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시장, 다시 부상할 수 있다

2025년 영화 시장이 말하고 싶은 것들

2026년의 첫머리에서 되돌아본 2025년 한국 영화 산업의 성적표는 참혹하기 그지없다.


1억 600만 명. 2025년 총 관람객 수다. 한국영화의 황금기였던 2019년 대비 47% 수준이다. 2024년 대비 14%가 감소했다. 2024년에는 <파묘>와 <범죄도시 4>가 천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한국 영화의 티켓 파워를 그나마 유지했다면, 2025년도에는 <좀비딸>을 제외하곤 500만을 넘긴 한국 작품도 없다. 전 세계에서 극장이 피크타임 대비 회복률로는 한국이 거의 바닥이다.


일부 그래프가 잘못 그려진 건 Gemini의 오작동 때문


팬데믹이 종료된 이후 지난 2~3년간 업계는 "내년이면 회복될 것"이라는 희망 섞인 주문을 외쳐왔었다. 하지만 2025년의 데이터는 더 이상 막연한 희망은 의미 없다고 선언하는 것처럼 보인다. 국민 1인당 연4회를 넘기던 평균 관람 횟수는 2회 미만으로 추락했고, 산업의 허리를 지탱하던 중박 영화들은 자취를 감췄다. 천만 영화가 한두 편 나온다고 해서 무너진 저변이 회복될 수 없을 것이라는 비관론이 팽배해 있다. 이 때문에 "다시 독립영화로"란 외침이나, "40억 미만의 작품"에 집중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나올 정도다. 단순히 경기가 안 좋아서가 아니라, 한국인의 라이프스타일에서 '극장 관람'이라는 행위 자체가 도려내진 것은 아닌가 하는 구조적인 공포가 2025년 내내 영화계를 짓눌렀습니다.


상반기의 침묵과 하반기의 대반전: 극명한 온도 차가 보여준 희망


그러나 이 절망적인 총합의 숫자를 시기별로 쪼개어 들여다보면, 우리는 아주 기이하고도 흥미로운 현상을 목격하게 된다. 바로 상반기와 하반기의 실적이 마치 다른 나라의 이야기인 것처럼 극명한 온도 차를 보이고 있다는 점이다.



상반기(1월~6월)는 그야말로 '보릿고개'였다. 관객 수는 약 4,200만 명에 그쳤다. 이러다 연 1억 명도 못 채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기대했던 텐트폴 영화들이 줄줄이 흥행 참패를 기록한 것이 컸다. 봉준호 감독의 <미키 17>이나 톰 크루즈의 <미션 임파서블 8> 같은 확실한 흥행 보증수표들조차 300만 명 초반대에 머물렀다. 마블과 디즈니의 실사 영화들은 100만 명을 겨우 넘기거나 그조차 실패하며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지 못했다. "극장은 이제 끝났다"는 말을 부인할 수가 없었다.


하지만 하반기(7월~12월)에 들어서자 거짓말 같은 반전이 일어났다. 상반기 대비 2천만 명이 많은 약 6,300만 명이 극장을 찾았다. 상반기 대비 1.5배다. 이 흐름을 주도한 것은 놀랍게도 여름 시장의 이변이라고 할 수 있는 <좀비딸>과 가을의 <귀멸의 칼날>, 그리고 연말의 <주토피아 2>와 <아바타: 불과 재>였다. 특히 웹툰 원작의 코미디 <좀비딸>이 기록한 564만 명의 흥행은 거대 자본이 투입된 블록버스터들이 추풍 낙엽처럼 떨어지는 와중에 일궈낸 성과라 더욱 충격적이었다.


한국영화의 점유율이 하락했다는 건 그리 중요하지 않다. 극장에 사람이 모이기만 한다면 한국 영화에 대한 투자가 다시 재개될 수 있는 여지가 있고, 자연스럽게 점유율도 상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주토피아 2>와 <아바타: 불과 재>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그만큼 하반기 약 6,300만 명은 사실상 7천만, 8천만명의 잠재적 효과를 가진 관람객 숫자이고, 그래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숫자다.


상반기의 침묵을 깨고 하반기에 폭발한 이 에너지는, 극장 관객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하반기의 실적으로만 따진다면 연간 1억 3천만 명 이상을 예상해 볼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특히 분기별로 살펴보면, 드디어 한국 영화 시장이 2025년 상반기에 저점을 찍고 하반기부터 우상향할 수 있는 추세를 타기 시작했다는 점 역시 중요한 포인트다. (연도별로 보면 2025년이 저점을 찍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덧붙여 무엇보다 하반기 실적은 지난 2년간 한국 영화계를 괴롭혀온 몇 가지 가설들이 힘을 잃기 시작했다는 것을 의미하다는 점에서 더더욱 중요하다.


