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요 광장에서 시작해 산텔모 시장과 라 보카까지, 도시의 일요일을 걷다.
일요일 아침, 달리기를 쉬고 걸어보다
처음으로 맞는 일요일, 오늘은 온전히 쉬기로 한 날이었다. 업무도 쉬고, 달리기도 쉬는 날. 그렇다고 아침 운동을 거른 것은 아니다. 평소처럼 운동화를 신었지만 오늘은 러닝 대신 산책을 하기로 했다. 일주일 동안 달리면서 스쳐 지나갔던 골목을 이번에는 천천히 걸으며 살펴보고 싶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일요일 아침은 어떤 모습일까 궁금했다.
거리는 예상보다 활기찼다. 주중 아침과는 다른 여유로운 리듬이 흐르고 있었고, 길거리에는 간단한 아침 식사용 빵을 파는 노점들이 자리 잡고 있었다. 작은 포장마차 앞에는 사람들이 모여 서서 빵을 먹으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고, 나는 그중 한 곳에서 치파와는 다른 형태의 동그란 빵을 하나 골랐다. 바삭한 겉면과 속에 얇게 썬 햄 같은 것이 들어 있는 간단한 빵, 가격은 2,500페소, 우리 돈으로 약 3,000원 정도였다. 한입 베어 물었을 때 특별한 감흥은 없었다. 바삭한 식감과 짭조름한 맛이 어우러졌지만, 그냥 한 끼 때우기 적당한 빵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빵을 들고 천천히 걸어가는데 스케이트보드를 손에 든 아이들이 무리를 지어 지나갔다. 가는 방향이 같아 함께 걷다 보니 어느새 맥도날드 앞에 이르렀고, 그중 한 아이가 다가와 사진을 같이 찍자고 했다. 망설일 것도 없이 "좋지!"라며 웃으며 응했고, 다 함께 사진을 찍었다. 아이들은 어디에서 왔느냐고 물었고, 틱톡을 하냐는 질문도 던졌다. 그들의 장난기 가득한 표정과 자연스러운 호기심이 유쾌했다. 짧은 대화를 나누고, 아이들은 스케이트보드를 튕기며 반대편 골목으로 사라졌다.
조금 더 걸으려던 차에 한 노숙자가 내 앞을 가로막으며 주먹을 내밀었다. 순간 움찔했지만, 그가 환하게 웃고 있는 것을 보고 나도 "Buenos días."라고 인사하며 주먹을 맞댔다. 그도 밝은 미소로 화답하며 지나갔다. 일주일 전이었다면 망설였을지도 모른다. 낯선 환경에서 나도 모르게 경계를 했을 테지만, 이제는 그저 자연스럽게 손을 내밀 수 있었다. 사람들이 걱정했던 것과 달리, 이곳에서의 일상은 생각보다 평온했고, 하지 말라는 것만 조심하면 괜찮을 정도로 안전했다. 어느새 이곳의 리듬 속에 조금씩 스며들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천천히 숙소로 돌아와 아침을 먹으며 오늘의 첫 번째 탐방지인 마요광장으로 향할 준비를 했다. 여유로운 걸음으로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일요일을 만나러 가는 길이었다.
마요광장, 역사의 숨결을 밟다
버스를 타고 약 20분을 이동하자, 넓은 광장이 눈앞에 펼쳐졌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중심, 마요 광장(Plaza de Mayo)이다. 관광객들로 붐볐지만, 현지인들도 적지 않았다. 사람들은 광장 벤치에 앉아 담소를 나누거나, 카사 로사다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이곳은 아르헨티나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들이 일어났던 장소로, 1810년 5월 25일 독립운동이 시작된 '5월 혁명'을 기념해 ‘5월 광장’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스페인어에서 ‘Mayo’는 ‘5월’을 의미한다. 이후에도 이곳은 독재 정권 반대 시위, 민주화 운동, 사회적 항쟁 등 수많은 역사적 순간의 중심지가 되어왔다.
