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제작 비용 상승의 숨겨진 원인
겨울바람이 칼날처럼 파고드는 경북 문경의 사극 촬영 오픈세트장, 시곗바늘은 새벽 2시를 넘어가고 있다. 조선시대 저잣거리를 재현한 세트장 한가운데서 수십 명의 보조 출연자와 주연 배우가 입김을 내뿜으며 대기 중이다.
불과 10년 전만 해도 이 시간은 촬영 현장이 가장 뜨겁게 달아오르는 '한창때'였다. 연출 감독이 확성기를 잡고 "오늘 밤새워서라도 이 씬(Scene)은 끝내야 한다"라고 소리치면, 스태프들은 믹스커피를 들이키며 밤을 지새우는 것이 당연한 미덕이자 열정으로 통했다. 예술적 완성도를 위해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몰입하던 소위 '디졸브(Dissolve)'의 시대, 그것은 창작을 위한 치열한 관행이었다.
하지만 2025년 현재의 풍경은 완전히 다르다. 현장 제작 PD(프로듀서)가 초조한 얼굴로 감독에게 다가가 스마트폰의 엑셀 시트를 보여준다. 조명팀 퍼스트 조수의 이번 주 누적 근무 시간이 48시간을 채웠기에, 여기서 촬영을 더 진행하면 주 52시간을 초과하게 된다는 보고다. 대체 인력을 당장 구할 수 없는 상황에서 감독은 아쉬움을 삼키며 "컷, 오늘 여기까지"를 외칠 수밖에 없다.
스태프들은 장비를 정리하며 휴식을 맞이하지만, 제작사 대표의 표정은 어둡기만 하다. 오늘 찍지 못한 분량은 내일로 미뤄지고, 이는 곧 비용의 증가로 직결된다. 거대한 크레인 조명, 수천만 원을 호가하는 카메라, 그리고 150명 스태프의 숙소와 식대는 촬영이 멈춘 순간에도 청구서가 되어 돌아온다. 과거에는 스태프들의 열정과 시간으로 메웠던 그 간극이, 이제는 고스란히 현금 비용이 되어 제작사를 압박하고 있는 것이다.
제작비 상승의 이중 구조: 천장과 바닥의 동반 상승
최근 드라마 회당 제작비가 15억 원을 넘어선 건 예전이고 곧잘 30억 원 때다. 겨울연가가 회당 1억대였고, 도깨비가 회당 10억이었지만, 지금은 언제적 이야기인가 싶다. 이 대목에서 많은 이들이 넷플릭스를 비롯한 글로벌 OTT가 불러온 '주연 배우 몸값 인플레'를 주범으로 지목했다. 일부이긴 하지만 주연배우에게 '횡재세'를 부여하자는 주장까지 나왔다.
그러나 냉정하게 보자.
물론 넷플릭스 효과는 분명하다. 천장이 어디인지 모를 정도다. 글로벌 자본은 최고의 퀄리티를 위해 돈을 아끼지 않았고, 이로 인해 A급 톱스타의 출연료와 할리우드급 CG 비용이 폭등했다. 이는 대작을 만들기로 작정한 프로젝트에 해당하는 '선택적 상승'이었지만, 제작비의 상한선을 무한대로 높여버렸다.
그러나 제작비 상승이 넷플릭스에 납품하기 위한 경쟁이 벌어지면서 출연료가 상승해서 벌어진 일이라고만 평가하는 건 무리가 있다. 넷플릭스가 가격 통제를 하고 있고, 넷플릭스에 납품을 하지 못하는 작품의 경우에도 제작비가 지난 몇 년 전과 비교하면 확실히 높아졌기 때문이다. 눈을 돌려보면 한국 드라마 중에서 150억~200억이 빈번하다.
바로 하방이 올라간 탓이다. 유명 배우를 쓰지 않아도, 기본적인 제작비 자체가 뛰어 버린 탓이다. 그렇다면 어떤 요인이 있을까? 단순히 수요와 공급의 문제라고 한다면 수요가 감소하면 제작비도 감소해야 한다. 그러나 수요가 감소한 지금도 제작비는 여전히 높다. 더구나 A급 배우를 피한 작품조차도 곧잘 200억이 넘어간다. 이를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그럼 이유는 다른데 있다고 봐야 하지 않을까? 이 대목에서 강력하게 요인으로 떠오르는 것이 바로 '주 52시간제'의 도입이다.
