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3] 조금 더 안으로, 이 도시의 결을 따라

숙소 주변의 골목부터, 카페에서의 준비, 그리고 대학에서의 첫 협력까지

by 신정호


아침 러닝 – 숙소 주변을 탐색하며 쉬어가는 날

오늘은 빠르게 달리거나 먼 곳까지 가지 않기로 했다. 지난 3일 동안 강도 높은 러닝을 했고, 조금은 몸을 회복할 시간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그렇다고 달리기를 쉬어버리기는 싫었다. 그래서 숙소 주변을 돌며 가고 싶은 곳들을 미리 살펴보는 탐색형 러닝을 하기로 했다.

코스를 정했다. 평소 가보고 싶었던 카페, 스테이크집, 그리고 작은 공원을 지나 숙소로 돌아오는 경로였다. 익숙해진 길을 따라 골목으로 접어들어 첫 번째 목적지로 향했다. 작은 주택가 공원에 도착하니 조용한 아침 분위기가 그대로 느껴졌다. 공원 한쪽에서는 청소하시는 분이 바닥을 물청소하고 있었다. ‘이렇게 아침 일찍부터 공원을 깨끗하게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기에, 이 도시가 이렇게 깔끔하게 유지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벤치에는 몇몇 주민들이 앉아 대화를 나누고 있었고, 한쪽에서는 치파를 파는 사람이 지나가는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장사를 하고 있었다. 한국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아침 시장의 모습과 비슷했다. ‘사람 사는 건 어디나 비슷하구나.’ 그렇게 조용한 아침을 보내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이곳에서 조금 더 자연스럽게 스며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원을 지나 La Cabrera 스테이크집으로 향했다. 한 번쯤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라 러닝 코스에 넣었다. 예상과 다르게 번화한 거리보다는 조용한 주택가 안에 자리 잡고 있었다. 문이 닫혀 있었지만, 내부가 살짝 보였다. 오래된 느낌이 묻어나는 공간이었다. 문 앞에 서서 이곳에서 스테이크를 먹는 모습을 상상해 보았다. 꼭 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좀 회복되면 제대로 즐길 수 있을 것 같았다.

돌아오는 길에는 뛰지 않고 천천히 걸으며 골목을 누볐다. 그래피티가 그려진 가게들이 많았고, 아침 햇살이 건물에 부딪혀 더욱 선명한 색을 띠고 있었다. 몇 장 사진을 찍고, 달리며 동영상으로 내 생각을 기록했다. 그렇게 골목을 따라 걷다가 숙소에 도착했다.


마이클과 마주쳤다. 아침에 나갈 때는 "Como estas?"라고 물었지만, 들어오면서는 새로 배운 "Todo bien?"을 써보기로 했다. 마이클이 반갑게 "Muy bien!"이라고 답하며 웃었다. "스페인어 연습 열심히 하네!"라고 격려까지 해주었다. 이런 짧은 대화가 나에게는 큰 성취감이었다. 이제는 스페인어를 더 열심히 연습해야겠다는 동기부여가 되었다.



서점 카페 방문 – 미팅 준비와 새로운 인연

오늘은 이번 여행의 중요한 일정 중 하나인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 공과대학 교수님들과의 교육 협력 미팅이 있는 날이다. 오후 5시 미팅을 앞두고, 사전 준비에 집중하기 위해 어제 방문했던 Libros del Pasaje 서점 카페로 향했다. 어제는 구글 맵을 따라갔지만, 오늘은 기억에 남은 이정표를 따라 자연스럽게 걸었다. ‘역시, 무엇이든 한 번 해보면 다음은 조금 더 수월해진다’는 생각에 미소가 지어졌다.

서점 문을 열며 익숙하게 직원과 인사를 나눴다. 이제는 자리까지 자연스럽게 찾아가며, 이곳이 나만의 작업 공간이 되어가는 기분이 들었다. 속이 좋지 않아 커피 대신 따뜻한 차를 주문하기로 했다. 스페인어 수업에서 배운 표현을 떠올리며 “Me gustaría té caliente.”라고 말했다. 직원이 다양한 차를 보여주며 고르라고 했다. ‘역시 배우길 잘했다. 언어는 배워서 써야 제맛이다.’

노트북을 켜고 약 3시간 동안 미팅 자료에 집중했다. 한국에서 진행한 교육 프로그램과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에 제안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꼼꼼히 정리했다. 그리고 아이스브레이킹을 위해 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경험도 슬라이드에 담았다. 아침 러닝 사진과 함께 ‘나는 이 도시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습니다’라는 메시지를 전하고 싶었다. 이곳을 작업 공간으로 택한 건 탁월한 선택이었다. 공간은 단순한 장소가 아니라, 사람을 몰입하게 하고, 영감을 준다.

작업을 마치고 시선을 돌리자 어제 보았던 한국인이 눈에 들어왔다. ‘이제는 내가 먼저 다가가자.’ 용기를 내어 인사를 건넸다.“한국 분이시죠? 어제 수업 받으시는 거 보고 오늘도 뵈면 인사드리려고 했어요.” 상대방도 반갑게 웃으며 응대했다. 미국으로 이주를 준비 중이며, 이곳에서 영어 수업을 듣는 중이라고 했다. 잠시지만 서로의 부에노스아이레스 생활 이야기를 나누며, 자연스레 연락처를 주고받았다. “다음에 꼭 함께 식사해요.” 짧은 대화였지만, 새로운 인연을 만들었다는 기쁨이 컸다.


