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생의 네이밍 센스
브런치에 글을 올리려고 보니 고쳐야 할 것들이 산더미다. 시작과 끝이 다른 글, 주제의식이 부유하는 글, 민감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글들은 조금이라도 다듬어서 올려야 할 것 같았다. 해도해조 성에 차지 않는 것들은 그냥 구석에 처박아두었다. 그러다 보니 이제는 정말 고치지 않고서는 아무것도 게시할 수 없는 때가 와버린 것이다.
생각 없이 써재끼고 훗날은 기약하지 않았던 내 못난 글들이 보인다. 어쩌면 이렇게 경솔할까. 부족할까. 주의심이 없을까. 부끄러운 일이지만 이 꼬라지인 모습도 나다. 내가 쓰는 글이니까 나를 닮은 거다.
동생은 나에게
'언니 글은 변할 생각이 없어. 혼자서 다 단정하고 결론짓고 매듭을 내 버리잖아. 나는 더 궁금해지는 글을 읽고 싶어. 이후엔 어떻게 될까, 이 사람은 이 글을 쓰고 어떻게 변했을까, 그런 거. 자신에게도 남에게도 타협이 없는 게 언니 글에서도 보여. 언니한테 맞지 않으면 남한테 맞춰주지도 않는 그 고집이 말이야. 혼자서 기승전결을 다 내버리는데 누가 읽고 싶어 하겠어? 질문에 답이 다 정해져 있는데.'
라고 했다.
융통성 없는, 편협하고 좁은 고집쟁이의 글.
날이 갈수록, 해가 지날수록 더 심해지는 것 같다. 경험이 쌓이는 건 이렇게 부메랑처럼 돌아오는구나. 안전하게 상처 받지 않고 살고 싶었던 모든 행동이 재미가 없거나 지루한 맥락으로 비춰지는, 그런 순간이 나에게도 오는구나.
제멋대로에 나 좋을 대로만 하던 우쭐거림은 그대로인데 나이는 이만큼이나 먹어 철없는 어른이 되어버렸다. 갓 태어난 아이들의 호기심 많은 반짝거림이 요란하고 시끄러운 것으로만 느껴지는 요즘. 모두가 사랑하는 인기 연예인과 인기 드라마에 질색하고 있는 요즘. 나는 바뀌어야 되는 걸까.
바뀌고 싶지 않다. 최백호와 녹색지대를 좋아하는 내가, 그래픽이 범벅이 된 영화보다 팔월의 크리스마스가 좋은 내가 나는 마음에 든다. 어떻게 좋아하지 않을 수가 있나. 김광석의 노래를 듣고 마음 떨리지 않을 세대가 더 안쓰러워질 뿐이다.
술을 진탕 먹고 어지러운 채 쓰는 글이라고는 또 내 고집밖에 없는 내용이다. 한국이나 가고 싶다. 아빠네 집 갓 태어난 새끼 강아지의 발바닥에서 나는 꼬순내나 맡고 싶다. 엄마 개의 이름이 바둑이라 새끼의 이름을 알파고와 세돌이 사이에서 고민했던 동생. 똘똘해 보이면 세돌이, 멍청해 보이면 알파고라 하겠다고 했던 동생.
태어난 강아지는 세돌이가 되었다. 눈이 맑고 털이 고와서 예뻐 죽겠다. 아빠가 보내주는 사진과 동영상만으로 함박웃음이 지어진다. 주걱턱인 아빠 개에게서는 예쁜 털 결만 물려받고 나머지는 바둑이의 깜찍한 이목구비를 빼다 박았다. 한국에 가고 싶다. 내가 떠나고 태어난 녀석이니 내가 돌아가면 몰라볼 정도로 장성한 성견이 되어있겠지. 둘도 없이 소중한 강아지 시절, 유년기의 세돌이를 마음껏 맛볼 아빠에게 심통이 난다.
동생이 보낸 문자도 기억난다.
'세돌이에게서 젖 냄새가 나.
여기에 말뚝 박아야 될까 봐.'
술을 진탕 처먹은 밤이라 유독 쓸쓸한 기분이다. 동생도 내일 시험이 있다고 가버렸다. 아빠에게 보낸 보고 싶다는 문자도 답이 없다. 외로운 밤이다.
내 글이 변할 생각이 없다고? 맞는 말이다. 가만히 있어도 살아있는 한 나는 어떤 방향으로든 변하고 말 텐데 어떻게 변할지까지 염두에 두고 살고 싶지는 않으니까. 이십여 년을 만들어온 내 방식이 마음에 들고 내 삶이 만족스럽다. 나는 지금의 나에게서 굳이 변할 거리를 찾을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해도 어느 순간 고민거리에 부딪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며 또 우당탕탕 모습을 바꾸게 될 것이다.
내가 나로서 있는 것, 그게 제일 소중하다. 외부의 무언가에는 쉬이 짓눌리지 않을 심지. 내가 죽을 때까지 나 하나만 챙기는 것도 숨 가쁜 일이다. 다른 사람에 대한 것은 몰라도 나에 대한 것은 말할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 나는 그건 싫어. 그건 괜찮아. 그런 생각이면 나와는 다르네. 내 생각은 이러 해.
이 모든 것에 대한 대답을 준비해야 한다. 예외는 없다. 중립도 없다. 나는 그런 인간이고 그렇기 때문에 고집스럽다. 이십여 년의 경험으로 성립된 내 근간의 무언가를 뒤집을만한 일이 생기면, 그것 역시 받아들일 것이다. 아직도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일이 너무나도 많구나, 하고.
변화를 싫어하지만 변하는 것에 두려움은 없다. 내가 변하기 될 때는 마땅히 그래야 할 때일 테니까. 그 순간이 오기를 매일 기다린다.
'그렇게 살아온 네가 바보야. 세상이 이렇게 눈부시고 인간은 이렇게나 선량한데 말이야.'라고 나를 혼내는 그 순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