52시간제, 드라마 현장의 특례를 지우다
주 52시간 근무제의 도입은 단순히 근무 시간을 줄이는 기술적인 조치가 아니라, 한국 사회의 고질적인 '장시간 노동 관행'을 뿌리 뽑기 위한 거대한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었다. 2010년대 중반까지 한국은 OECD 회원국 중 멕시코 다음으로 노동 시간이 긴 국가였으며, '과로사(Karoshi)'라는 단어가 고유명사처럼 쓰일 정도로 '저녁이 없는 삶'이 보편화되어 있었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일과 삶의 균형(Work-Life Balance)"을 되찾자는 강력한 여론이 형성되었고, 이는 2018년 근로기준법 개정으로 이어졌다.
이 개정안의 핵심은 법의 허점을 메우는 것이었다. 기존 행정해석상 '일주일'은 토요일과 일요일을 제외한 5일로 간주되었다. 이로 인해 평일 40시간에 연장근로 12시간을 더하고, 법적으로 '근로일'이 아닌 휴일에 각각 8시간씩 총 16시간을 추가로 일하는 것이 가능했다. 즉, 최대 68시간 노동이 가능했던 셈이다. 2018년 개정법은 "일주일은 휴일을 포함한 7일"이라고 명문화함으로써 이 꼼수를 원천 봉쇄했고, 최대 근로 시간을 52시간으로 못 박았다.
입법이 논의되는 상황에서도 드라마 업계는 관망했다. 과거 방송업과 영화업은 운송업, 보건업 등과 함께 업무의 예측 불가능성과 공익성을 이유로 연장 근로 한도에 제한을 받지 않는 26개 특례 업종 중 하나였기 때문이다. "방송 펑크는 방송사의 사망 선고"라는 절대적인 명제 아래, 며칠 밤을 새우는 살인적인 스케줄이 합법의 테두리 안에서 용인될 수 있었던 법적 근거가 바로 이것이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2016년 <혼술남녀>의 이한빛 PD가 고강도 노동 등 비정상적인 제작 환경을 고발하는 유서를 남기로 스스로 생을 마감했고, 넷플릭스 오리지널 <킹덤>의 미술팀 스탭 중 한 명이 촬영 후 귀가 중에 뇌동맥류 파멸로 사망했다. 기록적인 폭염 속에서도 촬영을 이어가던 <서른이지만 열일곱입니다>의 카메라 스탭이 사망했다. 사인은 내인성 뇌출혈이었지만 76시간 근무가 원인이라는 주장이 나왔다.
방송업계의 노동 환경 개선 요구가 빗발쳤다. 결국 국회 논의 과정에서 방송업과 영화업은 특례 업종에서 삭제되었다. 이는 "예술과 열정"이라는 미명 하에 노동법의 사각지대에 머물던 드라마 제작 현장도 이제는 일반 제조업이나 사무직과 동일한 법적 통제를 받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8년 대형 사업장을 시작으로 2021년에는 대부분의 외주 제작사까지 전면 적용되었다. 밤새면서 일하는 것이 당연한 창작업이 아침 출근 저녁 퇴근이라는 일반적인 회사원의 업무가 된 것이다.
비용 폭증의 메커니즘
그러나 무엇이든 과하면 넘친다. 다만 넘치는 줄 몰랐을 뿐이다. 한참 넷플릭스의 등장과 OTT의 오리지널 경쟁이 발생하면서 소위 수요 초과 현상이 벌어질 때는 제작비가 오르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시장이 과열하면서 벌어진 탓도 있거니와, 예전과는 달리 글로벌 시장을 겨냥한 것이니 이 정도의 제작비는 그럴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공급 초과 현상이 발생한 지금에 와서야 피크타임에는 볼 수 없었던 52시간제의 문제점들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일단 주연배우들의 몸값 상승에도 부분적으로 52시간제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통상적으로 주연배우는 회당 가격으로 매겨진다. 그래서 제작 시간의 길이에는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다. 심지어 주연배우가 한 장면만 나오더라도 회당 가격에 포함되어 있을 정도다. 그러니 주52시간 제의 영향을 받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기회비용'을 고려하면 52시간제는 분명히 출연료에 영향을 미쳤다. 과거 16부작 미니시리즈는 3개월이면 촬영이 끝났다. '물 들어올 때 노 젓는다'고 A급 배우들은 1년에 세 작품까지 소화하며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었다. 하지만 주 52시간제 도입 이후 촬영 기간이 6개월을 넘어 1년 가까이 늘어지면서, 배우들은 1년에 단 한 작품에만 묶이는 상황이 되었다. 1년 농사를 작품 하나로 끝내야 하는 배우들은 줄어든 작품 수만큼의 소득을 보전받기 위해 회당 출연료를 2~3배 높여 부르게 되었고, 플랫폼 경쟁으로 인한 수요 폭발이 이를 용인하는 분위기를 만들었다.