광장의 중심에는 5월 피라미드(Pirámide de Mayo)가 서 있고, 대통령궁인 카사 로사다(Casa Rosada)와 대성당이 광장을 둘러싸고 있다. 1811년에 세워진 5월 피라미드는 아르헨티나에서 가장 오래된 기념비로, 독립운동을 기념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5월 피라미드의 울타리 안쪽에는 빼곡한 글씨가 새겨진 다양한 모양의 돌조각들이 놓여 있었다. 각각의 돌에는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처음엔 ‘그냥 장식인가?’ 싶었지만, 자리에 앉아 검색을 해보니 이 돌들은 1976년부터 1983년까지 이어진 군사 독재 정권 시절 실종된 사람들을 추모하는 기념물이었다.
아르헨티나는 16세기 초반부터 1816년까지 스페인의 식민지였다. 1810년 5월 25일, 이곳 마요 광장에서 ‘5월 혁명’이 일어나면서 독립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었고, 결국 1816년 7월 9일, 독립을 공식 선언했다. 그러나 독립 이후에도 군사 쿠데타와 독재가 반복되었고, 특히 1976년부터 1983년까지의 군사 정권 기간 동안 약 30,000명의 시민들이 실종되었다.
수많은 가족들이 사랑하는 이를 잃었지만, 군부는 실종자들의 행방을 철저히 감추었고, 공식적인 사망자로 기록된 이들은 거의 없었다. 가족들은 이들을 "Desaparecidos(실종자)"라고 부르며, 그들의 존재를 기억하기 위해 끝없는 투쟁을 이어왔다. 마요 광장에 놓인 이 돌들은 바로 그 실종자들의 이름을 새기고, 그들을 영원히 기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었다.
광장을 가로질러 가니, 5월 광장 어머니회(Madres de Plaza de Mayo)의 상징이 눈에 들어왔다. 광장 바닥에는 하얀 그림이 원을 그리며 새겨져 있었는데, 이는 독재 정권 시절 강제 실종된 아이들을 찾기 위해 어머니들이 머리에 두르고 행진했던 하얀 손수건을 형상화한 것이었다.
어머니들은 1977년부터 매주 목요일 오후 3시 30분, 이 광장에서 머리에 하얀 손수건을 두르고 원을 그리며 행진을 이어왔다. 처음에는 군사 정권의 탄압을 받았지만, 어머니들의 용기 있는 행동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의 지지를 받으며 인권 운동의 상징이 되었다. 그들의 행진은 단순한 시위가 아니라, 사라진 아이들을 잊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꼭 한 번 시간을 맞춰 다시 방문해봐야겠다.
하얀 손수건이 상징하는 것은 단순한 천 조각이 아니었다. 그것은 실종된 아이들의 기저귀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어머니들이 머리에 두른 손수건이 처음에는 아이들의 기저귀를 의미했다는 사실을 떠올리니, 그들이 느꼈을 절망과 상실감이 더욱 깊이 와닿았다. 사랑하는 자식을 잃고도 포기하지 않은 어머니들의 목소리가, 수십 년이 지난 지금도 이 광장 위에서 계속되고 있었다.
‘이곳은 단순한 광장이 아니라, 누군가에게는 평생을 함께하는 기억의 장소구나.’ 나는 한국의 민주화 운동과 독립운동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고 있을까? 아르헨티나 사람들에게 마요 광장이 그러하듯, 우리에게도 비슷한 의미를 가진 공간이 있을 것이다. 광주 5·18 민주묘지, 독립기념관, 서대문 형무소 같은 곳들. 한국에 돌아가면, 우리나라의 역사를 더 가까이에서 느껴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광장에서 한참을 서 있다 보니, 한 외국인이 다가와 사진을 찍어달라고 했다. 카메라를 받아 들고 찍어주었더니, 이번엔 그가 내 사진도 찍어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게 되었고, 그는 미국 LA에서 온 교수라고 했다. 혼자 여행을 하고 있고, 나와 마찬가지로 이 도시를 더 깊이 알아가고 싶어 한다고 했다.
