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 26일, 경복궁 자하문로로 와주세요
온몸이 욱신욱신하다. 옷깃을 열두 번 쥐어채였고, 경찰 방패를 10분 동안 막고 있다가, 중앙분리선을 넘어서 경찰스크럼을 뚫고 들어갔다. 이놈의 경찰들이 농민이 서울에 올라온다 하면 아주 발작을 하고 패악질을 부린다. 패악을 부리는 게 경찰인지, 오세훈인지, 권력인지, 내란범인지 이제는 모르겠다. 나에게 확실한 건 근육통뿐이다.
어제 오후 1시부터 남태령에서 있었던 전봉준 투쟁단 상경 집회에는 가지 않았다. 이른 아침에 있는 취업특강을 3일 내내 들으러 가야 하기 때문이다. 끝나고도 시간은 넉넉했지만, 임시보호 중인 강아지 산책도 시켜줘야 하고. 밥도 줘야 하고. 강아지를 핑계로 집회를 안 나간 게 일주일이 넘었다. 경찰과 내란동조 유튜버들이 6000만 원으로 저녁 6시까지 대치하니 충돌을 일으키니 하는 협잡을 했다는 녹취가 풀렸다. 현장은 아수라장이다. 와도 와도 모자란 것이 연대하는 시민이고, 모아도 모아도 부족한 것이 농민을 지지하는 마음이다. 라이브 영상을 틀어놓고 집회 가방을 싸놓고 집회옷을 입은 채로 침대에 들어갔다. 새벽 두 시여도 좋고, 네시여도 좋으니 정말로 필요하다면 당장에 달려갈 심산으로. 아니나 다를까 경찰은 농민들의 앞길을 막았고, 시민들은 몰려갔다. 남태령 집회 라이브 영상을 들으며 인간은 찔찔 짰지만 강아지는 산책도 하고 밥도 잘 먹었다. 너는 죄가 없으니까.
잠이 안 와서 2시가 넘어서 눈을 붙이고 아침 6시에 일어나 교육을 듣고 왔더니 초저녁부터 꾸벅꾸벅 잠이 온다. 그래도 강아지는 산책을 하고 밥을 먹었다.
새벽 네시에 눈이 번쩍 떠졌다. 분명 자기 전까지 틀어놨는데 남태령 집회의 라이브 영상이 꺼져있었다. 허겁지겁 카톡방을 확인하고, 트위터를 켜니 아니나 다를까 죄다 은박담요를 뒤집어쓰고 날을 새고 있었다. 곧 있으면 첫차가 뜰 시간이다. 강아지에게 새벽산책을 시키고, 남태령에 있다가 바로 취업교육을 갈까. 교육은 그래도 9시 반이니까. 여섯 시에 갔다가 여덟 시에 나오면. 두 시간 있을 바에는 안 가는 게 낫긴 하지, 하는데 갑자기 비상행동 집회에서 공지가 떴다.
‘[긴급 요청] 광화문 농성장으로 모여주세요!!!!!!
오늘 새벽 트랙터 투쟁단 일부가 광화문 농성장에 진입하였습니다. 경찰이 계고도 없이 영장도 없이 트랙터와 트럭을 견인하기 위해 많은 병력을 투입했습니다. 현장에 적은 인원으로 경찰의 폭력에 저항하고 있지만 역부족입니다. 농성하는 국회의원까지 사지를 들어 끌어내고, 불법 연행까지 서슴지 않고 있습니다. 지금 바로 광화문 농성장으로 모여주십시오!!! 시민의 힘이 필요합니다!!!!!‘
정말이지, 하루라도 글 쓸 소재 없는 일상을 살고 싶다. 새벽 5시 17분, 경찰이 광화문 서십자각에 얌전히 바 쳐져있던 트랙터를 탈취했고 그를 막던 국회위원과 시민, 민주변호사, 비상행동 상황실장을 폭행진압하고 연행했다. 광화문 현장을 라이브 스트리밍 하는 현장에는 비명과 욕설이 난무한다. 경찰은 귀신같이 사람이 몇 명 없는 곳에서 시민을 밀치고 끌어내고 함부로 대한다. 12월 21일 해 지기 전의 남태령에서도, 2월 28일 서울교육청에서도 그랬다. 한국에서 군대는 사람 죽이고 싶은 사람이 가는 곳이고 경찰은 사람 패고 싶은 곳이 가는 곳이구나. 그게 아니었다면 나라가 이만치 부패하지는 않았을 테지. 강아지에게 서둘러 밥을 주고 산책을 20분 만에 끝냈다. 나오는데 삼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집회 가방을 싸놓고 집회옷을 입은 채로 침대에 들어가서 다행이다. 아침 아홉 시 반 교육이 너무 이르다는 핑계로 가지 않았던 남태령인데, 결국은 아침 6시에 남태령의 인파가 고스란히 몰려온 경복궁역에서 교육을 들으러 간다. 이럴 줄 알았지. 농민과 시민과 민주주의가 꽃피운 찬란한 역사를 더럽히고 싶어 안달이 나있을 줄 알았지. 서울시장에게서 악취가 난다. 거름으로도 못 쓸 냄새다. 서울시장 오세훈. 그리고, 늬들이 그러고도 경찰이냐?
