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리클레스 by 도널드 케이건
삼성, 교보 등이 후원한 '올재'에서 발간된 책들을 이전에 즐겨 읽었는데, 이번에는 신세계 그룹의 '지식향연'에서 번역하여 출판한 '페리클레스'를 읽어보았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 민주주의가 당연시되고 있지만, 사실은 그것은... 가장 희귀하고, 가장 예민하고 꺾이기 쉬운 꽃들 가운데 하나이다.
기원전 500년경 인구 25만 정도 규모의 페리클레스 시대의 아테네 인들은 민주주의를 창조하여 사회를 이끌어가는 정치체계로 채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민주주의 정치체계는 2세기를 못 버티고 사라졌습니다. 아테네에 민주주의가 존재했었던 때를 제외하면 군주제가 대세였고, 미국 독립 혁명과 프랑스혁명 이후에야 현대적인 민주주의 정치체계가 자리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 책에서는 페리클레스가 어떤 사람이고 어떤 했던 일들을 했는지에 대해서 자세하게 이야기하고 있으며 아테네의 민주주의의 탄생과 번영, 몰락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폴리스 polis, 즉 그리스의 도시국가는 수백 개가 동시에 있었고, 각 폴리스는 서로 경쟁하는 관계였습니다. 대표적인 폴리스로 아테네, 스파르타가 있었고 주변 강대국으로는 페르시아가 있었습니다.
이 책의 주인공인 페리클레스는 소유한 재산이 많지 않았던 아테네의 귀족이었습니다. 시민이었던 그는 장군이기도 하였습니다. 그는 육군과 해군을 지휘했고, 아테네 민주주의를 확대하고 실현한 개혁가이기도 했고, 공개적인 조약들 public treatiees과 비밀 협정들을 협상했고, 공금 public finance을 관리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민회 popular assembly of citizens의 승인 없이는 공금을 집행할 수 없었고, 현대의 대통령이나 총리와는 달리 정당 기구도 없이 정치를 했었습니다. 매년 재선을 위해 나서야 했고, 그때마다 공개 검증과 정치적 도전에 순응해야 했습니다.
이 책을 읽어내려 가는데, 기원전 5세기경 일을 연구했던 내용들을 정리했다고 하기에는 너무 디테일해서 깜짝 놀랐습니다.
예를 들어
공식적으로 아테네는 1년을 10개월로 나눴는데, 민회는 각 개월마다 네 번의 공식 회합을 가졌고, 필요한 경우 특별 모임을 수시로 소집했다. 조약의 승인이나 기각, 전쟁의 선포, 장군들의 군사작전 임명, 그들이 지휘할 군대와 물자의 결정, 공직자의 임명이나 면직, 도편 추방제를 실시할 것인지 말 것인지, 종교에 대한 문제, 상속에 관한 문제 등 을 다뤘다. 각 개월의 두 번째 모임에서는"원하면 누구나 어떤 주제로 민중에게, 사적이든 공적이든 상관없이, 연설을 할 수 있었고", 세 번째와 네 번째 회합은 무엇이든 상관없이 "모든 종류의 안건"을 논의했다
이 외에도 공무직을 수행하는 공무원을 뽑는 방법, 외교 사안에 대한 논쟁과 거수투표를 통한 다수결의 의사결정 과정, 민 형사적 고소 고발 등의 법적 절차에 대한 내용도 있었습니다.
폴리스 국가 간의 동맹과 배신, 반란의 과정들에 대해서도 나와 있어서 춘추전국시대가 연상되기도 했습니다. 저자는 고대 아테네가 겪어야 했던 상황을 아테네를 미국에, 스파르타를 소련에 비유하여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상황을 통해 설명하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사회와 비교하면서 생각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습니다.
페리클레스의 감동적인 연설도 담겨 있었습니다.
매일 여러분 도시의 힘을 우러러보며 그녀의 애호가가 되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이 그녀의 위대함을 인정한다면, 이 모든 것이 자신들의 임무를 알고 명예심에 위대하게 행동한 용맹한 사람들이 이룩해 놓은 것임을 생각하십시오.
분명히 우리의 행동들을 좋아하지 않는 자는 이 모든 것에서 결점을 찾으려고 할 것이나 우리처럼 뭔가를 이루고 싶은 자는 그것을 자신의 목표로 삼을 것이고, 그것을 달성하지 못하는 자들은 우리를 질시할 것입니다.... 하지만 위대한 목표를 달성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상대의 악의를 감내하는 것이 맞습니다. 증오라는 것이 오래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지금 빛나는 순간은 영원히 기억될 미래의 영광입니다. 미래의 영광에 대한 선경지명을 갖고 지금 명예롭게 행동해야 합니다. 그런데 사실 열정을 다해 노력해야 이 둘을 얻을 수 있습니다.
그리고 책의 뒷부분에는 아테네와 스파르타인과의 전쟁의 과정에 대해 소개하고 있습니다. 2차 세계 대전의 윈스턴 처칠은 적에 대한 불굴의 의지로 연합국을 승리로 이끌었지만, 비슷한 길을 걸었던 페리클레스는 아테네를 승리로 이끌지 못하고 사망하였습니다. 그리고 페리클레스 사망 이후 아테네의 민주 정체가 쿠데타로 인해 중단되고, 다시 민주정체의 복구되는 과정에서의 혼란, 페리클레스 이후 탁월한 리더의 부재로 인해 전쟁에서 아테네는 패배하였습니다. 저자는 스파르타에 패배한 아테네 인들이 마주한 상황을, 2차 세계 대전이 한창이던 1940년대 독일 나치에게 점령당했을 때 프랑스인들이 직면했던 상황에 비유하면서 설명하였습니다.
방대한 내용들을 짧은 분량으로 소개하였습니다만, 저도 몇 번 더 읽어 봐야 이 책에 담겨있는 내용들을 제대로 소화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요즘에도 많이 쓰는 단어인 아크로 포리스 Acropolis, 아고라 Agora, 심포지엄 symposium에 대한 내용도 포함되어 있어 재밌었습니다.
마지막으로 프랭클인 D. 루스벨트 대통령이 사망한 이후 아돌프 벌 [루스벨트 대통령 재임 당시 국무부 차관보]이 한 말을 소개하며 마무리하겠습니다.
위대한 사람들은 두 개의 삶을 가지고 있는데, 하나는 그들이 현세에서 활동하는 동안 존재하는 삶이고, 두 번째는 그들이 죽는 날 시작해 그들의 생각과 구상이 영향력을 유지하는 한 계속되는 삶이다.
페리클레스의 두 번째 삶은 25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게 아닐까 생각됩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