나는 다음 일정으로 산텔모 시장을 방문하고 나서 라 보카 지역을 가볼 예정인데 함께 동행하지 않겠냐고 제안했다. 그는 흔쾌히 동의했고, 조금 후에 만나 같이 가기로 약속했다. 유명한 관광지라고만 생각했던 광장에서 이곳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나니, 이 장소가 훨씬 더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제 다른 곳에서는 어떤 이야기들을 듣게 될까? 여행은 바로 이런 것이다. 한 걸음 더 다가갈 때, 보이는 것들이 달라진다.
산텔모 시장, 마테차와 예술이 있는 거리
일요일마다 마요 광장에서 산텔모 시장까지 이어지는 골목에서는 대규모 벼룩시장이 열린다. 골목에 들어서는 순간 끝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길게 늘어선 상점들이 눈앞에 펼쳐졌다. 거리 곳곳에 자리 잡은 가게들은 수공예품, 빈티지 포스터, 가죽 제품, 그림, 골동품까지 정말 다양한 물건들을 판매하고 있었다.
가장 눈길을 끈 것은 마테차(Mate)를 마시는 컵과 빨대였다. 마테차는 남미에서 즐겨 마시는 전통적인 허브차로, 마테(Mate) 잎을 뜨거운 물에 우려내어 마시는 차이다. 마테차를 마시는 컵은 보통 호박을 말려 속을 비워 만든 것이 전통적이지만, 나무, 금속, 세라믹, 가죽으로 덮인 다양한 디자인의 컵들도 많이 사용된다고 한다. 그리고 마테차를 마실 때 반드시 필요한 것이 바로 ‘봄비야(Bombilla)’라는 빨대이다. 이 빨대의 끝에는 작은 필터(거름망) 구조가 있어 찻잎이 입으로 들어오지 않도록 걸러주는 역할을 한다. 별도의 거름망을 사용하지 않고 빨대의 끝부분에만 거름망 구조를 만든 창의적인 사례라는 생각이 들었다.
마테차는 이곳 사람들에게 단순한 차가 아니라, 문화를 공유하는 중요한 매개체라고 한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가족, 친구, 동료들과 함께 마테차를 돌려 마시며 친밀감을 나눈다. 그래서 한 잔의 마테차를 여러 사람이 같은 컵과 빨대로 함께 마시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다. 심지어 COVID-19이 심각할 때에도 그러했다고 한다. 또한, 마테차는 카페인이 포함되어 있어 각성 효과가 있으며, 소화를 돕고 피로 회복에도 좋다고 알려져 있다. 사람들이 컵에 뜨거운 물만 계속 추가하면서 하루 종일 마테차를 즐기는 이유도 바로 이러한 특성 때문이다.
이곳저곳 살펴보면서 다양한 마테차 컵과 빨대를 눈여겨봤다. 다음 주에 다시 방문해서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컵을 하나 구입해봐야겠다. 그리고 품질 좋은 마테 찻잎을 구매해서 마테차를 직접 경험해보는 것도 부에노스아이레스를 더 깊이 이해하는 방법이 될 것이다.
마테차 컵 외에는 특별히 내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물건은 없었다. 그래도 딱 하나, 나무판에 산텔모 시장의 거리 풍경이 인쇄된 판과 부에노스아이레스 지도를 그림으로 그린 판을 구입했다. 하나는 내가 자주 가는 펍 사장님에게 선물하려고 한다. 적당한 곳에 걸어두면 가게 분위기와 잘 어울릴 것 같다. 나머지 하나는 내 소장용이다. 시간이 지나 이곳을 떠나더라도, 이곳에서의 순간들을 떠올리며 부에노스아이레스 거리를 다시 추억할 수 있을 것이다.
거리를 따라 걷다 보니 흥겨운 음악 소리가 들려왔다. 거리의 연주자들이 경쾌한 리듬을 연주하며 사람들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들고 있었다. 연주를 듣던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춤을 추기도 하고, 박수를 치며 호응했다. 이곳은 단순히 물건을 사고파는 시장이 아니라, 예술과 일상의 활력이 공존하는 공간이었다. 벼룩시장은 상거래를 위한 공간이기도 했지만, 사람들이 모여 교류하고, 음악과 예술을 함께 즐기는 하나의 커뮤니티처럼 느껴졌다.
