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가진 소수성에 대하여
생리를 시작했다. 샤워하면서 다리 사이로 후드득 떨어지는 핏덩어리를 보니 과히 마음이 좋지 않다. 샤워 중에 했던 온갖 잡생각을 의식의 흐름대로 적어보는 글.
굴처럼 뭉그러진 검은 피가 바닥에 고여 문양을 만든다. 얼추 십오 년째 해오는 생리인데 늘 역겹다. 요 며칠 피부가 안 좋았던 게 생리 때문이었을까. 속이 안 좋아서 구역질을 했던 것도 생리의 전조였을까. 꼴깍 죽은 것처럼 잠을 잔 것도 이것 때문이었던 걸까. 바닥을 헹궈내며 이런 고민이나 하고 있는 내가 한심스럽다. 그나마 나이 먹고는 감이란 게 생겨서 멀쩡한 바지에 피 얼룩을 묻히는 일은 줄었다. 내장 안에 사는 주제에 노크도 없이 튀어나오는 무례한 것들. 사람들은 생리통이 없는 나에게 복 받은 거라고 말한다. 아픔도 없는데 왜 그렇게 싫어하냐는 물음도 자주 듣는다. 왜 누군가는 이 현상으로 인한 통증 때문에 아파야 하고 나는 당연히 이 현상을 몸이 늙을 때까지 납득하며 살아야 하나. 오래 끊었던 피임약을 다시 먹는다. 오늘이 첫날이니까 오늘부터 한 알 씩이다. 될 수 있는 데까지 생리를 미루면서 살 것이다. 평생 안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고민 없이 저지를 것이다. 생리대를 부착한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부터 사타구니가 텁텁하다. 역겹다. 아주 역겨운 일이다.
샤워기 물이 쏟아져도 멎지 않는 핏물을 보니 <언니의 폐경>이 떠오른다. 수많은 남작가가 써먹었던 자궁과 임신과 강간과 정조 따위의 관념들에 내 몸이 하나의 예술 작품 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어린 날. 남자가 개소리를 참 곱게도 써 놨다. 육신을 가진 것은 작품이 아니라 인간이다.
현충사를 이웃으로 둔 곳에 살던 나는 이순신 장군을 좋아했다. 촬영이 없는 주말마다 엄마 아빠와 동생 손을 잡고 현충사 연못의 거북이 위에서 승마 놀이를 했다. 내가 <칼의 노래>를 사랑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칼의 노래를 두 번 다시는 읽지 않는다. 사랑했던 모든 것들이 예전 같지 않은 것은 글뿐만 아니라 그림에서도 마찬가지다. 구스타브 클림트, 파블로 피카소, 툴루즈 로트렉, 에드가 드가, 오귀스트 로댕, 빈센트 반 고흐, 폴 고갱. 모르기 때문에 사랑할 수 있었다. 나는 더 이상 아름다운 작품을 작가와 떼어놓고 보지 않는다. 사랑할 만한 것들이 점점 세상에서 사라졌다.
유구한 시대를 거쳐 세상이 얼마나 여자에게 거지 같았는지를 생각한다.
내가 남자로 태어났으면 어땠을까. 태어나기 전에 고를 수 있다면 일말의 여지도 없이 고추가 달리는 쪽을 선택했을 것이다. 어떤 전제로도, 무슨 조건으로도 바뀌지 않는다. 나는 남성을 선택한다.
