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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쉐임풀 Oct 13. 2022

1. 부끄럽다는 것, 수치스럽다는 것

1화


1.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은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일단 일상생활 속에서 우리가 부끄럽다거나 수치스럽다는 등의 표현을 사용하는 경우를 생각해보자.


일단 처음 보는 어른에게 인사하기를 꺼려하여 부모의 뒤로 피하는 아이가 느끼는 감정은 수줍음으로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그런가 하면, 사람들이 많은 곳에서 자신을 소개해야 하는 자리에서 실수를 범한 사람이 겪는 느낌도 부끄러움 일 것이다.

좀 극적인 사례를 들자면, 지인들 앞에서 자신의 치정이 밝혀진 채 집에 돌아와 혼자 있게 된 한 사람이 느끼는 감정도 어떤 의미에서 부끄러움이라 부를 수 있을 것 같다. 뭐 엄밀히 말하면 굴욕감이나 모멸감 등으로 표현할 수도 있을 것이다.


우리 한국말에서 관련 용례를 찾아보았다. 수줍음, 창피, 염치, 체면, 후안무치, 망신, 무안, 주책, 철면피, 인면수심 등 정말 다양하다. 그러니까 우리가 부끄럽다는 하나의 표현을 사용한다고 했을 때도 사실 이 표현으로 포착할 수 있는 상황들은 꽤나 다양해서 공통점을 찾기 힘들 수도 있다는 말이다.


부끄러움 혹은 수치심(羞恥心, shame)이라는 이 감정을 둘러싼 우리의 모든 정서적 경험들을 하나로 꿰뚫는 개념적 정의를 내리는 것은 꽤나 어려울 것 같다. 사회학자 게오르그 짐멜(Georg Simmel)이 말한 것처럼, “우리 어법상 부끄러움의 영역에 포함되는 현상들은 워낙 다양하고 이질적이어서 오직 언어 표기의 공통성만 갖는다”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2.

진화론의 창시자로 잘 알려진 찰스 다윈은 동물과 인간을 비교 대조하는 연구과정에서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에 대한 매우 훌륭한 통찰을 오늘날 우리에게 제공하고 있다.

그는 이 감정을 경험했을 때 공통적으로 발생하는 인간의 신체 또는 행동의 변화를 포착하고, 이로부터 어떤 의미 있는 규정을 이끌어내려고 했다.




그는 인간이 겪는 수치심의 발현의 원인을 유전적 요인에서 찾는데, 특별히 얼굴의 홍조를 인간 진화과정에서 수치 감정을 표현하는 대표적인 증상 가운데 하나로 본다.

이런 접근에 따르면, 수치 감정은 이것만의 특수한 신체 변화를 수반하거나 그것에 의존하는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고유한 특색을 가지는 감정이다.  


하지만 얼굴이 붉어지는 현상만 가지고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이해하는 것은 부족한 것 같다. 가령 술을 마시면 얼굴이 붉어지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술에 거나하게 취한 사람들은 부끄러움이라는 감정을 좀처럼 느끼지 못하는 것 같다. 이런 접근은 수치 감정의 다채로운 양상을 드러내는 데는 유익할 수 있으나, 하나의 확실한 정의를 이끌어내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3.

이 감정에 관심이 있는 어떤 학자들은 나라나 지역별 언어를 분석하려고 했다. 이는 다양한 역사적 배경을 지닌 언어공동체 속에서 수치심이 어떤 맥락에서 표현되었는지 파악하게 되면 더 깊은 이해를 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일 것이다.

가령 독일어 표현 "Scham"의 어근 kam과 kem가 대표적이고, 고대 희랍어 aidōs과 aischron은 한국어 '수치심'에 대응하는 대표적인 언어적 표현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이 단어들이 성적인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인간 신체의 성징이 드러난 특정한 부분이 주는 힘과 그것을 은폐하고 터부시 했던 서구 고대인들의 태도를 읽어낼 수 있다.

이런 접근은 수치 개념에 대한 인류의 역사적 통찰과 관점들을 드러낸다는 점에서 유익하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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