그러나 제작비 상승의 더 심각한 뇌관은 스태프들의 인건비 구조 변화에 있다. 스태프들의 계약 형태는 크게 회당 계약, 월급제, 일당(회차)제로 나뉘는데, 52시간제는 이들 모두의 비용을 기형적으로 증폭시켰다. 월급제 스태프(제작 PD 등)의 경우 제작 기간 연장의 혜택을 가장 크게 보았다. 과거 3개월치 월급만 주면 되던 것이 촬영 기간이 12개월로 늘어나면서 산술적으로만 4배의 인건비가 발생하게 되었습니다. 여기에 인력난으로 인한 기본 급여 인상분까지 더해지며, 실질적인 체감 비용은 2.5배 이상 폭등했습니다. 평균 제작 기간이 3개월일 때 산술적으로 제작 PD가 4편의 작업을 할 수 있지만, 지금처럼 수요가 줄었을 때는 1년에 한 편하기도 쉽지 않다. 이 경우 52시간제는 한편만 잡아도 1년을 먹고살 수 있는 조건이 된다. 작품 한 편 기준으로 하면 제작비가 3~4배가 느는 셈이다.
일당제 혹은 회차제 스태프(미술, 소품, 의상 등)의 경우 작업 효율성 저하가 비용 상승으로 이어졌습니다. 예전에는 하루 15시간 이상 몰아서 찍던 분량을 이제는 8시간밖에 찍지 못한다. 주 5일을 꼬박 채울 수 있었던 작업이 야간까지 감안하면 일주일에 서너 차례 촬영에 불과하게 된다. 같은 분량을 소화하기 위해 촬영 일수(회차)가 2배 가까이 늘어났다. 하루 일당은 그대로일지라도 투입되는 총일수가 폭증하니 전체 인건비 총액은 200% 이상 뛸 수밖에 없는 구조다.
회당 계약직(촬영, 조명 감독 등)도 불만이 커진다. 총액만 지급하는 구조였다. 한 작품을 통으로 보고 인건비를 지급하는 구조였다. 이들은 제작기간이 늘어나더라도 총액의 변하지 않으면 실질적으로는 손해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늘어난 노동 시간에 대한 보상 심리로 계약 단가 자체를 50~100% 이상 인상하면 손해를 메우려고 했다.
비단 이것뿐일까? 시간이 돈인 세트장 임대료나 장비 대여료 같은 고정비(Fixed Cost) 역시 기간에 비례해 눈덩이처럼 불어났습니다. 이러한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2002년 <겨울연가> 시절 회당 1억 원이던 제작비는 20년 만에 회당 15억~20억 원 수준으로 15배 이상 급등했습니다. 다른 산업군이나 물가 상승률과 비교해도 유례를 찾기 힘든 폭등입니다.
결과적으로 현재의 드라마 시장은 톱스타가 나오지 않아도 기본 제작비가 200억 원에 육박하는 ‘고비용 구조’가 고착화되었다. 미션 임파서블을 위해서 톰 크루즈에게 비싼 출연료를 지급하는 것이나, 엔드게임에서 로바주에서 제작비의 40%가 넘는 출연료를 지급하는 것이야 글로벌 시장 흥행을 보장하기 위해 치러야 하는 보험일 수는 있다. 그러나 글로벌 시장을 겨냥하지도 않으면서 고비용 구조가 되면 이는 시장의 붕괴를 가져올 수밖에 없다. 방송사의 광고 수익으로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이기에 통상적인 드라마 제작 축소로 이어지는 것이 너무도 당연하기 때문이다.
더욱 뼈아픈 것은 시장의 탄력성 상실이다. 트렌드가 생명인 방송 콘텐츠 업계가 영화처럼 기획부터 공개까지 2~3년이 걸리는 ‘느린 제조’ 방식이 되면서, 시의성을 놓치고 리스크만 커지는 비효율적인 산업 구조가 되어버렸다.