그런데 막상 아들로 자란 내 모습을 상상하면 끔찍해진다. 유치원 때부터 당연하게 파란 책가방을 고르고, 초등학교 때는 좋아하는 여자애의 치마를 뒤집거나 머리를 잡아당겼겠지. 중학교에 올라가면 친한 놈들과 함께 음란 동영상을 돌려볼 것이다. 진짜 여자와 섹스를 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 수도 없이 상상하고 내 미래의 와이프를 그려보면서. 고등학생 즘이라면 진짜 섹스를 해볼 수도 있겠다. 아니, 하고 싶어서 안달이 났을 거다. 학교에 누가 잘 대 준다느니 하는 소문에 귀를 쫑긋 세우면서, 돈이라도 쥐여주면 한번 자 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으로 수업시간을 보낸다. 그러다 기필코 동정을 떼고 나면, 친구들 앞에서 술 한잔과 늘어놓을 이야기가 늘어난 거다. 대학에 가서도 취업을 하고서도 비슷하다. 예쁘고 몸매 좋은 여자. 내 자식 얼굴에 걱정 없게 성형 안 한 여자. 직장은 반듯하고 문란하지 않은 여자를 골라 혼기가 찰 때까지 실컷 만나본다. 아이가 없을 거란 생각은 안 한다. 나는 장남이고, 대를 이어야 하니까. 우리 가문이 그렇게 뼈대가 있는 가문이라 그거야. 나는 이만하면 잘생긴 편이고, 여자한테도 잘해준다. 요즘 세상에 뭐가 그렇게 힘들다고 틈만 나면 불평하는 여자들이 참 한심해 보인다.
어쩌면 여자로 태어나서 나는 이런 인간이 될 수 있었다. 완벽하지 않지만, 적어도 저런 인간은 되지 않았다. 나 자신을 비롯하여 주변에서 일어나는 예시와 사건들을 보고 있으면 이 사회는 인간을 육성하는데 실패했다는 것이 나의 결론이다. 지금의 2-30대는 곪고 썩었다.
우리 외가는 딸만 여섯에 막내로 아들을 하나 두었다. 잘생기고 멋진 외삼촌이다. 나는 어릴 때부터 외삼촌을 아주 좋아했다. 그런 외삼촌이 병원에서 바꿔온 남의 자식이었다는 사실을 스물세 살에 알았다. 외할머니가 모든 재산을 외삼촌 앞으로 하겠다고 말했을 때 엄마와 다섯 이모가 집 안을 난장판으로 만들고 들은 소식이었다. 병원에서 바꾼 자식. 내가 손녀로 행복하게 놀러 다니던 그 집은 아들이 없어 없던 고추를 만들어서 오는 곳이었다. 사랑하던 것을 또 잃었다. 그 집도 나 같은 큰손녀는 필요 없을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 스승이라 부르라며 내 어깨를 감싸던 존경하는 선생님. 40대에 애가 셋 딸린 그 사람은 화실에서 그림을 그리는 나를 오피스 와이프라고 불렀다. 자주 안고 자주 뽀뽀하고 나를 각별히 아꼈다. 오피스 와이프가 무슨 뜻인지 18살의 나는 알지 못했다. 고 삼 때 졸업하고 결혼해주면 지금 사귀는 여자 친구와 헤어지겠다고 말했던 열세 살 위의 카페 사장. 동생과 함께 갔던 영국 여행에 부모님은 물론 조카까지 보여주며 에스코트해주고는 한국에서 잠든 나의 가슴을 더듬었던 게럿. 어린 나이에도 어깨 넘어 들어오는 연예계가 여자를 취급하는 모든 방식들. 그런 곳에서 떠나온 나의 뒤로 붙었던 온갖 소문들. 이 것이 내가 살아온 여자다. 여자인 나는 이렇게 살았다.
여자로서의 소수성을 가진 이야기는 여기서 그만하고 싶다. 아랫배가 싸르르해서 속도 좋지 않은데 쓰고 있다 보니 지끈지끈 편두통이 올라온다.
