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못난 후손이 너무 늦었습니다

우금티에 깃든 혼은 사라지지 않는다

by 해인


정읍 동학농민혁명박물관에서 찍은 문구



“(전략) 백성이 무서운 것을 알라. 지금은 한 줌에 지나지 않되 멀지 않아 질풍이 되어 뒤덮을 것이다.”


황석영, <장길산 8>


*


궁둥이를 맞붙인 검은 벌레가 온사방에 날아다닌다. 2025년에도 여름이 왔다. 공중에서 사랑을 나누는 멋진 생물이 세상을 점령한 2025년. 사람은 아직도 지구 위에서 살아가고 있다.


2025년 6월 10일은 날씨가 좋았다. 탱자탱자 살아가던 와중에 드물게 글을 쓰고 싶어 지는 날씨였다. 허파에 바람을 채우고 싶어 침대에서 굴러 나와 충청남도 공주시 우금티를 찾아갔던 2025년 6월 10일 아침 열 시.


2024년 12월 21일, 경기도와 서울을 잇는 남태령 고개에서 새벽을 맞았다. 참 춥고도 따뜻한 밤, 찬 바닥에 앉은 사람에게 입김을 내뿜으며 방석을 건네는 농민을 만났던 밤, 장구와 꽹과리의 풍악을 들으며 경찰버스 차벽 앞에서 춤추던 밤이었다. 우금티는 그날부터 가슴에 와서 콕 박혔다. 가본 적도 없는 주제에 절대 잊을 수 없는 어떤 곳. 이상하게 고향 같고 기묘하게 무덤 같은 곳.


나 있는 곳에서 공주 우금티까지는 두 시간 십 분이 걸린다. 맑은 하늘 따라 선풍을 탄 것처럼 액셀레이터가 쭉쭉 밟혔다. 이렇게 어디론가 달리고 싶었다. 기약 없이 파란 땅을 가로지르고 싶었다. 공주 톨게이트를 넘어 얼마간 달리면 우금티 터널을 지난다. 동학의 의미를 간직한 문구가 차창 밖을 지나간다. 머리 위에 우금티가 있다. 131년 전 농민들이 일본군과 관군 앞에 도저히 넘을 수 없었던 우금티가.


평일 오후 두 시의 우금티 전적은 한산했다. 정원은 작지만 잘 관리되는 것처럼 보였고, 방문객 하나 없이 조용한 주차장에 차량 몇 대만 바쳐져 있었다. 돌판이 박힌 길을 따라 걷다가 우금치 전적을 설명하는 석판 사진을 찍고 계속 올라갔다. 동학 혁명 위령탑은 멀리서도 보인다. 하늘을 찌를 듯이 솟아야 억울한 혼들의 마음이 좀 달래지는 건지, 그 앞에 설 때마다 눈이 부셔서 올려다볼 수가 없다. 노근리 평화공원의 위령탑이 그러했고, 산청함양 민간인 학살 추모공원의 위령탑이 그러했고, 국립 518 민주묘지의 위령탑도 그러했다. 끝이 없는 것처럼 이어져있었다. 하늘 쪽으로.

2024년 12월 3일 이후로 기도가 부쩍 늘었다. 그냥 하늘을 보고 달을 보고 위령탑을 보고도 기도한다. 한때는 동아줄이라도 잡는 것처럼 간절했는데, 이제는 감사하다는 마음으로 기도를 한다. 그냥 말할 수 없는 기분이 든다. 이 나라의 역사에 존재하는 용맹한 백성과 강인한 정신들에게. 왜 나는 그렇게 강할 수 없을까.


위령탑 왼편에는 예쁜 산책길이 있다. 개구리밥처럼 흐드러진 토끼풀을 피해 가면서 걸었다. 산책로 너머로 보이는 언덕이 우금티다. 사실 발 밑에 토끼풀이 무성한 땅도 저 아래 주차한 내 차 바퀴 밑도 130년 전에는 숲이 우거진 산길이었다. 경사진 비탈 투성이, 발바닥에 굳은살이 배긴 농민이 밟고 다진 전장이었다.


참 좋은 날이다. 울렁이는 언덕이 파도처럼 시야를 가득 채운다. 바람 따라 들풀이 일렁이는 소리, 나무가 바위에 부대끼는 소리. 너무나 한적한 평일 오후의 우금티는 쨍한 햇살 아래 고요하고 은은하다. 일그러진 얼굴을 하고 늘어서있는 장승 아래에 동전을 넣고 기도한다. 말할 수 없는 마음이 든다. 이 터에 깃든 것들은 한국에서 절대로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나라가 왜적의 속국이 되고 한낱 조정이 나라를 말아먹을지라도.

이곳에 있던 혼은 몇 번을 돌고 돌아 거꾸러진 나라를 지탱했다. 일본이 경복궁에 눌러앉은 채로 대한제국을 점령하고도 독립운동을 멈추지 않아 나라의 주권 회복에 결정적 원인이 되었고 이승만과 미군정의 제주 4.3 학살에 반대하여 여순항쟁을 일으켰다.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세상을 꿈꾸며 산에 들어가 독재정권에 반대하는 유격대로 싸웠고 전쟁 후에는 백성이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유신체제 대항하며 민주화 운동에 투신했다. 고문실에 끌려 들어가도, 탱크를 몰고 와도, 어떤 영혼은 그렇게 했다. 말살하고 씨를 말리려 애를 써도 끊임없이 돌아왔다. 우리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구형 화승총 몇 자루와 농사짓던 농기구를 손에 들고 발이 어는 한겨울에도 북을 치며 싸웠던 농민군은 무능한 조정의 군대와 원수 같은 왜놈의 총알 앞에 학살에 가까운 도륙을 당하면서도 이렇게 말했다.


무릎팍으로 내밀어도 나갈 수 있었는데.

주먹만 내질러도 나갈 수 있었는데.


발도 발목도 종아리도 잘려나간 몸으로, 주먹이 달리지 않은 팔뚝을 절룩이며 뒤돌아 나온 농민들이 죽은 곳이다. 너른 산의 여러 고개가 눈처럼 하얀 옷을 입은 백성의 시체로 쌓였던 곳이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마음이 든다. 이곳을 오고 싶었다. 2024년 12월 21일, 무능한 관이 보낸 껍데기뿐인 공권력을 앞에 두고서. 경찰의 속에는 뭐가 있을까? 그 안에는 시민이 있을까, 백성이 있을까, 권력에 따르는 꼭두각시가 있을까? 그 경찰들 앞에 나는 왜놈보다 원수 같은 농민이었을까, 그치들을 세금으로 먹여 살리는 시민이었을까?


우금티의 장승들이 후손에게 말한다. 웅크리고 있지 말라고, 나라가 망해가는 꼴을 좌시하지 말고 의로운 깃발을 휘두르며 거리에 나가 싸우라고. 그들이 남긴 것은 피 속에 진하게 남아 독립운동가가 되고 빨치산이 되고 남태령에서 밤을 새우는 영문모를 반국가세력이 되어 이 무능한 체제를 뒤집어엎기 위해 나타나고 또 나타날 것이다. 우금티 언덕에 깃든 것들은 한국에서 절대로 사라지지 않는다. 나라가 왜적의 속국이 되고 한낱 조정이 나라를 말아먹을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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