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수용으로 취급받는 한국의 영화
히딩크가 말했다.
한국 축구는 기술은 괜찮은데, 체력이 문제다
우리가 알고 있고, 주장했던 논리가 뒤집혔다. 그 이후 한국 축구는 우리가 알고 있는 4강 신화를 일궜다.
우리의 영화는 어떨까? 한국 영화는 글로벌 경쟁력을 갖추고 있을까?
우리나라의 콘텐츠 / 엔터 사업은 시련이라면 시련을, 아픔이라면 아픔을 아주 아주 뼈저리게 겪으면 성장했다.
1999년부터 2006년까지 음악 산업은 초토화되었었다. 4천억에 가까웠던 음반 시장이 1천 원대로 추락했다. 기대했던 음원 시장은 소리바다 등 불법 복제로 인해서 피폐해질 때로 피폐해졌다. 그때 음악 시장의 돌파구는 글로벌이었다. 2008년 YOUTUBE의 등장과 함께 한국의 음악산업은 글로벌로 돌진했다. 일부는 현장으로 일부는 YOUTUBE를 타고 글로벌 시장을 개척했지만, 그 방법이 무엇이든 글로벌이란 화두는 동일했다. 돌이켜보면 JYP 원더걸스의 실패는 아쉬운 기록이지만, 그 무모할 정도의 글로벌 진출 노력이 오늘날 음악 시장을 만들고 Kpop의 시대를 열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 하나. 세상의 문을 열었을 때 세상이 우리의 음악을 좋아하기 시작했다는 것. 이미 우리의 음악은 세계적 수준이었다. 그러했기에 우리가 YOUTUBE를 통해 세상과 만나는 순간, 세상이 우리 음악을 받아들여주었다
방송도 마찬가지였다. 1997년부터 2002년까지 최악의 상황을 겪었다. IMF 외환위기. 내수시장은 얼어붙었고, 광고는 반토막 났다. 그 상황에서 등 떠밀리듯 나갔던 것이 해외 수출 시장이었다. 오늘날 한류의 기원이라고 일컬어지는 <사랑이 뭐길래> 등은 바로 이 시기에 나간 것들이다. 내수 시장이 힘들어질 때면 일본시장으로, 중국시장으로, 그리고 지금은 넷플릭스를 타고 글로벌로 글로벌로 그렇게 시장을 넓히면서 성장했다. 이때도 마찬가지. 우리는 몰랐지만, 우리가 주저주저하면 세상의 문을 열었을 때 세상 사람들은 우리의 드라마를 좋아해 줬다. 그만큼 우리의 경쟁력이 있었던 것.
이처럼 내수 시장이 어려워졌을 때 우리는 글로벌 시장에서 그 해답을 찾고자 했다.
그런데 영화는 별종이다. 1996년 검열이 위헌판정을 받고, 1999년 쉬리가 등장한 이래로 영화 산업은 줄곧 상승이었다. 한때는 수익률이 30%를 웃돌던 시절도 있었다. 그래서 Seller's Market이었고, 투자사와 배급사가 돈을 싸들고 와서 만들어 달라고 하던 시절이었다. 제작사가 자기 돈 없이 영화를 만들게 된 역사도 이때부터다. (1960년대의 전성기를 이야기하기도 하지만, 단절된 역사라서 언급하기가 뭐 하다. 현존하는 최고 제작사는 명필름으로 1995년 설립되었다.)
그 뒤론 우리가 알고 있는 역사다. 1억 명을 돌파했고, 2억 명을 돌파했었다. 그러나 Pandemic과 넷플릭스 등 글로벌 OTT 등장 이후 우리의 영화 시장은 최전성기 기준 반토막이 났다. 내수 시장이 붕괴된 것이다. 이 상황에서 내수 시장이 과거와 같은 2억 명 시장을 예상하기는 쉽지 않다. 그럼 현재의 규모를 유지하려면 해외 시장으로 나가는 것을 모색해야 하는데, 영화시장의 위기를 논하는 이들 중에서 글로벌을 이야기하는 사람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래서 오늘 행사에서 내가 준비한 장표 중 이것이었다. 바로 2.5%. (이것 계산하는데 꼬박 하루 반나절이 걸렸다)
넷플릭스에서 볼 수 있는 2016년 이후 극장 개봉 영화 중에 20개국 이상 자막이 제공되는 영화의 비율이다. 달리 이야기하면 97.5%의 영화가 한국 자막 (일부 영어자막, 일부 아시안) 중심이라는 이야기고, 넷플릭스는 한국 영화를 내수용으로 취급하지 글로벌 용으로 취급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물론 이 비율이 아주 정확한 것은 아니다. 이미 글로벌 판권을 팔았거나 했을 경우에는 넷플릭스가 원했다고 하더라도 내수용으로밖에 제공할 수밖에 없었을 테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수용의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았다는 것을 부인하긴 힘들다.
그럼 여기서 다시 질문. 우리의 영화는 글로벌 시장에서 통할 수 있을까? 지난 30년 가까운 시간 동안 내수 시장의 성장에 기대서 스스로 우리의 영화 경쟁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 등의 화려한 수상 이력이 우리 스스로 보편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 건 아닐까? 예술 영화의 수준은 높아도, 상업영화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을 우리는 스스로 외면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이야기를 했다. 지금 영화는 영화의 경쟁력을 높이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지난 시기 그렇게 떠들었으나, 여태껏 해결하지 못한 불공정이니 하는 것들을 해소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걸 해소하더라도 우리의 2억 명 시장이 돌아오지는 않는다고. 그러니 무엇보다도 글로벌이란 목표 의식을 가지고, 글로벌로 가기 위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고, 정부에게 무엇을 도와달라고 할 지를 고민하고 이야기해야 한다고.
어쩌면 내 주장은 영화인들에게는 낯설기만 한 이야기였을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