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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사장 김승연, 당신이야?

웃기지도 않는 법을 가지고 노는 것이.

by 해인


서울 교육청 앞에서 열렸던 약식집회



갈 곳 없는 사람들의 노숙과 범죄는 이미 새롭게 규정되었고 새로운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기 때문에, ‘공공장소’는 점점 법을 지키는 사람과 직장이 있는 사람, 아니면 그렇게 보이는 사람에게만 열려 있는 보호 구역처럼 여겨집니다.


토니 모리슨, <보이지 않는 잉크> 중


*

을지로 한화빌딩 앞에 있는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조합원들은 한화빌딩 1층의 개방 화장실을 사용하지 못한다. 검은 조끼를 입은 경비 4명이 문을 막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시민들은 그냥 들여보내주지만 노동자들과 그들의 투쟁에 연대하는 사람은 들여보내지 않는다. 새빨간 투쟁머리띠를 벗어도 들어갈 수 없다. 경비는 투쟁에 연대하는 청년들의 얼굴도 다 꿰고 있다. 유리문 안에 쉴 새 없이 돌아가는 비디오카메라가 있기 때문이다. 선전전을 하거나 문화제를 할 때 카메라는 평소보다 더 가까이 다가온다. 불시에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바짝 찍어놓겠다는 것처럼. 투쟁하는 사람들은 일반 시민이 아니다. 언제 거대기업을 공격하려 달려들지 모르는 예비 범죄자들일뿐.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조합원들은 한화빌딩의 화장실을 사용하지 않는다. 한 블록 옆의 미래에셋 건물이나 길 건너 시그니처 타워의 화장실로 간다. 배변 좀 보자고 굳이 싫다는 사람들을 밀고 들어갈 필요가 있나. 노동자들은 기업에게 싸움을 걸자고 거제에서 서울로 올라온 것이 아니다. 하청노동자들의 처우 개선과 성과급 지급, 반복되는 임금 체불 문제 등 오래 쌓인 불만을 얼굴 보고 풀자고 상경한 것이다. 무서워? 그럼 죄를 지은 쪽이 누구지? 약속을 지키지 않은 것이 누구지?

눈을 마주치지 않는 것이 범인이다. 노동자는 죄를 지은 것이 없다.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는 거리낄 것이 없다.


2025년 2월 7일, 한화빌딩 앞에서 조합원과 연대자들, 경찰과 경비 직원 사이에 몸싸움이 붙었다. 저녁 선전전을 하던 중에 청년 하나가 한화빌딩 회전문으로 뛰어들었고, 경비 셋이 온몸으로 막았다. 아이는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했다. 너무 급하니까 화장실만 쓰게 해달라고. 투쟁띠도 벗고 빨간 조끼도 벗을 테니 화장실 한 번만 사용하게 해달라고. 키 160cm도 안 되는 여자애가 건장한 성인 남성 세명에게 가로막혀 애원을 하고 있으니 조합워들도 선전전을 팽개치고 문 앞으로 갔다.


“거 일반 시민 다 쓰는 곳인데 얼마나 급하면 이럴까 한번 쓰고 나오게 해 주쇼.”


“머리에 두른 거 벗고 간다잖아요. 떼거지로 들어가는 것도 아니고 애 한 명 화장실 가는 건데 이렇게 막을 일 있습니까?”


“우리는 안 들어간다고요. 급한 사람 한 명만 보내달라고요.”


경비는 대쪽같이 막는다. 미래에셋 빌딩으로 가십쇼. 다른 화장실 쓰십쇼. 못 들어가는 아이는 얼굴색이 점점 파리해진다. 급기야 주저앉아서 엉엉 운다. 진짜 쌀 것 같다고요. 문 뒤에 화장실 있는 거 뻔히 아는데 왜 다른 데를 가야 하는데. 지금까지 누구보다 앞서서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의 투쟁에 목소리를 내었던 친구라 그걸 보는 조합원들의 눈알에 핏줄이 선다. 조합원들에게는 눈에 넣어도 안 아플 청년동지가 한겨울 눈 쌓인 바닥에 경비원 발치에 앉아 쭈그려 운다. 상이라도 당한 것처럼 섧게 운다. 경비들은 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글쎄, 위에서 못 들어가게 하랬다니까요.


유리 회전문이 흔들린다. 정문의 통유리창이 흔들린다. 그 사이에 악착같이 걸어 잠근 걸쇠 소리가 가냘프게 들릴만큼 불안한 진동이다. 말없이 밀어대는 조합원들의 손짓에서 목소리가 들린다. 우리가 이것 하나 못 열어서 이리 있는 줄 아쇼?


보다 못한 경찰이 우르르 다가왔다. 경찰은 조합원들이 농성장 천막을 친 이래로 한시도 근처에서 벗어난 일이 없었다. 점심밥을 주러 온 사람들을 검열하고, 담배를 뻑뻑 피우며 근처를 서성댔다. 연대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항의를 했다. 세상 사람 다 드나드는데, 왜 우리는 안됩니까?

경찰이 태평한 얼굴로 말한다. 여기는 공기관이 아니라서 건물 주인이 싫다면 못 들어가는 거라니까요. 그냥 다른 데 가요. 이럴 시간에 화장실 세 번은 갔겠네.


