넷플릭스 1위인 <대홍수>가 극장에서는 성공할 수 있을까?
미스터리하다.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인 <대홍수>에 관한 이야기다.
국내 공개 직후 쏟아진 반응은 당혹감 그 자체였다. 첫 뚜껑을 열었을 때 분위기는 혹평 일색이었다. 반면에 Flixpatorl 기준 글로벌 1위를 기록한 뒤, 일주일이 넘게 1위 자리에서 내려오지 않고 있다. 이 두 가지 상반된 결과가 공존하는 영화가 바로 <대홍수>다. 다만 넷플릭스에 공개된 한국 영화 중에서 이 정도의 글로벌 반향을 일으킨 작품은 없었다는 건 분명하다. 좋은 나쁘든.
왓챠피디아 평점은 1.9점이다. 비난 국내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다. 물건너에서도 논쟁적이다. 해외 최대 커뮤니티라고 할 수 있는 레딧(Reddit)에서도 긍정과 부정의 비율이 대략 3 대 7로 나뉠 만큼 호불호가 극명하다. 논쟁은 흥미롭다. '재난 영화인 줄 알았는데 속았다'는 장르적 배신감이었고, 주인공을 돕는 남자의 정체가 '미래의 아들'인지 'AI'인지를 두고 논쟁이 이어지고 있었다. 인공 신체 이식이 인류 구원이 될 수 있는지에 대한 '테세우스의 배' 철학 적 논쟁도 이어지고 있고, 아역 캐릭터의 작위적인 행동과 개연성 부족에 대한 비판도 신랄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그런가 하면 실제로 글로벌 평점 사이트 로튼 토마토(Rotten Tomatoes)의 관객 지수(Popcornmeter)는 "신선하지 않다"는 평가와 함께 30%대에 머물러 있다.
그럼에도 넷플릭스 글로벌 1위다.
질문을 바꿔보자. 만약 이 작품이 극장 개봉작이라면 어떤 상황이 벌어졌을까? 장담컨대 개봉 첫 주말을 넘기지 못하고 박스오피스에서 참패했을 가능성이 높다. 극장에 여러 경로를 거쳐서 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를 따져 물어야 하고, 첫 바이럴에 민감한 이들이 저 소리를 듣고 극장에 갈 일이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럼 질문은 다시 이렇게 바뀐다. 극장에서는 망했을 영화가 왜 넷플릭스에서는 왕관을 쓰게 된 것일까.
어떤 이는 말한다. "넷플릭스니까 가능하다"라고. 이 한 줄의 의미를 쫓아가보자.
가장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은 소비자가 지불해야 할 비용이다. 뭐 거창하게 표현하면 '관람비용의 심리학' 뭐 이렇게도 가능하겠지만, 이건 잘난 척하는 이들의 표현일 뿐이고. 극장 영화는 관객에게 1만 5천 원이라는 티켓 값과 이동 시간, 그리고 2시간 동안 꼼짝없이 앉아 있어야 하는 기회비용을 요구한다. 이 경우 관객의 기대치는 엄격해진다. 지불한 돈과 시간에 합당한 장르적 쾌감을 요구한다. 포스터와 예고편이 '재난 블록버스터'를 표방했다면, 관객은 압도적인 해일과 그 속에서 살아남는 인간의 처절한 사투를 기대하고 극장에 들어섰을 것이다.
하지만 <대홍수>는 이 지점에서 배신감을 안겨준다. 초반부 아파트가 물에 잠기는 시각적 스펙터클은 할리우드 저리 가라 할 정도로 훌륭했지만, 영화는 중반을 넘어서며 갑자기 SF, 타임 루프, AI 시뮬레이션이라는 철학적 난제로 급선회한다.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본 관객이라면,
재난 영화인 줄 알고 팝콘 샀는데, 갑자기 개똥철학 강의를 듣게 됐다
며 분통을 터뜨렸을 것이다.
극장에서의 장르 배신은 곧 입소문(Word of Mouth)의 붕괴로 이어지고, 이는 예매율 급락으로 이어질 것이다. 전독시가 그랬다. 이른바 사형선고다. (그러고 보니, 이번 <대홍수>의 감독이 <전독시>의 감독이다)
하지만 넷플릭스에선 '배신'이 아니다. 구독자 입장에서 영화 한 편을 재생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은 '0'에 수렴한다. 금전적 리스크가 없는 상태에서 관객을 유인하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썸네일'과 '로그라인'이다. '지구 마지막 날, 끝없이 차오르는 물'이라는 직관적인 재난 이미지는 전 세계 누구에게나 먹히는 만국 공통어다. 썸네일 속 물에 잠긴 도시의 이미지는 사람들의 클릭을 유도하기에 충분했다.
