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는 '기술자'를 대체하지만 '예술가'는 대체할 수 없다
할리우드 리포트에 기사가 하나 떴다. 그런데 제목이 요상하다. "대사를 할 때마다 줄거리를 서너 번씩 말해야 했었다"라고. 기사 내용을 보면 맷데몬과 밴애플렉이 최근 출연한 넷플릭스 오리지널인 <The RIP>을 홍보하기 위해서 나간 팟캐스트 내용을 정리하면서 굳이 저 대목을 골라 쓴 게 얄밉기도 하면서도 한편으론 넷플릭스형 작품의 만듦새이기도 하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얼마 전 언급한 대홍수에서도 그랬지 않나. 극장 영화는 극장 문을 나설 때 느끼는 총체적 만족감으로 평가한다면, 넷플릭스 영화는 초반 시청자를 잡아둘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고. 마치 스마트폰 이후의 음악산업이 긴 전주를 포기하고 후크송 중심으로 이동했듯이 말이다.
기사의 내용이야, 사람들이 하도 스마트폰을 쳐다보면서 영화를 보니, 줄거리를 말해 주지 않으면 무슨 내용인지 모르기 때문이라고 쓰고 있지만, 2시간 반 넘는 팟캐스트 내용이 그게 전부일 리는 없지 않은가?
그래서 팟캐스트를 듣기 시작했다. 이어지는 내용은 이 팟캐스트 내용을 정리한 것이다. 넷플릭스로 인한 영화 작법에 대한 이야기 이상의 이야기가 들어있었다. 자 그럼 따라가 보자.
먼저 JRE(The Joe Rogan Experience)에 대해서 알아보자. 이 팟캐스트의 호스트인 조 로건은 스탠드업 코미디언이자 UFC 해설자로 이름이 높다. 10대 때 태권도 선수로 활동했고 브라질리언 주짓수 블랙벨트까지 보유한 진짜 무술인이다. 그래서 기술적 분석이 매우 정교하고, 격투기에 대한 열정이 엄청나다. 팬들은 UFC 중계석에서 소리 지르는 대머리 아저씨로 부른다. 정말 말 잘한다. 그러나 정작 JRE가 세계 1위의 팟캐스터가 된 건 무려 16년간 일주일에 두서너 편을 꾸준히 생산해 온 성실성에 있다.
최근에 스포티파이와 무려 3,500억 원에 달하는 천문학적인 액수의 계약금을 체결했다고 소문이 날 만큼 압도적인 파급력을 자랑한다. 편집과 시간 제약이 없는 무제한의 자유를 보장하는 독보적인 형식 덕분에 일론 머스크부터 할리우드 스타, 대선 후보까지 아우르는 광범위한 게스트의 스펙트럼을 확보하고 있으며, 이를 통해 단순한 인터뷰를 넘어 현대 사회의 가장 내밀하고 깊은 이야기가 오가는 대체 불가능한 플랫폼으로 자리 잡았다. 이 때문에 현대 미국 사회의 거의 모든 이슈와 문화를 기록한 거대한 '구술 역사(Oral History)' 아카이브이가 되었다.
좌우간 이 JOE 2440번째 게스트로 벤 애플릿(Ben Affleck)과 맷 데이먼(Matt Damon)이 나왔다. 이번에도 주제를 넘나 든다. 애플릿과 데이먼이 공동제작한 넷플릭스 오리지널 더 립(The RIP) 홍보 목적으로 나왔을 터지만, 첫 시작부터 야생성이 넘쳐 난다.
대담의 시작은 현대 할리우드에 대한 씁쓸한 진단에서 출발한다. 조 로건과 두 배우는 오늘날의 스타들이 홍보 담당자에 의해 지나치게 관리되고 안전한 길만 걷는 현실을 개탄한다. 과거 예술가들이 뿜어냈던 그 위험하고도 매혹적인 '미친 에너지(Crazy Energy)'는 어디로 사라진 것일까? 이 질문에 맷 데이먼은 20대 시절 뉴욕의 한 치과에서 겪었던 기이한 체험을 꺼내놓는다. 그것은 통제되지 않는 천재성의 상징, 헌터 S. 톰슨(Hunter S. Thompson)과의 만남이었다.
헌터 S. 톰슨(1937~2005)이 누구인가? 객관적이어야 한다는 저널리즘의 규칙 따위는 개나 줘 버리라는 생각을 가진 언론이었다. 취재 현장에 깊숙이 개입하여 자신의 주관적 경험과 감정을 여과 없이 쏟아내는 파격적인 취재 방식인 '곤조 저널리즘(Gonzo Journalism)'의 창시자이자 미국 반문화(Counter-culture) 운동의 전설적인 아이콘으로 알려져 있다.