옷깃을 열두 번 쥐어채였고, 경찰 방패를 10분 동안 막고 있다가, 중앙분리선을 넘어서 경찰스크럼을 뚫고 들어갔다. 심상치 않게 험악한 분위기에 투쟁 띠는 깊숙이 넣어놓고 세월호 리본도 안 보이는데 숨겼다. 민주노총 조합원분이 알려준 팁이다. 가방에서 달랑거리는 건 모조리 집어넣어요. 다 뜯어지고 망가지니까. 허리춤에 달았던 카드지갑과 가방에 달고 있던 한국옵티컬 희망학 열쇠고리도 앞주머니에 넣고 지퍼를 잠갔다. 그렇게 올라가자마자 일주일 동안 보지 못했던 동지들을 만났다. 죄다 남태령 아스팔트 바닥에서 하룻을 꼬박 새워서 얼굴이 허옇게 질렸다. 한 명 한 명 갈빗대에 들어갈 만큼 안아주는데 애간장이 바싹바싹 탄다. 이 어린애들을. 대학원 졸업을 앞두고, 학사 졸업도 한참 먼 병아리들을.
시위에 역할분담이라는 게 있다면, 나는 몸으로 부대끼는 쪽이다. 작고, 여자고, 목소리로 아양을 부려서 심하게 공격당할 확률이 적다. 그런 것 치고는 지구력과 악력이 받쳐주는 편이라 연행시민에게 손깍지를 끼거나 경찰방패를 막고 있으면 나를 떼어내지 못한다. 나는 떨어지지 않는다. 내 손가락을 잘라야 할 거야.
애기들은 뒤로 두고 경찰방패랑 대거리를 하는데 십 분을 썼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전봉준의 후예들을 뒤로 물리고 내가 맨 앞에 있는 게 마음 편하다. 우리는 무해한 시민인데 대체 왜 그러세요. 나는 너무너무 속상해. 나는 진짜 착한 사람인데에.
트랙터는 이어지는 경찰의 통행봉쇄와 탈취시도로 도로에 세로로 놓여있다가 역주행도 하고 중앙분리선도 넘나들었다. 그 사이에 경찰의 옆구리를 세 번 뚫었고, 단거리 달리기를 수도 없이 했다. 골목을 돌아가다 경찰에 막히면 세상 예쁜 눈으로 우물쭈물 물었다.
‘저 지나가야 되는데.. 어디로 가야 되나요?’
‘아 시민이세요? 지나가세요.’
‘야 그냥 시민이야, 보내드려.’
저 안에 있는 사람도 그냥 시민이에요. 당신들이 멱살을 잡아 끌어내린 트랙터 운전자도 대한민국의 밥과 쌀을 책임지는 농민이지요.
그러다 보니 트랙터를 실은 지게차 옆에 덩그러니 나만 남았다. 나와 트랙터를 둘러싼 형광경찰들이 설탕물에 모여든 야광벌레처럼 시민들과 대치하고 있다. 대체 이게 뭐 하는 걸까. 피곤하다. 지친 티를 팍팍 내고 있으니 경찰 하나가 또 조심조심 다가와 묻는다.
‘시민이세요? 인도로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인도는 방패를 든 경찰로 꽉 막혔다.
‘시민 나가신대요.’
저 밖에 있는 사람도 시민이라니까요.
나오는 길에 화단에 기대어 부은 팔다리에 응급처치를 받고 있는 시민을 보았다. 몰려드는 경찰버스, 방패를 든 경찰 앞에 ‘이번엔 같이 연행될 수 있겠네요’하고 웃으며 말한 아이는 서울교육청에서 연행되었던 동지다. 이제 끌고갈 준비를 하는 것 같아요, 하며 작은 주먹을 꽉 쥐는 사람들을 남겨두고 털레털레 교육을 들으러 갔다. 말이 교육이지, 계속 경복궁 현장을 확인하느라 집중도 못했다. 나는 내란이 일어나기 전의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대한민국의 법도 경찰도 군대도 검사도 판사도 헌법도 아무것도 믿지 못하게 되었는데?
당연하지. 나에게는 신념과 의리로 뭉친 죽음도 함께하는 동지가 있다. 그리고 맛있는 쌀을 재배하는 농민도, 계속 주변을 맴돌며 지켜주는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들도 있다. 돌아가지 못하는 건 마음뿐이다. 이 연대를 알지 못할때로는 돌아가지 못한다. 이 마음을 알기 위해 살아왔는지도 모른다. 이 느낌을 알기 위해 책을 읽었는지도. 공부를 했는지도. 좌파가 되었는지도.
그냥 죄다 해체하고 자율방법 합시다. 인민재판으로 하자고요 그냥.
나는 지금 집에 다 왔다. 강아지에게 밥을 넉넉히 주고, 긴 산책을 시키고 다시 경복궁으로 갈 것이다.
시간이 되는 분은 놀러 오세요. 한국의 경찰이 얼마나 정의로운지, 저기 있는 거랑 여기 있는 것 중 어느 쪽이 시민인지 구분 좀 해주세요. 경찰이 시민을 밀치고 던지고 목 조르는 광경이 다시 벌어지지 않기 위해 한 사람의 힘이라도 더 보태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