문 열면 바로 있는 화장실을 두고 조금 더 두면 오줌을 바지에 지릴 애한테 130미터 뒤에 있는 빌딩으로 뛰어갔다 오란다. 경찰은 하는 것이 없다. 허울 좋게 말리는 시늉만 할 뿐이다. 어어, 그러다 깨져요. 유리 다 깨져.

노동조합원과 연대자는 왜 한화빌딩의 화장실을 쓸 수 없을까?

시끄럽게 스피커를 켜고 선전전을 해서? 한화 야구팬이 아니라서? 아니면 혹시, 누군가의 심기를 거슬러서?

한화 사장 김승연, 당신이야?


누군가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게 죄가 되다 못해 인간의 기본권도 위협받는 세상이다. 누가 보면 돈 많고 직급 높은 사람은 똥오줌도 안 싸는 줄 알겠다.


2월 28일 아침 여덟 시, 서울교육청 앞에서 A학교 성폭력 사건을 공론화했다가 부당해고 된 공익 제보자 지혜복의 복직에 연대하던 시민 22명이 연행되었다. 경찰은 이미 신고된 집회에 불법 집회 현행범으로 체포한다는 협박성 방송을 하며 행사를 방해하고 종국에는 기어이 연행을 했다. 명분으로 제시된 것은 전부 거짓이다. 부지 내에서 시위를 했다는 이유로 연행된 연대자들은 민원 작성을 위해 관내로 들어간 사람들이었다. 퇴거 불응죄로 연행된 지혜복 선생님은 교육청 직원과 동행하여 접견실에 들어갔으며, 따뜻한 차를 받아서 마시고 있었다. 어느 누가 퇴거에 불응하는 사람에게 차를 내줄까?


기온이 영하로 내려갔던 2월 20일, 서울교육청은 앞에서 밤샘 농성을 하는 사람들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 전기를 차단하고 퇴근을 했다. 이 부당한 인권탄압에 항의하며 시위를 이어가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서울교육청은 2월 26일, 지혜복 선생님과 그 연대자들을 대상으로 화장실 통로를 차단했다. 위에서 사람들이 들고 간 민원이 바로 이에 대한 것이었다. 엄동설한에 전기를 차단하고 공공기관 화장실이라고 하는 열린 시설에 접근 제한을 두는 것. 지혜복 선생님은 수없이 농성을 해보았지만 전기를 끊은 일은 처음이라며 교육청 문 앞에 드러누웠다. 그들은 인간이 아닌가? 거기에 있는 사람들은 거리에서 얼어 죽어도, 바지에 대소변을 보아도 내 알바가 아닌 걸리적거리고 어서 치워버리고 싶은 존재들이었을까?


경찰을 똑바로 보고 연행된 아이들 사이에서 눈을 마주치지 않는 사람은 어디에 있지. 서울시 교육감 정근식, 당신이야?


그러니까, 약속한 시간에 면담에 나오고 진즉 교내 성폭력 사안에 적극적으로 해결책을 찾았으면 좋았을걸. 아니면 아예 학생 성폭력 공익 제보를 한 담임교사를 부당하게 전근시키고 해고하지 않았으면 좋았을걸.

2월 28일 오전 9시, 교육청 연행 상황을 듣고 항의차 방문한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조합원 세 명 중 한 명이 연행되었다. 사유는 공무집행방해, 경찰에게 침을 뱉었다는 이유였다. 3월 1일 모든 연행자들이 석방될 동안 이 조합원은 공무집행방해의 행위 부인으로 나오지 못했다. 삼일절 같은 시간 한국외대에서는 내란동조집단이 스피커 음량을 최대로 켜고 비속어와 혐오발언으로 집회를 하고 있었다. 수많은 사람들이 소음으로 고통을 겪으며 중재를 호소했다. 해당 집회에서 연행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법은 평등하다. 경찰은 든든한 민중의 지팡이다.


3월 2일 오후 2시, 9200명의 탄원으로 거제통영고성 조합원에게 청구된 영장은 기각되었고 아무도 구속되는 일 없이 끝이 났다. 모두가 풀려난 후에 연대자 중 누군가가 경찰에게 물었다. 서울교육청에서 연행되는 와중에 코레일 네트웍스 철도고객센터지부 조합원의 다리 두 군데를 부러뜨린 교육청 직원 5명의 처분은 어떻게 되었나요?


“집회 현장에서 강남서로 호송된 5명의 인원에 대해서 형사소송법 212조(현행범인의 체포)에 따라 법적 절차를 준수 후 안전하게 호송한 것이고, 조사 완료 후 석방 완료한 것을 알려드립니다.”


사람 다리 두 군데를 부러뜨린 것보다 부당 연행에 항의하다 경찰에게 침을 튀긴 이가 더 악한 죄질이라는 것이 경찰의 판단이다. 법은 평등하다. 경찰은 아주 믿을 만한 민중의 지팡이다.


어, 그런데 왜 눈을 못 마주쳐요?

당신, 혹시, 양심에 떳떳하지 못한 짓을 한 거 아니야?

당신 뒤에 있는 문 그거,

법이라고 쓰여있는 문 그거,

사실은 그 뒤에 아무것도 없고

자본과 권력이 속삭이는 녹음기만

왱알 대면서 뒹굴고 있는 거 아니냔 말이야.


아무리 생각해도 우리가 이길 것 같아.

이것 봐, 아직도 내 눈을 못 마주치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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