《라스베이거스의 공포와 혐오》에서 잘 드러나듯, 그는 평생을 마약, 알코올, 총기, 그리고 예측 불가능한 기행으로 점철된 삶을 살며 기성 권위와 사회적 규범을 조롱하고 파괴했던, 통제 불가능한 광기와 천재성이 공존했던 인물이다. 20대의 멧 데이먼이 이 톰슨을 만난 것이다.
어느 날 맷이 치과 대기실에 앉아 있는데, 안쪽에서 "그가 나가려고 해요! 막아야 해요!"라는 간호사들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곧이어 문이 열리고 헌터 S. 톰슨이 등장했다. 그는 마취제(Novocain)가 듣지 않는다며 분노해 의료진을 뿌리치고, 팔에 꽂힌 정맥 주사(IV) 바늘을 그 자리에서 거칠게 뜯어내 버렸다. 팔에서 피가 뚝뚝 떨어지는 아수라장 속에서도 그는 태연했다.
그 혼란 속에서 톰슨은 구석에 있는 젊은 맷 데이먼을 발견했다. 그는 피를 흘리는 채로 맷을 뚫어지게 쳐다보더니 무심하게 한마디를 던졌다. "너 그 영화에 나온 꼬맹이구나." 맷에게 그 순간은 공포라기보다 경외감이었다. 그것은 현대의 시스템화된 할리우드에서는 결코 마주칠 수 없는, 날 것 그대로의 야성이었다.
아마도 이때 언급한 영화가 굿윌헌팅(Good Will Hunting, 1997)이었을 거다. 멧 데이먼은 이 영화로 처음으로 세상이 알아보기 시작했다.
화제는 자연스럽게 영화 산업의 구조적 위기로 넘어간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극장이라는 어둠 속에 자신을 가두지 않는다. 집에서 넷플릭스를 틀어놓고 스마트폰을 보며 '멀티태스킹'을 한다. 벤 애플렉은 이 현상을 단순한 유행의 변화가 아닌, 스트리밍 플랫폼이 강요하는 '주의력 경제(Economics of Attention)'의 필연적 결과로 분석한다.
이 대목에서 벤은 '관객 포획(Audience Capture)'이라는 개념을 제시하고 있다. 스트리밍에서는 시청자가 초반 30초 안에 자극을 받지 못하면 가차 없이 다른 영상으로 이탈한다. 이 데이터를 본 창작자는 당혹스럽다. 과거에도 분당 시청률이란 데이터가 방송사 PD를 압박했다지만, 이제는 그 강도가 더 세졌다. 서서히 감정을 쌓아 올리는 '빌드업'으론 시청자를 잡아둘 수가 없다. 자극적인 오프닝만이 살아남는다. 물론 여전히 서사로 각광받는 <소년의 시간>(Adolescence) 같은 영화들이 있지만, 이런 영화가 예외가 되어 버린 세상이다.
그는 영화 체험의 본질이 '갇혀있음(Trapped)'에 있다고 역설한다. '대부'나 '굿 윌 헌팅' 같은 명작이 탄생할 수 있었던 건, 관객이 도망칠 수 없는 극장 안에 갇혀서 2시간을 온전히 투자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화가 빨래를 개거나 인스타그램을 하면서 틀어놓는 '배경 소음(Background Noise)'으로 전락한 지금, 즉 '제2의 스크린 경험'이 되어버린 환경에서는 깊이 있는 서사가 설 자리를 잃고 만다.
Movies used to be about trapping the audience. You go into a dark room, you turn off your phone... It’s a sanctuary. Now... It’s a second screen experience.
그렇다면 이 위기를 어떻게 돌파할 것인가? 벤과 맷은 할리우드의 고질적인 '매절(Buyout)' 관행과 도덕적 해이에 주목했다. 기존 시스템에서는 영화가 성공하든 실패하든 제작진이 받는 돈이 같았기에, 현장 스태프들이 예산을 아끼거나 퀄리티를 높이려 노력할 유인이 없었다.
이에 그들이 설립한 'Artists Equity'는 급진적인 모델을 도입했다. 주연 배우인 벤과 맷이 자신들의 선지급 출연료를 대폭 깎고, 그 예산을 조명, 음향, 의상 등 현장 스태프들에게 '수익 지분'으로 나눠준 것이다. 즉, 스태프들이 영화의 '주인'이 되게 만들었다.
결과는 놀라웠다. Skin in the Game(직접 위험을 감수함)'의 원칙이 적용되자 스태프들의 태도가 180도 바뀌었다. 그들은 자발적으로 낭비를 줄이고, 더 나은 결과물을 위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벤은 이것이 단순한 금전적 보상을 넘어선 문제라고 강조한다. 자신이 만든 결과물에 대해 정당한 대우를 받을 때, 인간은 비로소 '저작자로서의 자부심(Pride of Authorship)'을 느끼며, 이 자부심이야말로 퀄리티를 결정짓는 핵심이라는 것이다.
We wanted to create a model where the crew has skin in the game. If the movie does well, the gaffer, the grip, the costume designer—they all participate in the upside. It creates a pride of authorship.
