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랑 (THE WOLF BRIGADE, 2018)

by 집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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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7월, 김지운 감독의 영화 <인랑>이 개봉했다. 통일에 반대하는 반정부 무장테러단체 ‘섹트’와 이를 진입하기 위한 대통령 직속의 ‘특기대’가 줄거리에 전면 부각된다. 한 나라의 ‘통일’을 놓고 혼란스러움을 반영하기라도 하듯 혼돈의 나라를 액션장면으로 나타낸다. 그래서 <인랑>은 통일을 반대하는 ‘섹트’와 ‘섹트’와 맞서는 ‘특기대’가 벌이는 액션영화인가?

무장테러가 등장하는 만큼 액션도 물론 좋지만, 나는 영화를 이렇게도 봤다.





1. 빨강망토와 늑대

<인랑> 안에는 동화 <빨강망토와 늑대>의 서사가 하나 더 있다. 영화 속에서는 빨강망토와 늑대의 서사를 다시 상기시킨다. 빨강망토가 엄마의 심부름으로 할머니를 찾아가지만 이미 할머니는 늑대에게 잡아먹히고 늑대가 할머니로 변장한 이후이다. 빨강망토는 이상함을 느끼고 변장한 늑대에게 질문을 한다.

할머니, 귀가 왜 이렇게 커요. 할머니, 왜 이렇게 손톱이 커다랗죠. 할머니 이빨이 왜 이렇게 커다랗죠.
-그래야 너를 잡아먹기 쉽기 때문이지.


빨강망토는 늑대에게 잡아먹히지만, 사냥꾼이 늑대의 배를 갈라 다시 살아난다.



이 동화를 다시 상기시키는 이유는 '인랑' 때문이다. 무고한 시민을 죽인 후에 집단 트라우마를 겪은 특기대가 자기를 보호하기 위해 얼굴을 지웠고, 어두움은 곧 인간성을 감추게 했다. 그다음 혼돈의 시대는 그들을 짐승의 길로 더욱 내몬 끝에 탄생한 ‘인랑’
그리고, 빨강망토의 소녀가 등장한다.




다른 한편, 특기대 임중경(강동원 분)과 한상우(김무열 분)에 대한 묘한 갈등을 비춘다.

한상우가 말한다.
지옥도 시간이 지나면 추억이 되는가 했는데, 진짜 안 되는구나.

누가 보면 넌 되게 아름다운 곳에 일하는 줄 알겠다.
그 말에 대한, 중경의 말이다.




주어진 혼란스러운 세상, 서로다른 생각, 복잡한 이해관계, 그리고 '운명'

이 두 명의 묘한 분위기는 ‘운명’과 함께 풀어나간다. 이 말은 곧 운명을 받아들이는 방식에 대한 질문이기도 하다. 영화 속 인물은 이 ‘운명’을 어떻게 받아들일까.







2. 운명을 대하는 방법

운명은 어떻게 운명이 될까. 조직이 한 개인에게 지우는 책무, 빨강망토가 늑대에게 잡아먹히지만 사냥꾼에 의해 살아나는 것, 이 모든 것은 운명일지도 모른다. 마찬가지로 사람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어쩌면 운명이다.

그 지긋지긋한 ‘운명’에 대하여 영화 초반 윤희(한효주 분)는 중경과 <빨강망토와 늑대>에 대해 얘기할 때 빨강망토의 입장을 빌려 자기 처지에 대한 말을 한다.

죽은 소녀는 누굴 탓해야 하죠. 굶주린 늑대, 늑대에게 잡아먹힌 할머니, 아니면 심부름을 보낸 엄마, 누굴 원망해야 하죠. 누굴 원망해야할지 모른다는 게 제일 억울해.

의지를 행할 수 있고, 그 의지로 자유를 행하는 게 한 개인이라면 운명과도 같았던 조직을 위했던 일들을 그만두고 이제는 자신의 생각대로 행동하겠고 떠나겠다는 임중경. 그 운명에 대항하고 용기를 내서 중경에게 함께 ‘떠나자’고 한 건 빨강코트를 입은, 윤희다.


영화 속에서는 한상우가 임중경에게 내가 너와 다른 게 뭐냐고 말하는 장면이 있다. 세상에는 운명에 의해 충실히 삶을 이행하는 개인과 운명을 떠나는 개인이 있다. 물론 그 운명을 충실히 이행하는 사람에게 또는 운명을 개척해나가려는 사람에게 ‘븅신 같은 새끼’라는 말이 공안부장(허준호 분)과 장진태(정준호 분)의 입에서 각각 나온다. 이제 좀 벗어나고 싶다는 윤희의 얘기를 신파라고 비웃고, ‘아무도 믿지마. 난 나대로 살아남을게. 몸 조심해.’라고 하는 구미경(한예리 분)도 있다.





3. 과거를 상상하고, 미래를 기억하라

특기대와 인랑의 격전이 끝나고 한참 이 슬로건을 비춘다. 언뜻 보면 맞는 말이지만 기억은 이미 일어난 일을 다시 상기시키는 행위이므로 과거를 기억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게 실은 좀 더 맞는 표현이다. 과거를 미래의 일인마냥 상상하고, 미래를 기억할 수 있을까.

영화는 가장 먼저 벗어나고 싶다는 의지를 내보인 윤희를 떠나게 한다. 윤희가 탄 기차에 신의주라는 지명이 나온다. 영화 속에서는 <타인의 고통>과 <죄와 벌>과 <체 게바라> 등의 책이 잠깐 등장한다. <타인의 고통>은 '인랑'인 중경이고, <죄와 벌>은 '인랑이기 이전'의 중경이다. <체 게바라>는 영화 초반 '섹트'와 '인랑'의 격투 중 서울 2호선 초록 테두리를 두른 '낙원역'과 맥락을 함께 한다. 다시, 중경의 ‘그 이후’는 뭘까. 과연 한 개인에게 동화처럼 정해진 서사가 있을까. 누구에겐 해피엔딩인 낙원의 서사, 누구에겐 새드엔딩인 지옥의 서사가 쓰여지는 걸까. ‘미래를 기억하라’라는 슬로건과 같이 어차피 인간은 운명론에 묶여져 있을까.




영화를 본 나의 입장은 의지를 행함으로써 각자가 기억할 미래는 달라지리라 본다. 그 의지란 운명에 순응하는 것과 운명을 새로이 개척해나가는 이 모든 선택지를 포함하는 '그런 의지'이다. 이는 행할 수 있는 '의지'가 있다는 인간에 대한 응원이기도 하고, 우려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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