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겆이

압력밥솥

by 산돌림



씽크대에 그릇들이 가득하다

밥을 담기도, 국과 찌게를 담기도했던 각양각색의 그릇들이 제법 설겆이에 대한 욕구를 불러일으킨다


정말 네이밍을 잘했다고 생각이드는

퐁퐁을 수세미에 퐁퐁 뿌린다

적당한 물기를 첨가하고 부드러운 거품이 생기면

기름때와 양념이 묻은 그릇들을 가열차게 닦기 시작한다


지금 나의 설겆이는

맞벌이를 해서 살림에 보탬이 되어주는

마나님을 향한 고마움의 표현이자

이쯤되면 바가지를 한번 긁을때가 되었지싶어

미리 선수를 치는 나의 뛰어난 촉?이 시킨일이기도 했다


거품옷을 입은 그릇들과 수저,젓가락이 한쪽에 수북히 쌓인다

수세미의 퐁퐁끼를 수돗물에 말끔히 헹군후 그릇들의

거품을 제거하기 시작한다

이 부부분이 마나님께 집중조련을 받은 설겆이의 백미일게다

전에는 수돗물에 대고 대충 거품만 없앴는데

수세미로 꼼꼼히 닦아낸다

이윽고 뽀드득 소리가 날 정도로 그릇들이 깨끗해진다

다음 식사를 위해 준비가 된 그릇들이 건조대에 진열되고 이제 남은건 설겆이 중의 설겆이,설겆이의 꽃!

30센치 프라이팬과 쿸쿠밥솥의 내솥이었다


가뿐히 프라이팬을 손잡이까지 닦아내고

이번엔 내솥을 집어든다

밥풀떼기들이 달라붙어 여간해선 떨어지지 않는다

물을 부어 충분히 불려두었건만

밥풀의 고착화는 생각보다 심했다

퐁퐁 옆에 철수세미가 보인다

박박! 닦아 내리라!

밥풀과의 대결이 시작된다


쓱싹쓱싹 소리마저 경쾌하다

뒤에서 마나님이 다가 오는게 느껴진다

이봐요 마나님 나 잘했죠?

그 많던 설거지 다 해놓았구요

이 밥솥 닦으면 밥까지 하려고 하오

우쭈쭈 해주세요

내심 이런 기대를 하며 마지막 밥풀을 닦아내는 그 순간

"앜! 내솥을 철수세미로 닦으면 어떡해?

코팅 다벗겨 졌잖아! 대체 왜 그리 생각이 읎어!!

아이구 못살아 내가! 진짜!"


나의 설겆이는 나의 빛바랜 바램과 함께 그 의미가 사라져버렸고 난 생각없는 놈이 되어 싱크대 앞에서 쫓겨나야 했다

그저...철수세미를 한번 들었을 뿐인데


더 얄미운건 늦잠을 자고 부스스하게 일어나 방문밖으로 얼굴을 내민 아들노미의 눈빛이었다

그눈빛은 이렇게 말하는듯 했다
그러게 왜 시키지도 않은 설겆이를 해서,

이럴까봐 난 절대 설겆이 안해요..요따우 눈빛


이번 설겆이는 일타삼피로 내게 패배감을 안겨줬다

밥풀과 마나님의 잔소리와 아들의 눈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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