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주행거리 36330km

2024년 7월 25일

by 경희

운전을 한 지 3년 하고도 1개월이 지났다. 오늘자 주행거리는 36,330km.

그간의 행적을 떠올려보며 기억에 남는 몇 가지 일들을 적어본다.


01


비가 제법 많이 내렸다. 하나 둘 비상깜빡이를 켜기 시작했다.

마치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아이구, 비가 많이 오네요. 조심하세요.'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도착하시기를 바랍니다.'

든든한 아군을 얻은 듯하여 긴장이 풀렸다. 나도 비상깜빡이를 켜고 반짝이는 자동차 행렬에 동참하는데 이게 뭐라고 가슴 한편이 뜨거워졌다.


비상깜빡이를 떠올리니 생각하는 일이 하나 더 있다.


02


뻥 뚫린 도로를 신나게 달리고 있는데 어라, 앞에 보이는 상황이 심상치 않다.

차들이 쭉 늘어서 있고 뒤에 있는 차량들은 비상깜빡이를 켜고 있다. 사고라도 난 건가.

속도를 서서히 줄이고 가다가 서다가를 반복하다가 아하, 이유를 알게 되었다.

합류하는 지점으로 정체가 불가피한 구간이었다. 운전자가 자칫 파악하지 못하고 충돌할 수 있으니 보내는 안전 신호였던 것이다. 어머나, 가슴이 뭉클하다.



뭐니 뭐니 해도 행동반경이 넓어졌다.


03


버스를 타고 가면 환승을 해야 해서 족히 1시간은 걸렸는데, 차로 20분이면 간다.

'이렇게 가까운 거였구나. 그동안 나는 무얼 한 거지.' 현타가 왔다.


04


수영을 배워볼까 했는데 웬걸, 때 맞추어 동네에 있던 수영장이 사라져 버렸다.

이제 동력을 갖추어 어디든 갈 수 있으니, 가장 마음에 드는 수영장을 등록하였다.

수영을 마치고 따뜻한 탕에 들어가 몸을 녹이면 그리 좋을 수 없다. 음악을 틀고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말해 뭐 해, 너무너무 행복하다.

안 되겠다. 요가 등록 기간이 끝나면 수영장에 가야겠다.


05


대학생 때 내일로 기차 여행을 하며 나중에 차가 생기면 엄마를 모시고 좋은 데 많이 다녀야지 했는데 그 로망을 이루었다.


구례에 쌍산재도 가고, 청송에 가서 약수삼계탕도 먹고, 밀양에 가서 케이블카 타고 천황산 등반도 하고, 단양에 가서 유람선도 타고, 공주에 가서 금동대향로도 보고, 군위에 '리틀 포레스트' 촬영장도 가고, 포항에 '갯마을 차차차' 촬영장도 가고.........


엄마, 우리 놀러 많이 많이 다니자.


지구 한 바퀴가 약 4만 km라고 하니 그날 저녁에는 소소한 만찬을 즐겨야겠다.

함께 해 주어 고맙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

keyword
작가의 이전글하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