일단 클릭을 하게 만들면, 넷플릭스의 승리 공식이 작동한다. <대홍수>는 초반 20분가량, 물이 차오르는 아파트 탈출 시퀀스에 상당한 공을 들였다. 이 시각적 몰입감은 시청자가 "일단 계속 보자"라고 결정하게 만드는 '락인(Lock-in)' 효과를 발휘한다.
이러한 시청 행태는 넷플릭스의 독특한 순위 집계 방식인 '시청 수(Views)' 공식과 맞물려 폭발적인 시너지를 낸다. 현재 넷플릭스는 단순히 몇 명이 클릭했는지가 아니라, '전체 시청 시간(Hours Viewed)'을 '작품의 러닝타임(Runtime)'으로 나눈 값으로 순위를 매긴다. 예를 들어 10분짜리 영상을 2분 시청한 것이나, 100분짜리 영상을 20분 시청한 것은 같다. 러닝타임으로 나눈 값이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중요한 건 '평가'는 철저히 배제되어 있다는 점이다. 관객이 영화를 보고 감동했는지, 혹은 욕을 하며 보았는지는 랭킹 산정에 전혀 반영되지 않는다. 오로지 '얼마나 많은 시간을 점유했는가'만 중요하다. <대홍수>처럼 초반 비주얼이 강렬해 진입 장벽이 낮고, 중반부터는 "도대체 결말이 뭐길래 이러나" 싶은 호기심을 유발하는 영화는 이 알고리즘의 최대 수혜자가 된다. 나중에 이탈을 할 망정 일단 넷플릭스 순위에는 반영되는 것이기 때문에.
극장에서야 영화가 재미없으면 악평이나 평점을 낮게 주면서 다른 사람들이 찾아올 가능성을 낮추지만, 넷플릭스에서는 시청자가 욕을 하면서도 결말을 확인하기 위해 끝까지 재생하는 순간, 그 시간은 고스란히 랭킹 포인트로 적립된다. 전 세계 수천만 명이 썸네일에 이끌려 들어와 '낚인 채' 머무른 시간들이 모여, 완성도와 무관하게 글로벌 1위라는 거대한 숫자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래서 넷플릭스만의 성공 문법이 따로 있다고 말을 하고,
넷플릭스가 각 잡고 알고리즘으로 밀어주면 아무리 형편없어도 흥행이 된다는 말이 나오기도 한다.
사실 K-콘텐츠가 아시아권에서는 맹주로 군림하지만, 북미나 유럽 등 서구권 시장에서는 여전히 진입 장벽이 존재한다. 로맨스나 사극 같은 한국적 색채가 짙은 장르는 서구권 대중에게 낯설기 때문이다. 하지만 <대홍수>는 이 장벽을 '장르의 보편성'과 '오징어 게임의 유산'으로 영리하게 뛰어넘었다. '재난(Disaster)'이라는 소재는 문화적 배경지식이 필요 없는 만국 공통어다. 물이 차오르고 숨을 참아야 하는 상황은 자막을 읽기 싫어하는 북미 시청자들에게도 직관적인 공포와 긴장감을 준다. <부산행>이나 <킹덤>이 서구권에서 성공했듯, 좀비나 재난 같은 장르물은 한국어 대사를 몰라도 즐기는 데 무리가 없다. 넷플릭스의 자막과 더빙은 어설픈 연기조차도 괜찮은 것으로 만들어준다. 북미 시청자들이 '한국 영화'라는 거부감 없이 접근하게 만들었다.
어쩌면 <오징어 게임>의 218번 상우인 박해수 때문이지도 모른다. 웬만큼 인지도가 없고서야 다 비슷비스하게 보이는 한국 배우들 중에서 박해수와 김다미는 그럭저럭 알아챌만한 배우들이다. 썸네일과 예고편에 등장하는 그의 얼굴은 서구권 관객에게 "이 영화는 어느 정도 검증된 퀄리티일 것"이라는 무언의 신뢰를 주었을 수도 있다. 'K-콘텐츠라서' 무조건 본 것이 아니라, '익숙한 얼굴(박해수)이 나오는 할리우드 스타일의 재난 영화'였기에 북미 고객들도 주저 없이 클릭했을 거라는 이야기다.
어쩌면 이런 와중에 나오는 혹평과 호평이란 논쟁거리 자체가 호기심을 자극했는지도 모를 일이다. 해외 최대 커뮤니티 레딧(Reddit)의 반응을 분석해 보면, 이 기현상의 실체가 더욱 명확히 드러난다. 현재 여론은 부정적 반응이 7할, 긍정적 호기심이 3할 정도로 나뉘어 있다. 하지만 중요한 건 그 '부정'의 내용이 단순한 비난이 아니라 격렬한 토론을 동반한다는 점이다.
