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내 눈을 똑바로 보지를 않아
우울하다.
최근 들어 제일 우울한 기분이다.
어제는 오랜만에 기후동행카드를 충전하고 뽕을 뽑았다. 동지들을 연행한 경찰 규탄 기자회견을 참석하러 서울시 교육청을 가고, 실업급여 신청 때문에 공덕역을 갔다. 그리고 걱정이 돼서 다시 교육청에 갔다가, 거통고 동지와 지혜복 선생님이 입건되어 있는 종로 경찰서까지 또 버스를 타고 갔다. 기자회견을 하는 사이에 동지들은 유치장에 들어갔다. 그래서 강남 경찰서로 가는 지하철을 타고, 또 민주노총이 주최한 노동자들을 위한 영화 <초혼 : 다시 부르는 노래> 상영회 일정 때문에 홍대를 갔다가, 비척비척 집까지 돌아오는 버스를 탔다. 기후동행카드. 안 만들었으면 어쨌을 뻔했니. 가산 탕진할 뻔했다. 세상이 연대자들을 가만히 두지 않는다. 한시라도 평화로울까 하면 입에 가시가 돋나 보다. 아이고 삭신이야. 온몸이 쑤신다.
오늘은 경북 구미 한국옵티컬 불 탄 공장에서 고공농성을 하는 동지들에게 연대하는 희망뚜벅이의 마지막 날이다. 지금까지는 날림으로 가는 둥 마는 둥 했으니 내일이야말로 한번 참여하고 제대로 생색 날 기회다. 그러려면 아침 7시에 일어나야 하는데, 벌써 새벽 세시 반이다. 몰라. 몰라. 핸드폰 알람이 다 알아서 해주겠지.
하루에 한 번뿐인 면회라 부랴부랴 인원을 모아 달려갔던 경찰서에서는 면회를 거부당했다. 허탈하다.
그러니까, 이것은 분노다.
이대에서, 외대에서, 서부지검 폭동에서 난동을 부리는 세력들에 대한 경찰의 대응이 지진부진하고 어물거렸던 대신에, 아침 10시에 있을 교육청의 행사 때문에 8시에 동지들과 지혜복 선생님을 연행한 것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분노.
온갖 경찰들이 다 줄 서 있는 곳들을 뺑뺑이 돌고 나오니 기사 한 줄이 나있다.
친윤 경찰' 대거 승진 발탁‥10석열 '옥중 인사' 논란.
하루 전 기사일 수도 있고, 열 시간 전 기사일 수도 있다. 어제 아침교육청에서 있었던 경찰의 대응은 명백한 과잉진압이다. 오늘은 아침 10시부터 희망 뚜벅이를 시작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하고 세종 호텔 앞에서 연대 집회에 참여한 다음에 광화문 범시민 대행진으로 합류할 것이다. 그리고 저녁 일곱 시에는 교육청에서 연대동지들의 부당연행에 대한 항의 방문을 하게 되겠지. 그리고 석방되는 동지들을 맞이하고, 맞이하고, 맞이하고.
우울하다고 시작했는데 별 쓸데없는 얘기만 하고 있다. 요즘은 이렇게 산다. 쓸데없지만 열렬하게. 계속 어디의 누군가를 걱정하면서. 아마 오늘도 글은 쓰지 않을 것이다. 정신이 쏙 빠지게 분주할 테니까. 희망뚜벅이로 영등포역에서 국회, 국회에서 명동, 명동에서 광화문까지 14km를 걷는다. 그게 인생이다. 걸음을 멈춘다고 승리하지 않지만 언젠가 이길 테니 이 발걸음에 가치를 둔다. 우리가 가는 길도 선대의 열사들이 만들어둔 발자국을 따라 만들어진 것이다. 우리는 슬프지만 죽지는 않는다. 터무니없이 연행되었지만 죄인이 아니다. 죄인은 공권력이다.
들을 때마다 훌쩍훌쩍 울지만 그래도 가장 좋아하는 노동자들의 노래 가사를 하나 적어둔다.
그래 너희에겐 외세와 자본이 있고
폭력집단 경찰과 군대 있지만
우리에겐 신념과 의리로 뭉친
죽음도 함께 하는 동지가 있다
이 가사의 의미와 무게를 알아? 나는 몰라. 죽음도 함께할 자신이 없는 사람이라서. 그래도 나는 울면서 계속 나간다. 광장에, 농성장에, 집회에 간다.
이 가사가 쓰여진 핏자국이 보이니?
그래, 너. 대거 승진한 친윤 경찰? 너.
너. 너. 너.
뭐가 그리 무섭냐? 우리는 선량한 대한민국의 시민인데.
부끄러운 줄 알아라. 사랑과 진심은 침묵하지 않고 그렇기 때문에 진실은 절대로 가라앉지 않는단다.
이렇게 말해도 무서워 죽겠지? 세상이 전과 같지 않지? 소란스럽고 정신없어서 죽을 맛이지?
그래, 너.
내 눈을 보지 않는 바로
너. 너. 너.
그리 두렵냐, 이 비겁한 인간아?
무엇 때문에 울어, 이 물러터진 심장아?
<돈끼호테> 미겔 데 세르반테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