시장 구경을 마칠 시간이 되어 다시 마요 광장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미국에서 온 친구와 만나기로 한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새로운 공간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문화와 일상을 경험하는 것. 오늘도 이 도시에서 또 하나의 특별한 기억이 쌓여갔다.
라 보카, 색채와 열정이 넘치는 거리
마요 광장에서 다시 만난 미국 교수와 함께, 라 보카로 향하는 버스에 올랐다. 이곳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도 특히 개성이 뚜렷한 지역으로, 여행자들에게도 사랑받는 곳이다. 다채로운 색감의 건물들과 거리 예술, 그리고 축구와 탱고가 어우러진 문화가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고 익히 들었지만, 막상 도착해 보니 예상보다 훨씬 더 강렬한 색채와 분위기가 나를 감쌌다. ‘
라 보카(La Boca)’는 스페인어로 ‘입’을 의미한다. 원래 항구 지역이었던 이곳은 강의 입구(하구)와 연결되는 곳이라는 의미에서 ‘라 보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한다. 지금은 축구와 예술, 그리고 전통적인 남미 문화가 한데 어우러진 거리 예술의 중심지가 되었다.
버스에서 내리는 순간부터 라 보카는 마치 다른 세상처럼 느껴졌다. 거리 곳곳에 칠해진 원색의 건물들, 벽을 장식한 거대한 벽화들, 그리고 즉흥적으로 연주를 하는 거리 음악가들. 무엇보다 사람들의 활기찬 에너지가 온몸으로 전해졌다. 이곳에서는 관광객과 현지인이 뒤섞여 하나의 거대한 퍼포먼스를 만들어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라 보카의 풍경은 마치 한 폭의 그림 같았다. 붉은색, 파란색, 노란색이 강렬하게 어우러진 건물들이 좁은 골목을 따라 늘어서 있었고, 그 사이를 자유롭게 오가는 사람들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거리 한쪽에서는 부에노스아이레스 특유의 보헤미안 감성이 물씬 풍기는 라이브 연주가 펼쳐졌고, 가게마다 테라스에 앉아 식사를 즐기는 사람들의 표정이 여유로웠다. 그 옆에서는 악사들이 즉흥적으로 연주를 시작했고, 이를 구경하는 사람들은 리듬에 맞춰 박수를 치거나 몸을 살짝 흔들며 분위기에 녹아들었다. 이곳은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이 녹아 있는 하나의 거대한 무대 같았다.
거리를 걷다 보니, 어느새 보카 주니어스(Boca Juniors) 축구 경기장 앞에 도착했다. 이곳은 단순한 축구장이 아니라, 부에노스아이레스 사람들에게는 하나의 성지 같은 곳이다. 경기장 외벽은 보카 주니어스의 상징색인 파란색과 노란색으로 화려하게 칠해져 있었고, 마치 축구를 향한 열정을 그대로 담아낸 듯한 느낌이었다. 경기장 주변의 모든 가게에서도 축구의 열기가 느껴졌다. 거리는 보카 주니어스의 엠블럼이 새겨진 깃발과 유니폼으로 가득했고, 마라도나, 메시의 이름이 적힌 유니폼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오늘은 경기가 없는 날이라 비교적 한산했지만, 경기 날이면 이곳이 엄청난 인파로 가득 찬다고 한다. 축구 경기가 있는 날이면 거리마다 응원가가 울려 퍼지고, 수천 명의 팬들이 이곳으로 모여든다고 하니, 그 열정이 얼마나 대단할지 짐작이 갔다. 경기장 앞 기념품 가게에서 메시의 등번호가 새겨진 유니폼을 하나 샀다. 옷을 갈아입고 경기장 앞에서 사진을 찍는 순간, 나도 이 축구 문화 속 일부가 된 듯한 기분이 들었다. 비록 오늘은 조용한 경기장이었지만, 이곳에서 실제 경기를 본다면 또 다른 강렬한 경험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경기장을 둘러본 후, 아까 지나오면서 보았던 탱고 공연이 펼쳐지는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관광객을 위한 공연이겠거니 싶었지만, 막상 자리에 앉아 무대를 바라보니 분위기가 달랐다. 조명이 은은하게 비추는 무대 위에서 남녀 무용수가 서로를 바라보며 천천히 걸어 나왔다. 음악이 시작되자, 두 사람의 몸짓은 한 마디의 대사 없이도 강렬한 감정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탱고는 단순한 춤이 아니라, 두 사람이 함께 만들어내는 하나의 이야기 같았다. 느린 스텝과 갑작스러운 회전, 가까이 붙었다가 다시 멀어지는 동작들 속에 서로를 향한 감정이 그대로 녹아 있었다. 순간순간 빠르게 교차하는 발놀림을 보며, 단순한 안무가 아니라 오랜 시간 함께 연습하고 쌓아온 호흡이 만들어낸 예술이라는 걸 느낄 수 있었다.