가장 지배적인 여론은 역시 '장르 사기'에 대한 성토다. "나는 킴 다미가 나오는 생존 영화를 보러 왔는데, 매트릭스를 보고 나가는 기분이다", "도대체 요점이 뭐냐(What was the point?)"라는 당혹감이 줄을 잇는다. 이는 관객이 기대한 '재난 액션'과 영화가 실제로 제공한 '철학적 SF' 사이의 불일치가 낳은 결과다.
하지만 역설적으로 이 '당혹감'은 곧 심층적인 해석 게임으로 이어진다. 유저들은 영화 속 불친절한 떡밥들을 회수하기 위해 자발적인 탐정이 되었다. 조력자로 등장하는 남자의 정체에 대해 "성장한 아들의 타임 루프물이다" 혹은 "어머니의 모성애를 학습시키기 위한 AI 프로그램일 뿐이다"라는 가설들이 쏟아진다. 더 나아가 영화의 결말을 두고 '테세우스의 배(Ship of Theseus)' 역설을 인용하며, "기억을 가진 합성 신체는 과연 인간인가?"라는 철학적 논쟁까지 벌어지고 있다. 심지어 일부 유저들은 이를 "한국의 저출산 위기에 대한 급진적인 프로파간다"라고 해석하며 사회적 맥락까지 읽어내려 한다.
이처럼 레딧을 달구는 '7할의 불만'과 '3할의 분석'은 영화를 본 사람들끼리만 공유할 수 있는 거대한 수수께끼 판을 만들었다. 사람들은 "도대체 영화가 어떻길래 저렇게 싸우지?"라는 호기심에 이 논쟁에 끼어들고 싶어 하며, 이는 결국 재생 버튼을 누르게 만드는 또 다른 동력이 된다. 물로 이 경우에도 이것 때문에 추가적인 비용을 내지 않아도 된다는 서비스의 특성이 큰 몫했다.
이는 OTT라는 환경이 만들어낸 새로운 소비 패턴, 즉 '위키(Wiki) 형' 시청 태도와 직결된다. 극장은 즉각적인 반응이 지배하지만, OTT는 2차, 3차 해석이 나올 때까지 기다려줄 수 있는 공간이다. 국내에서 초기에 쏟아진 혹평은 대부분 "속았다"는 감정에서 기인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고 결말을 알고 보는 시청자, 혹은 N차 관람을 하는 시청자들 사이에서 재평가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는 넷플릭스라는 개인화된 시청 환경 덕분이다. 극장에서는 옆 사람 눈치를 보며 숨죽여 봐야 하지만, 집에서는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을 되돌려 보거나, 잠시 멈추고 인터넷에서 해석을 찾아볼 수 있다. <대홍수>처럼 설명이 부족하고 불친절한 영화는 오히려 이런 능동적인 탐구심을 자극한다. 앞서 언급한 레딧의 뜨거운 토론처럼, 영화의 난해함이 오히려 '씹고 뜯고 맛보는' 놀이의 대상이 된 것이다. 극장이었다면 '혹평'으로 끝났을 이슈가,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논쟁'이라는 트래픽으로 치환된 셈이다. 어쩌면 넷플릭스식 성공에는 단순한 불만거리가 아니라 "씹을 거리"를 주어야 한다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대홍수>의 글로벌 1위는 작품의 완성도가 완벽해서가 아니라, 플랫폼의 소비 패턴을 완벽하게 공략했기에 가능한 결과다. 극장용 영화가 '높은 만족도'를 목표로 한다면, 넷플릭스 영화는 '높은 화제성과 클릭률'을 목표로 한다. <대홍수>는 강력한 비주얼로 초반을 열고, 중반에선 장르 파괴로 관객을 혼란에 빠뜨린 뒤, 난해한 결말을 통해 온라인 토론장으로 관객을 내몰았다. 그래서 어른들을 혹평하고 20대들은 볼만했다고 평가하는지도 모르겠다. 즉, 과거의 영화문법에 있는 분들에게는 어설프지만, 현재의 넷플릭스 문법에 익숙한 이들에겐 신선한.
전통적인 영화 문법, 특히 극장 흥행 공식으로 보자면 이 영화는 실패작에 가까울 수 있다. 서사는 덜컹거리고, 장르는 충돌하며, 캐릭터는 기능적으로 소모된다. 하지만 "재미없다"면서도 끝까지 보게 만드는 힘, 그리고 다 보고 나서 "이게 뭐야?"라며 친구에게 링크를 보내거나 커뮤니티에 글을 쓰게 만드는 힘. 그것이 바로 넷플릭스 시대의 새로운 흥행 공식이며, <대홍수>는 그 수혜를 가장 드라마틱하게 입은 사례로 기록될 것이다. 욕하면서 보는 막장 드라마처럼, 욕하면서 끝까지 보게 만드는 '대재난 낚시극'.
이것이 넷플릭스 1위의 진짜 비결이지 않을까?
물론 여기서 누구는 이런 화두를 던질 것이다.
1등이라고 다 이렇게 만들면 되는 거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