대화는 다시 기술과 예술의 본질론으로 이어졌다. AI가 시나리오를 쓰고 영상을 만드는 시대, 배우와 작가는 생존할 수 있을까? 벤 애플렉은 AI의 작동 원리를 '확률론적 기계'로 정확히 꿰뚫으며 단호한 답을 내놓는다.
그에 따르면 AI는 수십억 개의 데이터를 학습해 통계적으로 가장 그럴듯한 평균값을 내놓는 '교차 수분하는 표절 기계(Cross-pollinating Plagiarism Machine)'에 불과하다. 위대한 예술은 평균이 아닌 '일탈(Outlier)'과 실수, 불완전함에서 탄생하는데, 실수를 하지 않는 AI는 역설적으로 예술을 할 수 없다.
무엇보다 AI에게는 '내면'이 없다. 연기란 배우가 겪은 이별의 아픔, 상실감, 수치심 같은 개인적 상처를 재료로 삼는 작업이다. 벤은 "AI는 셰익스피어 흉내는 낼 수 있어도, 셰익스피어의 고뇌는 모른다"라고 일갈한다. 맛(Taste)과 고통(Pain)을 데이터로만 알 뿐 감각으로 느끼지 못하는 기계는, 특수효과 같은 기능적 업무는 대체할지언정 영혼을 다루는 창조적 업무는 결코 대체할 수 없다.
It doesn't know what it tastes like to have your heart broken.
It has no taste.
넷플릭스 오리지널 영화 'The Rip'은 앞서 논의한 그들의 철학이 집약된 결과물이다. 맷 데이먼은 벤과의 40년 우정을 이야기하며 'Shorthand(암묵적 소통)'라는 단어를 꺼낸다. 촬영장에서 눈빛만 교환해도 서로의 의도를 1초 만에 파악하는 이 직관적인 호흡 덕분에, 대본에 없는 즉흥 연기에서도 실제 상황 같은 날 선 긴장감이 탄생할 수 있었다. 여기에 실제 마이애미 경찰 특수부대 리더의 자문을 더해 '전술적 리얼리즘'을 완성했다.
더불어 벤은 동료 배우 드웨인 존슨(The Rock)의 변화에 찬사를 보낸다. 드웨인은 차기작에서 '무적의 영웅'이라는 자신의 거대한 상업적 브랜드를 내려놓고, 가발을 벗은 채 얼굴이 뭉개지는 분장을 하며 나약한 인간의 모습을 드러냈다. 벤은 이를 두고 "가장 큰 스타가 가장 큰 위험(Risk)을 감수했다"라고 평한다. 그것은 AI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 고유의 '용기(Courage)'이자, 자신의 '취약함(Vulnerability)'을 드러낼 줄 아는 예술가의 태도였다.
Whatever your brand is, to put that aside and show real vulnerability... that takes courage.
대화는 감동으로 마무리되었다. 벤 애플렉은 자신의 아픈 과거인 알코올 중독 재활 경험을 끌어올렸다. 그는 우리가 누군가의 인생 50년 중 '가장 최악의 15초'만을 잘라내어 그 사람 전체를 괴물로 낙인찍는 '캔슬 컬처'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비판한다.
캔슬 컬처(Cancel Culture)란 유명인이나 공인이 과거의 잘못된 언행이나 윤리적 흠결이 드러났을 때, SNS를 중심으로 대중이 그에 대한 지지를 철회(Cancel)하고 사회적으로 매장시키려는 집단적 보이콧 현상을 말한다. 이는 권력형 성범죄나 부조리를 고발하는 사회 운동에서 시작되어 '정의 실현'이라는 긍정적 측면도 있지만, 타인의 인생 전체를 단 한 번의 실수나 과거의 단면만으로 규정하여 영원히 추방해 버리는 '용서 없는 현대판 마녀사냥'으로 변질되었다는 비판을 동시에 받고 있다. 밴은 직접적으로 캔슬 컬처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진 않지만, 그 발언이 바로 캔슬 컬처에 관한 내용이다.
그가 알코올 중독자 모임(AA)에서 배운 교훈은 '은혜(Grace)'였다. 인간은 누구나 불완전하며 실수를 한다. 중요한 건 비난이 아니라, 실수한 사람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돕는 관용이다. 그는 보수적인 릭 페리 전 주지사가 참전 용사들의 PTSD 치료를 위해 마약성 물질인 이보게인(Ibogaine) 연구를 지지하는 모습을 예로 들며, "진정으로 사람을 살리는 일 앞에서는 좌우 이념도 뛰어넘을 수 있다"는 희망을 이야기했다.
우리에게는 더 많은 '은혜(관용)'가 필요하다. 사람들이 결함이 있을 수 있음을 인정하고 구원을 구할 수 있도록 허락해야 한다.
We live in a culture where you are defined by your worst 15 seconds. If you crop anyone’s life to their worst moment, they look like a monster
홍보물이 아니라 철학강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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