행자를 위협하는 성가신 존재이다. 자전거는 법적으로는 차로 분류되지만 그 위상은 참 애매하기만 하다.

자전거에 대한 애정이 크다 보니 여행을 가면 자전거가 눈에 들어온다.

콜마르 역 앞은 콜마르 하면 떠오르는 동화 같은 모습과 달리 무미건조하였다. 캐리어를 끌고 걸어가는데 자전거 도로가 나타났다. 얼마나 신이 났던지 얼른 카메라를 꺼내 들었다. 투박한 인도 위에 흰색 선이 무심하게 그어진 것뿐이었지만 그 선이 있는 세상과 없는 세상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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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적지를 가리키는 표지판에는 걸어서 몇 분이 걸리는지, 자전거로 몇 분이 걸리는지가 적혀 있었다. 도보와 자전거가 존중받는 이 도시를 향한 사랑이 피어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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