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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영신 Nov 13. 2016

YTN해직기자 조승호의 '희망' 찾기

오늘 잘 하자. 

2016년 11월 12일.
숙명여대 순헌관에서는 <방송학회 정기학술대회>가 열렸다. 올해의 대주제는 "미디어 틔움: 새길 찾기와 희망 찾기"

그 자리에 조승호 기자(YTN 해직기자)가 조용히 오셨다. 해직이란 아픔을 가지고 있는 분께 새길을 묻고, 희망을 이야기하는 것이 어불성설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잠시 했다.

조승호 기자는 조용히 입을 열었다. 자천 타천이든 삶을 무게로 결정을 해 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겸손과 조언이 돋보였다. 동료들을 비난하지 않았다. 그 진중한 이야기를 묻고 있기에는 너무 울림이 커 녹취를 풀어 기록이나마 남겨본다.


통일부 출입기자로 평양을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구호의 도시, 평양에서 한 구호를 발견했습니다. 


“오늘을 위한 오늘에 살지 말고 내일을 위한 오늘에 살자”


http://www.dailynk.com/korean/read_photo.php?cataId=nk03100&num=103951&page=5


보는 순간 화가 났습니다. 말은 멋있는데, 내일을 위해 살자는 명분으로 오늘 수십만 명을 굶어 죽게 방치해도 된다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오늘을 저당 잡힐 수 없는 사람에게 내일은 사치일 수 있습니다.


http://reportplus.kr/?p=13765

오늘 우리의 언론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당장 오늘 죽지 않아야 내일이 있고, 10년이 있지 않을까요. 과연 10년 뒤에 언론이 생존해 있을까요?

jtbc 말고 언론의 역할을 하는 곳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선뜻 예라고 대답하기가 어렵습니다. 


jtbc가 잘하고 있습니다. 시청률 10%를 넘었습니다. 박수를 칩니다. 그러나 잘하고 있다는 관점은 다를 수 있습니다. 다른 언론사가 80점인데, jtbc가 100점을 해서 박수를 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이 50점 이하라서 80점인 jtbc가 잘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 때 그렇게 비판적이었던 언론들도 현재 jtbc처럼 80점씩 했습니다. 그런데 그 언론들이 지금은 50점짜리도 되지 않습니다. 그러니 80점이 돋보입니다. 특출나게 잘해서 환호를 받는 것이 아니라, 다른 곳이 못해서 박수를 받습니다. 그래서 더더욱 부끄럽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10년 뒤의 미래를 논하는 건 사치이지 않을까요. KBS야 수신료라도 있어서 망하지는 않겠지만, YTN은 망할 것 같습니다. 



위기의 원인


언론이 정도를 벗어났습니다. 판단의 차이가 분명합니다. 국민에게 잘 보여야 하느냐 권력에 잘 보여야 하느냐의 갈림길에서 언론은 권력에 잘 보여야 하는 것으로 자신들의 입장을 정리했습니다. 국민에게 잘 보여야 한다고 주장한 세력과 권력에게 잘 보여야 한다는 세력이 충돌했지만, 결국 권력에게 잘 보여주어야 한다는 세력이 승리했습니다. 권력이 지원을 해 주었으니까요. 


언론사 내부에서 일어나는 갈등. 이른바 노사갈등이란 표현은 상황을 왜곡시키는 표현입니다. 동등하고 수평적 관계가 아니고 일방적 조건이기에 갈등이란 표현은 적절치 않습니다. 한쪽만 갈등하고 불편해할 뿐입니다. 누구를 위에서 방송을 해야 하느냐는 질문이 왔을 때, 현재는 '권력이 불편해하지 않는 기사'를 선택합니다. 


최근에 KBS는 사드가 설치될 성주 지역에 외부 세력이 진입했다는 기사를 보도하고자 했습니다. 그런데 대구 KBS 기자들이 이를 거부했습니다. 자기들의 눈으로 보기에 성주 지역에 반대 세력이 진입했다고 볼 이유가 없었으니까요. KBS는 이들 기자를 징계위원회에 회부했습니다. MBC는 국민에게 잘 보여야 한다고 이야기한 기자나 PD들을 구로나 일산으로 보냈죠. YTN도 그렇구요.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945689


청와대 출입기자들이 박근혜 대통령에게 질문 하나 못했다고 여러 사람들이 욕을 합니다. 기자들도 비판을 했습니다. 그러나 질문을 할 수 있는 기자라면 청와대를 출입하지 못했을 겁니다. 했다면 징계를 받았을 것이구요. 국민을 대표해서 누구에게든지 질문을 해야 한다고 배웠지만, 그건 교과서였습니다. 해직되고 나서, 학교 은사님들을 찾아뵙고 항의하고 싶었습니다. 교과서와 현실은 다르다고 말입니다.


발표 저널리즘??: 의혹보다는 해명 먼저


기자들의 생각도 다 똑같지는 않습니다. 그래야 하는 것이구요. 그런데 자기 목소리를 내는 기자들은 아웃(Out)됩니다. 그럼 어느새 보도국은 같은 목소리를 내는, 내어야 하는 사람들로만 가득 찹니다. MBC는 비정규직 기자들, No라고 하지 못하는 기자들이 핵심 역할을 수행합니다. 


