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은 인간이 어떻게 보일까
"참 인정이 없군요." 하고 누군가 어느 날 그에게 말했다. 천만에, 그는 인정이 있는 사람이었다. 그 인정으로 해서 그는 매일 스무 시간을, 살기 위해서 태어난 사람들이 죽어가는 광경을 참고 볼 수가 있었던 것이다. 그 인정으로 해서 그는 매일 같은 일을 다시 시작할 수가 있는 것이었다. 이제 그에게는 꼭 그만큼의 인정밖에는 남은 것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그 정도의 인정이 어떻게 사람을 살려주기에 충분할 수 있겠는가?
알베르 카뮈, <페스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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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입원했다.
하얀 환자복은 사람을 무섭게 한다. 코로나라 보호자 입실도 한 사람만 가능하다기에 아빠가 종일 동생 곁에 있고 나는 탑건 2를 다시 봤다. 다시 봐도 속이 시원해지는 고공비행.
동생은 오늘 아침 두 시간여의 수술을 마치고 금식 중이다. 여전히 면회는 되지 않는다. 일을 하고 와서 아빠에게 부채살 스테이크를 구워드렸다. 동생은 디스크 수술을 했다.
동생은 입원하기 전부터 담당교수와 주치의를 많이도 찾았다. 스물다섯에 전신마취를 해야 하는 허리 수술이라니, 안 할 수 있다면 안 하는 방향이 좋지 않나. 의사는 바쁘다. 대면은 고사하고 전화 한 통도 연결이 되지 않는다. 동생은 척추측만으로 유명한 병원에서 10분마다 예약이 꽉 차있다는 교수님에게 진료를 받았다. 그 진료 이후에는 10분의 틈을 뚫지 못하고 수술 날에나 다시 얼굴을 봤을 것이다. 동생의 뼈를 뚫고 삐져나와 신경을 누르고 있는 그 디스크는 의사들에게 흔하디 흔한 걸까? 시큰둥하게, 아무렇지 않게
이 정도면 수술해야 돼요. 하는 것은.
의사는 어떤 직업일까. 사람이 사람으로 보일까, 잘 포장된 내장이 걸어 다니는 것으로 보일까. 동생이 찍어온 씨디를 들여다보다가 화면으로는 까맣고 하얗게만 보이는 것들이 사실은 전부 피와 살로 이루어진 붉디붉은 장기라는 것을 생각하고 비위가 상했다. 동생은 (깨어나고도 괄약근의 힘이 돌아오기 전까지 안심할 수 없는) 전신마취를 하고 등의 피부를 갈라 터진 디스크를 떼어냈을 것이다. 뽀얗고 보드라운 동생의 피부 밑에는 내버려 두면 하반신 마비를 불러오는 무서운 디스크가 피와 살로 감싸여 있었을 것이다. 빨간 피를 쉴 새 없이 보아야 하는 눈을 진정시키기 위해 녹색이라는 의사의 수술복.
의사는 어떤 직업일까.
동생은 만나본 모든 의사들이 '싸가지가 없다'고 했다. 이지경까지 된 것은 제때 치료하고 쉬지 않는 동생의 탓이라는 말을 들었다고.(맞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도 싸가지가 없는 것은 없는 것이다.(씨디 화면을 틀어주고 3분 이야기한 것 만으로 10만 원을 받아갔으니까) 의사는 서비스직이 아니라서 때로는 무서울 만큼 무례한 걸까.
의사는 어떤 직업일까. 의사는 인간이 어떤 생물로 보일까. 해부대 위의 개구리처럼, 흥미진진한 지식의 실험체처럼. 수술을 마치고 온갖 아픔을 호소하는 동생의 이야기를 듣다 보니 (멍청하게) 수술을 감행한 그 애의 선택보다 이 수술을 가능한 한 유예해 주지 않은 (얼마나 바쁜지 예약이 하늘에 별따기인) 의사들이 원망스럽다. 동생은 전신마취에서 깨어났고 스스로가 가진 인간으로서의 존엄성을 의심하고 있다. 간호사 셋이서 요도구를 찾아 소변줄을 꼽고 침대에서 옴짝달싹 못한채 누워있어야만 하는 병원은 어떤 곳일까. 아픈 사람이 인간으로서 존재할 수 있는 곳일까.
삼일 꼬박 아빠를 태워가고 태워오는 기사 노릇을 하고 있다. 면회도 못 가고 수술 전후에 같이 있을 수도 없다. 동생은 병원에서 싸가지없는 의사들과 같이 있다. 아픈 사람을 인정머리 없어 뵈는 틈바구니에 혼자 둬야 한다. 영 고까운 일이다.
하아, 선생님 참
인정이 없으시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