결국 현재의 제작비 폭등은 주 52시간 근무제가 주범이라는 이야기다. 다들 말은 안 하지만 실제로는 이로 인한 제작비 상승의 체감도가 훨씬 높다. 톱스타가 나오지 않는 저예산 웹드라마나 신인 등용문인 단막극조차 피해 갈 수 없는 변화이기 때문이다. 이 상황에서 드라마를 많이 만들자고 할 수도 없는 노릇이다. 결과적으로 거대 자본이 투입되는 텐트폴 작품이 아니면 제작조차 불가능한 양극화를 초래했고, 소위 미래를 위한 저예산 드라마가 만들어질 수 없는 구조가 되어 시장이 미래를 준비할 수 없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단가는 올랐으나 지갑은 얇아지다
한참 수요가 넘칠 때는 모든 이들을 만족시키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시장이 붕괴되는 상황이 지속되다 보니 오히려 (평균적으로) 스태프들의 처우는 더 나빠지기 시작했다. 일부는 혜택을 입었지만, 전체적으로는 소득의 감소로 이어졌다. '소득의 역설'이다. 스태프들의 삶의 질, 즉 워라밸은 좋아졌지만 연간 총소득은 제자리거나 오히려 줄어든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촬영 기간이 길어지면서 1년에 서너 작품을 하던 스태프가 이제는 한 작품도 못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수요가 줄었으니, 그 한 작품을 누군가가 차지하고 나면 나머지는 손가락을 빨고 있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작품이 끝나고 다음 작품에 들어갈 때까지의 대기 기간이 길어지면서 연봉으로 따지면 소득이 줄어드는 현상이 발생하는 것이다. 이는 저녁이 있는 삶은 얻었지만, 미래를 위한 목돈을 모을 기회는 사라졌다는 현장의 자조 섞인 목소리로 이어진다.
고비용 구조의 딜레마와 새로운 균형
주 52시간 근무제는 한국 드라마 산업을 전근대적인 노동 방식에서 시스템 중심의 구조로 이행시키는 촉매제가 될 수 있었다. 스태프들이 과로로 쓰러지지 않고 최소한의 인간적인 대우를 받으며 일하게 된 것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라는 점을 부인할 수 있는 없다. 비록 그것이 창작의 뜨거운 몰입을 억지로 식히는 측면이 있다 하더라도, 사람을 갈아 넣어 작품을 만드는 방식이 지속 가능하지 않다는 점은 모두가 동의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시장은 냉정하다. 52시간제가 높여놓은 제작비의 바닥은 중소 제작사들에게 생존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되었다. 방송사들이 드라마 편성을 줄이고 예능으로 눈을 돌리는 것은, 높아진 고정비를 감당할 수 없어서 내린 생존 본능적 선택이다.
지금 K-드라마 시장은 넷플릭스가 쏘아 올린 화려한 천장과 52시간제가 다져놓은 단단한 바닥 사이에서 딜레마에 빠져 있다. 창의적인 영감을 해치지 않으면서도 높아진 비용 구조를 감당해 낼 '효율성의 혁신'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단순히 시간을 늘리는 것이 아니라, 철저한 사전 기획과 정교한 콘티로 낭비되는 시간을 줄이는 스마트한 제작 시스템만이 이 고비용 구조의 해법이 될 것이지만, 대부분의 제작사는 이런 방식을 택하고 적용할 정도의 수준도 시간도 기회도 없다.
‘가장 비싼 수업료를 치르며 예술과 노동, 그 사이의 새로운 균형점을 찾아가는 중’이라고 고상하게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시장은 그럴 여력이 없다는 것도 문제고, 이를 정부가 도와줄 방법도 마땅치 않다는 것도 문제다.
정리해 보자.
52시간제가 도입된 후 제작비는 대략 6~100% 정도가 상승했다. 그러나 22년과 23년 대한민국 드라마 시장은 끝이 없을 것이라고 상상할 정도로 호황기였기에 그 상승분을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었다. 그래서 52시간제의 임팩트를 간과했다. 그러나 지금은 제작 시장의 붕괴를 걱정하는 상황이다. 넷플릭스가 받아주지 않고 있고, 창고형 콘텐츠를 제외하고는 생산되는 드라마의 절대량은 줄어들었다. 모두가 구조조정을 하는 상황에서 제작비 증가는 참여하는 스태프나, 제작사나, 방송사나 모두들 아프게 하고 있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방송시장에 '주 52시간제 특례예외' 조항을 다시 고민해야 한다. 그러면서 시장이 균형점을 찾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적어도 구조적 붕괴를 걱정해야 하는 현시점에서는 더더욱 말이다.
반도체만 예외가 필요한 게 아니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