뭘 해도 되는 날(2/2)

2025년 3월 11일 하이델베르크(2025.02)

by 경희

테라스로 가서 하이델베르크의 전경을 내려다보았다. 종소리가 울려 퍼진다. 참말로 평화롭다. 같이 사진 찍어드릴게요, 저희도 같이 찍어주세요. 한국어로 건넨 말에 뒤돌아보았다. 엄마랑 같이 찍은 사진이 별로 없었는데 반가운 제안이다. 이쪽도 예쁠 것 같아요. 무릎을 구부리고 자세까지 낮추시며 열과 성의를 다하셨다. 한두 컷으로 끝나기 마련인데 이거 참 몸 둘 바를 모르겠다. 동행 분의 휴대폰을 넘겨받았는데 카메라 화면에 일본어로 적혀있었다. 두 분 다 젠틀하고 지적인 분위기를 풍기셨는데 세미나에서 오랜만에 만나 잠깐 시간을 내어 오셨을지도 모른다. 혼자서 그 짧은 순간에 상상해 보았다. 그리고 두 분의 우정을 가득 담겠다는 사명으로 최선을 다해 사진을 찍어드렸다.


점심을 먹으러 슬슬 내려가야겠다. 버스가 자주 있을 것 같지는 않아 보인다. 하염없이 버스를 기다리기보다는 푸니쿨라를 타고 가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저기 앞에 걸어서 내려가는 무리가 보였다. 어쩌지.... 에라, 모르겠다. 걸어서 내려가보기로 하였다. 얼마 가지 않아 앞선 가던 무리는 주차해 둔 차에 올랐다. 당황스러웠지만 뒤에도 걸어오는 무리가 있어서 마음이 놓였다. 성큼성큼 걷다 보니 성에서 내려다보이던 멋진 집들이 눈앞에 나타났다. 푸니쿨라를 타고 오르내렸다면 이런 즐거움을 마주 할 기회를 놓쳤을 테다.


식당에 도착했는데 내부가 깜깜하다. 왜 하필 오늘 문을 닫아야만 했을까. 허탈하지만 받아들이는 수밖에. 애써 마음을 다 잡고 다른 식당을 검색하고 있는데, 엄마가 가게 안에 놓인 입간판을 살펴보라고 하셨다. 보통 그러하듯 메뉴가 적혀있으려니 싶어 심드렁하게 눈을 돌렸다. 화살표와 몇 미터가 눈에 들어왔다. 잠깐만, 이거 옆으로 오라는 말이잖아. 초와 조명으로 은은하게 밝힌 아늑한 실내와 사람들의 말소리가 마음을 간지럽혔다. 여기에서 하는 식사라면 돈을 쓰는 게 전혀 아깝지 않아. 서버 분들도 유쾌해서 기분이 좋았다.


즐겁게 식사를 마치고 올드브릿지로 갔다. 초입에 관광객들에게 사랑받는 원숭이상이 있다. 거울을 만지면 어떠하고, 머리를 갖다 대면 어떠하다고 했는데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냥 다 하자. 엄마가 머리를 쏙 집어넣고 포즈를 취하니 지나가던 한 무리의 관광객들이 뜨거운 반응을 보였다. 갑작스레 쏟아진 관심에 엄마는 활짝 웃으셨다.


구시가지 메인거리는 관광객들로 활기가 넘쳐흘렀다. 상점 구경을 마치고 나오니 노랫소리가 들려왔다. 스피커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 분명 사람이 부르는 소리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가니 긴 머리의 젊은 여성 한 분이 극 중 인물에 몰입하여 노래를 하고 있었다. 어떻게 저 작은 몸에서 이렇게 큰 소리가 나올 수 있을까. 어쩜 음색이 저리도 맑고 청아할까. 그녀의 노래를 듣고 들뜬 마음이 사람들의 얼굴에 오롯이 드러났다. 자전거를 타고 지나가던 행인이 잠깐 멈추어 서서 지갑을 열었다. 나도 바로 옆에 있는 마트에 가서 물을 사고 잔돈을 만들었다. 비록 길거리이지만 무대에 선 마냥 심취하여 노래하는 모습이 멋져서 응원하고 싶었다. 녹록지 않은 현실 따위 가뿐히 즈려밟고 언젠가 꼭 무대에 오르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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