서점을 나서며 마음이 따뜻해졌다. 오늘, 이곳은 단순한 작업 공간이 아니었다. 몰입, 준비, 그리고 새로운 인연까지 — 나는 이 도시의 일부가 되어가고 있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 미팅 – 도전, 교류, 그리고 기대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UBA)은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권위 있는 대학이다. 노벨상 수상자들을 배출한 이곳에서 미팅을 한다는 사실이 자랑스럽게 느껴졌다. 처음에는 공과대학 학장님과의 미팅이었으나, 학장님이 교육에 관심 있는 교수님들을 초대하겠다고 하시며 일이 더 커졌다. 준비는 더욱 철저해야 했다. 나는 교육 프로그램 자료를 꼼꼼히 다듬어 미리 교수님들께 발송했다.

미팅 장소로 향하는 버스에 오르며, 이제는 버스를 자연스럽게 타는 나 자신이 대견했다. 스페인어로 목적지를 말하며 요금을 결제했다. 거리가 멀어 요금은 700페소(약 850원)로 조금 높았지만, 충분히 충전해 둔 덕에 문제없이 이동할 수 있었다. 창밖으로 스쳐 가는 풍경 속에 국립미술관이 눈에 들어왔다. ‘다음에는 꼭 들러야지’라는 작은 다짐이 마음에 새겨졌다.

도착한 대학 캠퍼스는 신전을 떠올리게 하는 거대한 모습이었다. 조금 일찍 도착해 건물 외부를 구경하며 기념사진을 찍었다. 이곳에서는 볼을 맞대는 인사가 기본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를 반갑게 맞이한 여성 담당자와 자연스럽게 인사를 나눌 수 있었다. 로비에서는 오늘 미팅에 참석할 교수님들이 직접 나와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예상치 못한 따뜻한 환대에 마음이 설레면서도 긴장이 살짝 스쳤다.

1층 복도의 미로 같은 길을 지나 학장 사무실에 도착했다. 둥근 테이블에는 일곱 명의 교수님과 온라인으로 접속한 교수님들이 함께 자리해 있었다. 미팅 분위기는 예상보다 부드러웠다. 교수님들이 차례로 자기소개를 해주셨고, 나도 나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저는 달리기가 취미입니다. 그리고 이곳, 부에노스아이레스는 ‘좋은 공기’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죠. 달리기를 하는 사람에게 좋은 공기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이곳에 왔습니다.”

짧은 유머에 교수님들이 웃으며 공감을 표했다. 처음의 긴장이 사라지고, 부드러운 에너지가 회의실을 감쌌다. 유머는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를 줄여주는 가장 좋은 다리라는 것을 다시금 느꼈다.


이제 본격적인 발표에 들어갔다. 나는 창의성과 문제 해결을 주제로, 한국에서의 교육 경험과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에서 함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설명했다. 특히, 6년 전 과테말라에서 진행한 교육 영상이 교수님들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같은 스페인어권이라는 점 덕분에, 영상의 메시지가 더 직관적으로 다가간 듯했다.


발표 중에도 교수님들의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관심은 뜨거웠다. 교수님들은 특히 프로그램의 ‘지속 가능성’에 대해 깊이 있는 질문을 던졌다. 내가 떠난 후에도 이 프로그램을 어떻게 이어갈 수 있을지에 대한 고민이었다. 나는 온라인 협업과 정기적인 후속 방문 같은 방안을 제안했다. 논의 끝에, 먼저 2월 24일에 세미나를 열어 프로그램의 가치를 직접 보여주기로 합의했다.


미팅이 끝난 후, 교수님들과 일일이 기념사진을 찍었다. 모두가 활짝 웃고 있었다. 그 미소 안에는 서로에 대한 기대와 호감이 담겨 있었다. 건물을 나오며 스스로에게 말했다. ‘내가 정말 여기서 세미나를 하게 되다니.’ 신기함과 뿌듯함이 동시에 밀려왔다. 그리고 또 다른 감정, ‘이 만남이 또 어떤 새로운 길을 열어줄까?’ 하는 설렘이 가슴 한켠에 자리했다.



산텔모 시장과 하루의 마무리 – 소소함 속의 여운

부에노스아이레스 대학 미팅을 마친 후, 숙소로 바로 돌아가지 않고 근처에 있는 산텔모 시장을 들러보기로 했다. 시장 입구는 예상보다 소박하고 작았지만, 안으로 들어서자 다양한 가게와 음식점들이 한눈에 펼쳐졌다. 일부 가게는 평일이라 문을 닫았지만, 문을 연 가게들에서는 사람들이 음식을 즐기며 활기차게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한국의 시장과는 또 다른, 이국적인 풍경이었다. ‘이런 공간은 꼭 다시 찾아와야지.’ 그렇게 가볍게 둘러본 후 발걸음을 돌렸다.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는 길, 하루를 잘 보냈다는 만족감이 마음을 채웠다. 퇴근 시간이라 버스 안은 조용했고, 사람들은 창가에 기대어 하루의 피로를 씻어내고 있었다. 나도 그들처럼 창에 머리를 기대 잠시 눈을 감았다가, 다시 눈을 뜨면 바깥 풍경을 담았다. ‘내일은 또 어떤 일이 나를 기다릴까.’ 생각하며 잠시 설레었다.


남은 시간도 오늘처럼 충실히, 이 도시의 일부가 되어가리라 다짐하며,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의 네 번째 날을 마무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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