무너진 가설들: 티켓값 저항과 2030 세대의 귀환


2024년부터 2025년 상반기까지 영화계가 부진의 원인으로 지목했던 것은 크게 두 가지였다. 첫째는 "티켓값이 너무 비싸다"는 가격 저항론이었고, 둘째는 "OTT에 익숙해진 2030 세대가 극장을 영원히 떠났다"는 세대 이탈론이었다. 하지만 하반기의 폭발적인 흥행세는 이 두 가지 우려가 모두 기우였음을, 혹은 공급자들의 핑계였음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먼저 가격 저항론은 관객들의 선택적 소비 패턴 앞에서 힘을 잃었다. 1만 5천 원이라는 티켓값이 절대적인 장벽이었다면, 하반기의 흥행작들 역시 외면받았어야 마땅했다. 그러나 2030 세대는 자신들이 열광하는 애니메이션 <귀멸의 칼날>을 보기 위해 일반관보다 훨씬 비싼 아이맥스와 돌비 시네마를 예매하는 데 주저함이 없었고, <아바타: 불과 재>의 2만 원이 넘는 티켓 역시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반면, 완성도가 떨어지거나 기획이 안일한 영화에는 통신사 무료 예매권조차 쓰지 않았다. 이는 관객들이 돈이 없어서 안 오는 것이 아니라, 지불할 가치가 없는 콘텐츠에 돈을 쓰지 않는 '합리적이고 냉정한 소비자'로 진화했음을 의미한다. OTT란 값싼 대체재가 존재하는 상황에서, 돈을 내고 볼만한 콘텐츠냐 하는 것이 선택의 기준으로 명확히 세워졌기 때문이다. 반대로 영화만 좋다면 극장을 찾지 않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기도 했다. 물론 여기서 영화가 좋다는 기준이 과거와 달라졌다는 것은 분명하다. 평론가들의 평가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자기들의 판단이 가장 중요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는 건 '2030 세대의 극장 외면'이라는 공포가 해소되었다는 점이다. 팬데믹 기간 동안 극장 문화를 경험하지 못해 '잃어버린 세대'가 될 것이라던 20대는 하반기 흥행의 주역이었다. 그들은 <좀비딸>의 B급 감성에 환호하며 자발적인 바이럴 마케터가 되었고, <주토피아 2>의 세계관에 몰입하며 N차 관람 문화를 주도했다. 이들에게 극장은 넷플릭스나 유튜브 쇼츠와 경쟁하는 열위의 플랫폼이 아니었다. 오히려 스마트폰 화면으로는 절대 채울 수 없는 압도적인 시청각 경험과, 같은 취향을 가진 사람들과 한 공간에서 웃고 떠드는 '커뮤니티적 체험'을 제공하는 대체 불가능한 놀이터였다. 2030이 돌아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그들을 불러낼 매력적인 '영화'가 그동안 없었을 뿐이라는 사실이 2025년 하반기에 명확해졌다.


그들이 선택할 수 있는 영화를 만들 수 있다면


2025년의 박스오피스 분석을 통해 우리는 몇 가지를 확인할 수 있다. 가장 우선시 되어야 할 명제는 "어떤 영화든 일단 사람을 극장에 모으는 것이 최우선"이라는 점이다. 그것이 할리우드 블록버스터든, 일본 애니메이션이든, 한국의 중 저예산 코미디든 국적과 장르를 불문하고 극장이라는 물리적 공간에 관객이 북적이는 풍경을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


관객이 극장을 잊지 않고 찾아오는 습관이 유지되어야 한국 영화도 그 낙수 효과를 누릴 수 있고, 전체 생태계가 순환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25년 하반기는 외화와 애니메이션이 끌고 한국 영화가 미는 형국을 통해 극장이 여전히 매력적인 오프라인 플랫폼임을 증명했다.


이제 투자배급사들과 제작자들은 "제작비를 낮춰 리스크를 줄이자"는 소극적인 방어 전략을 넘어, 더 본질적인 고민을 해야 할 때다. 물론 거품이 낀 제작비를 합리화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단순히 돈을 적게 쓰는 것만으로는 떠나간 관객을 잡을 순 없다. 2025년의 성공 사례들이 가리키는 방향은 명확하다. 바로 2030 세대가 반응하고, 그들이 환호하며, 그들이 SNS에 퍼 나르고 싶어 할 만한 '확실한 색깔'을 가진 작품을 만드는 것이다.


어설프게 전 세대를 아우르려다 아무도 만족시키지 못하는 '무색무취한 대작'들의 시대는 끝났다. 대신 <좀비딸>처럼 타깃층의 니즈를 날카롭게 파고들거나, <아바타>처럼 극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확실한 체험을 제공해야 한다. 관객은 준비되어 있다. 그들은 비싼 티켓값을 지불할 능력도 있고, 극장까지 발걸음을 옮길 열정도 남아 있다.


2025년은 우리에게 "극장의 위기는 플랫폼의 위기가 아니라 콘텐츠 기획력의 위기였다"는 것을 분명히 했다. 어느 틈엔가 우리는 상업영화의 기획력이 진부했고, 발전하지 못했다는 것을 애써 티켓 가격이나 팬데믹으로 무마하려 했던 것이 아닌가 싶다.


2030 세대의 취향을 정확히 조준한 좋은 작품만 있다면, 1억 600만 명이라는 숫자는 언제든 다시 1억 3천만 명으로, 혹은 1억 6천만명으로 더 나아가 2억 명으로 솟구칠 수 있다는 가능성, 그것이 2025년이 우리에게 보여준 진짜 결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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