자연스럽게 발표 저널리즘이 등장했습니다. 의혹에 대한 보도보다는 해명을 보도합니다. 

한겨레 등 몇몇 언론사들이 의혹을 제기했을 때 YTN 등은 해당 기사를 따라가지 않습니다. 청와대가 아니라고 발표를 하면 '청와대가 아니라고 밝혔다'라고 기사를 냅니다. 

내부에서 발제를 하지 않은 것이 아닙니다. 내부 기자들은 이런저런 아이템으로 기사를 만들어오고 의혹을 제기하자고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기사들은 묵살됩니다. 청와대의 공식적인 발표가 나오면 그걸 가지고 보도를 할 뿐입니다.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겁니다만 기자가 편하려면 그렇게 보도해야 합니다. 의혹은 보도할 수 없습니다. 위험부담을 감수해야 하는데, 책임질 수 있어야 하는데, 그럴 자신이 없다면 의혹은 보도하지 않는 것이 안전합니다. 해명이 나오면 보도할 수 있습니다. 이건 소스가 분명하니까 위험 부담이 없습니다. 발표를 해 주어야 그걸 보도하는 것이지요. 기자도 편안함을 선택하고, 이를 회사가 조장합니다.


데스크권의 등장


제가 1992년부터 기자 생활을 했습니다. 당시 한국일보 보도국은 논쟁이 심한 곳으로 알려져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언론계는 선배라는 호칭을 씁니다만, 한국일보는 형이란 호칭을 씁니다. 그 형 동생들이 특정 보도 여부를 놓고 언성을 높이곤 했습니다. 심지어 술자리 등에서는 멱살잡이도 하고 주먹질도 했다곤 합니다. 이를 두고 굉장히 건강한 보도국을 가지고 있다고 평했습니다. 고참과 신참이 서로 자신의 의견을 개진하고 논쟁할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올바른 보도를 위한 첫걸음일 겁니다.  


그러나 2008년 이후 YTN 뿐만 아니라 거의 모든 언론에서 이런 모습을 사라집니다. 거부나 반론은 공식적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때부터 데스크권이란 용어를 언론사 측에서 사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는 데스킹이란 용어를 사용하긴 했지만 데스크권이라는 용어는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기사를 뒤져보았더니, 2006년 데스크권이란 용어가 처음 사용되긴 했다. 조승호 기자가 언급하는 데스크권과 유사한 내용의 보도는 2010년 경향신문 보도가 처음이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005052329565&code=940705


특정 보도를 거부하거나 반대하면 데스크권에 대한 도전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어떤 후배는 기사 발제에 항의하고 나오다 열 받아서 보도국 문을 "탁" 치고 나온 모양입니다. 그 후배는 징계 1개월 처분을 받았습니다. KBS, YTN 등에서 이런 식으로 내부 토론이 사라졌습니다. 전 혼자 보다는 둘이, 둘 보다는 셋이 이야기를 하는 것이 합리적인 결정에 도달할 가능성이 많고, 논쟁과 토론이 일반적으로 행해져야 제대로 된 보도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데스크권에 대한 도전으로 응징한다면 기자들은 아주 힘든 선택을 해야 합니다. 하라는 대로 할 거냐 아니면 게기고 징계를 받을 거냐. 


요즘 그나마 보도다운 보도가 나오는 것은 '말이 안 된다고 하던 것이 말이 되면서 회사의 발언권이 약해졌기 때문'입니다. 한계가 있지만 진일보한 건 맞습니다. 


사장을 제대로 선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럼 대안은 뭐냐.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뭐냐라고 반문하실지 모르겠습니다. 아주 상식적으로 기본에 충실하는 게 제일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 기본이 가능할 수 있는 조건이 되어야 합니다. 


해직되던 시점에 착각한 게 있습니다. 제가 정치부 국회반장을 하고 있었습니다. 정치부 국회반장은 전체 보도국의 선임이고, 수석 차장입니다. 그때 현덕수 YTN 노조위원장이 와서 낙하산 사장 반대에 동참해 달라고 했습니다. 전 동참하지 않았습니다. 사장이 누가 오던지 기자가 제대로 된 보도를 하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사장이 보도국장을 세웁니다. 보도국장은 정치 부장을 세웁니다. 그리고 정치부장은 절 인사발령을 냅니다. 인사가 만사다란 말을 실감했습니다. 훌륭한 보도국장을 세우는 것도 힘들고, 지켜내는 것도 힘듭니다. 사장 선임이 가장 중요합니다. 


적어도 언론에서는 권력이 사장을 선임하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거버넌스를 제대로 갖추어야 합니다. 은메달 백개보다 금메달 한 개가 소중합니다. 


구조를 바꾸어야 합니다. 

방송이 바뀌어야 합니다.

기자들 정신 차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사장을 제대로 선임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오늘 언론이 먹고 삽니다. 그래야 내일도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귀한 시간에 초대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두서없게 전해드려서 죄송합니다. 



<방송학회>에서 발표를 해 주신 조승호 기자는 YTN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2014년 대법원은 징계무효확인소송에서 권석재, 정유신, 우장균 기자의 해고는 무효라고 판결했지만, 노종면, 조승호, 현덕수 기자의 해고는 정당하다고 판결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20574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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