아시아인의 소수성에 대해 생각해본다. 나는 백인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들은 유쾌하게 무례하고, 다정하게 폭력적이다. 그들에게 나는 인간이 아니라 변방에서 온 작은 동물들처럼 느껴질 거다. 왜냐하면 나도 너희들이 인간 같지 않으니까. 덩치는 커다랗고 다른 언어 다른 생활을 가진, 철창 속의 무언가 같다. 감은 정말 무섭다. 생리가 터질 기미만 알려주면 좋겠는데 귀신처럼 멸시와 차별에도 신호를 보낸다. 서양인들의 타고난 나이브함에서 아시아를 안쓰럽게 보는 그 감이 빠지지를 않는다. 어느 정도 말이 통하는 정도의 차이일 뿐 극단적인 이질감은 늘 똑같이 다가온다.
누군가를 알아가기 전까지는 그저 짐승이다. 호주에서 백인들이 득실거리는 카페에서 일했을 때가 생각난다. 이틀 걸러 한번 꼴로 ‘한국인? 어디서 왔어? 남쪽? 북쪽?’ ‘나 한국어 알아. 김치, 김정은.’ ‘한국에도 커피가 있니? 너는 영어를 잘하는구나.’ 그들은 호의로 말하는 것들이다. 우스갯소리로, 친해지고 싶어서, 분위기를 풀기 위해서. 그 스스럼없음 역시 모두 무례다. 다들 같은 생각으로 모든 한국인에게 그 말을 하고 나는 흔하디 흔한 동양인 중에 하나가 되었다.
이러면서도 진절머리가 나는 것은 나 자신의 가증이다. 어제 친구들과의 대화 중 “올해 목표는 애인을 만들지 않는 거야.”라는 말에 “기왕 간 김에 싱가포르 핫가이를 노려봐.”라는 답장을 받았다. 그 문자를 보자마자 ‘으, 그래 봤자 다 동남아인인데 뭘.’ 하고 타이핑을 하려고 했던 나의 우매함. 나는 지금 동남아 사람들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나? 무의식적으로 열등하고 지저분하다고, 애인 삼기엔 적절치 않다고 낮은 점수를 매기고 있지 않나. 자신을 검열한다. 이 편협한 인종주의자. 적어도 이 말을 입 밖으로 내서 친구들에게 내 밑천을 까 보이지 말자. 나는 사람을 차별한다. 그리고 그렇지 않은 척 연기도 한다. 능청스럽게 답장했다.
"날 응원해 줘."
내가 가진 마지막 소수성이 남았다. 나는 여성과 남성에게 모두 성적 매력을 느끼는 양성애자이며, 주변 사람을 비롯 부모님에게도 그 부분을 숨기지 않는다. 만나는 사람마다 툭툭 던지고 다니는데 다들 신기하게 잘 받아들여주는 통에 이런 게 인복이구나 생각하고 있다. 나에게 속상한 일이 그리 많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은 다행스러운 일일까. 하지만 내 주변은 그다지 편안하지 않다. 그 애들은 죽고 싶어 하고, 섹스하며 자책하고, 교회에서 회개한다. 녀석들이 무덤에 들어가는 걸 실패해서 손목에 문신을 새기는 것을 더는 보고 싶지 않다. 그런 녀석들을 위해서라도 나는 더 많이 말해야 한다.
나는 소수자다. 그래도 이 사회의 부분에 속해서 살아간다. 어딘가에는 존재한다는 것을, 그것은 당신의 눈 앞이라는 것을, 눈을 보고 말한다. 당신은 나를 봐야 한다. 내가 여기에 서있기 때문에.
딱 한번 일하는 바에서 생경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내가 바이섹슈얼이라고 이야기 한 그 순간, 앞에 앉은 남성이 눈을 크게 뜨고 목소리를 높이며 한마디를 뱉었다. “와아, 이게 진짜 있네!” 맞다. 진짜 있다. 나는 바이지만 어디에는 게이도 있고 레즈비언도 있고 무성애자도 있다. 우리는 그렇게 존재한다. 지금도 내 친구들 중 한 명은 아마 울고 있을 것이다.
기왕 울 거 양달에 나와 울었으면 좋겠다. 세상은 어차피 차별주의자들의 천국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