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다를 사랑하면 죽을지도 몰라
다이빙을 하는 취미가 있다. 바다 아래까지 첨벙첨벙 들어가 색깔이 파아란 세계를 구경하는 걸 낙으로 삼았던 날들이었는데.
바다가 언제부터 좋았냐 하면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마 태어날 때부터 좋아하지 않았을까. 내가 지금껏 한 번도 산과 계곡을 좋아한 적 없던 것처럼.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은 그저 바다를 사랑하게 되어 있다. 거대한 운명 속에서, 숨쉬 듯 당연하게 망설일 틈도 없이 속수무책으로.
바다를 이만큼이나 사랑하면 분명 바다에서 죽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한동안 물에 들어가지 않았던 적이 있었다. 물에서 나가기 싫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더 깊이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이 정말 위험하다. 아가미 없는 짐승으로서 등골이 섬뜩했다. 너무 아름다워서 무서운 곳. 바다는 무서워하면 들어갈 수 조차 없고 애매하게 좋아하면 발 끝만 살짝 담근 겁쟁이가 되어버리고 지나치게 빠져들면 물에 잠겨 끝끝내 나올 수 없게 된다.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홀린 거다. 헤어 나올 수 없을 만큼.
나는 항상 바다에 목말라 있지만 당장 죽을 것 같다 싶으면 아빠 집 앞바다로 달려간다. 어린 아빠가 물질을 그렇게 뽐냈다던 만리포 구석의 짙은 뻘로. 갈매기 소리를 듣고, 탁한 물을 무릎까지 적시고, 세수도 한 번 하고 그렇게 온다. 지금 같은 상황에 그마저도 여의치 않을 땐, 역시 [그랑블루]다.
진정 바다를 사랑하는 사람의 가까이에서 만들었다는 느낌이 드는 영화. 바다가 너무 좋으면 태어날 곳을 잘못 고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소라고둥이라도, 하다못해 갯강구라도 좋으니 바다 밑에 살았으면. 엔조는 자꾸만 그 느낌을 육지까지 끌어올린다. 피부가 다 말라버리지 않았냐고, 당장 바다로 돌아오라고. 자크가 꿈을 꿀 때 나도 같이 바다에 들어간다.
다이버들은 공손하다. 늘 바다에게 허락을 맡는다. 웻 슈트에 오리발을 다 차려입고서도 파도가 거센 날은 오늘 용왕의 기분이 영 좋지 않은 것 같다며 허허 웃고 배를 돌린다. 그런 날은 눈치 없이 퐁당 문을 열어선 안된다. 용왕이 거절한 초대에 번복은 없다. 정중함도 자비도 없다. 우리는 바다에게 늘 불청객이다.
앞뒤로 험한 날씨에 딱 다이빙을 하는 그 하루만 파도가 착했던 적이 있다. 그럴 때 우리는 바다요정에게 인사를 한다. 마음 상한 용왕을 구슬려 딱 하루 우리를 위해 편을 들어주었다고. 바다는 변덕쟁이다. 그런 바다를 사랑하기가 쉽지만은 않다.
다이버들의 말은 또 왜 그렇게 예쁜지. 하나같이 해초 줄기처럼 매끈하고 수려하다. 물속에서 이는 조류는 너울이라 부른다. 너울이 심하니까 수중 멀미에 조심해야 해. 그런 말들. 수중 시야가 맑은 날에 이야, 청물 올라온다!라고 누군가 외쳤던 소리를 잊을 수가 없다.
청물 올라온다, 온 바다에 청물이 올라온다!
다이빙을 하고 싶다면, 바다에서의 스포츠를 즐기고 싶다면, 바다를 더 잘 알고 싶다면 바다를 사랑하면 된다. 모르는 세계에 대해 알아가듯이 바다를 찍은 영화를 보고, 바다를 둘러싼 삶을 보고, 바다의 다큐멘터리를 보면 된다. 영상이 아름답고 내용이 양질일수록 바다의 매력은 배가 된다. 눈뜨고 우주를 보고 싶을 때 심해를 본다. 발 디딜 곳 없는 채로 하늘을 날고 싶다면 바다를 유영하는 상상을 한다. 그리고 딱 적당히만 좋아하자. 바다에 제 발로 들어가 죽는 육지동물은 인간밖에 없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