미국인 교수와 함께 맥주 한 잔을 마시며 저마다의 여행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는 대학에서 강의를 하며 여유가 될 때마다 홀로 세계 곳곳을 여행한다고 했다. 서로 살아온 배경도 다르고, 여행의 목적도 다르지만, 이렇게 한 도시의 한 자리에서 같은 경험을 나누고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졌다.
식사를 마치고 거리로 나오니, 해가 뉘엿뉘엿 저물어가고 있었다. 밤이 되면 라 보카는 여행자들에게 주의를 요하는 지역이라 일찍 숙소로 돌아가기로 했다. 버스를 타고 창밖을 바라보며 오늘 하루를 곱씹었다. ‘라 보카에서 보낸 몇 시간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가장 강렬한 기억으로 남을 수도 있겠다.’ 단순한 관광지가 아니라, 사람들의 삶과 문화, 그리고 그들의 열정이 살아 숨 쉬는 공간이었다. 이곳에서 보낸 하루가 내 머릿속에도 강렬한 색채와 생생한 리듬으로 기억될 것 같았다.
하루의 마무리
버스를 타고 숙소로 돌아오며 창밖을 바라봤다. 해가 천천히 지고, 부에노스아이레스의 거리가 따뜻한 노을빛으로 물들고 있었다. 마요 광장에서 시작해 산텔모 시장을 거쳐 라 보카까지, 하루 종일 도시를 걸으며 이곳의 역사와 사람들, 그리고 문화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갔다. 그들의 기억을 담고 있는 광장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활기 넘치는 시장에서 이곳 사람들의 일상을 엿보았으며, 라 보카에서 강렬한 색과 음악, 춤이 어우러진 풍경 속에서 그들의 삶의 방식과 열정을 가까이서 느꼈다.
일요일의 부에노스아이레스는 단순한 휴일이 아니라, 도시 전체가 살아 숨 쉬는 듯한 날이었다. 주중과는 또 다른 리듬 속에서 사람들이 모이고,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만의 방식으로 하루를 보내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리고 오늘 나는 그 흐름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이들과 같은 리듬으로 움직였다. 관광객이 아닌, 이곳의 일요일을 살아가는 사람처럼.
창밖으로 지나가는 거리의 풍경을 바라보며, 이곳에서 맞이한 첫 번째 일요일이 이렇게 흘러가고 있음을 실감했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주말은 이렇게 흘러간다. 내가 보낸 하루도 그렇게 이곳의 시간 속에 녹아들고 있었다. 문득, 다음 주말에는 또 어디로 가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도시는 여전히 나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려줄 준비가 되어 있는 듯했다.
새로운 한 주는 또 어떤 경험들로 채워질까. 익숙해진 길 위에서 또 다른 낯선 길을 만나게 될까. 오늘 하루의 풍경을 마음속에 담으며, 다가올 일주일을 기대하는 설렘이 피어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