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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군대는 제정신이냐

전쟁이 하고 싶어 죽겠지, 아주?

by 해인


용산 전쟁기념관 앞, 30미터 크기의 가증스러운 탄피.


사상자 대부분은 민간인이었다. 공습을 지휘한 커티스 르메이 장군은 일본인 민간인들도 무기를 생산하는 등 일본군의 전쟁 수행을 돕고 있다며, “무고한 민간인은 없다 There are ni inocent civilians”는 말을 남겼다. 과연 그럴까? 그 말대로라면 전쟁 중에 민간인 학살을 막을 어떤 명분도 없다. 어차피 전쟁이라면 민간인을 학살해도 괜찮을까?


조형근, <콰이강의 다리 위에 조선인이 있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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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랜만에 머리도 두기 싫은 용산에 왔다. 해방촌과 이태원에서 일을 할 때도 거대한 미군기지와 흉물스러운 총알탄 조형물 때문에 눈살을 찌푸렸던 용산 전쟁기념관. 옛날 애인과 데이트를 한답시고 공원의 인공호수만 찰박거렸던 곳을 다시 왔다. 그 사이에 나는 참 많이 바뀌었다. 우그러든 미간이 펴지지 않는다.


버스만 타고 가도 보이는 6.25 전쟁 기념 조형물은 누가 봐도 쇠를 입힌 탄피의 모습이라, 사람 죽은 전쟁이 퍽이나 자랑스럽나 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런데 설명을 읽어보다 청동검에 평화로운 나무를 상징으로 세워놓았단다. 대놓고 총탄을 숭배하자 할 수 없으니 별 헛소리를 다한다. 말만 번지르르하지 누가 봐도 총알이다. 역사 대대로 군대와 무기에 점령당한 용산, 하늘을 향해 처박힌 거대한 탄피. 그 조형물을 본 사람이라면 그게 총알이 아니고 무엇이냐고 어리둥절할 것이다. 청동검이나 나무는 무슨, 사람 죽은 게 자랑스러워 안달이 나 30미터 탄피를 세워놓는 내전국가가 바로 내 나라다. 그 앞에는 어딘가에서 보낸 흰 국화 꽃바구니가 놓여있다. 죽은 건 사람이고 사람은 총알이 죽였다. 서낭당 같은 총탄에 대고 애도를 한다. 가엾은 죽음이라고. 안타까운 죽음이라고.


인권과 평화의 관점에서 전쟁기념관을 관람하는 해설을 듣고 있는데도 기념관 전시 자체가 힘들었다.

워싱턴 D.C의 세계 2차 대전기념관을 흉내 낸 기념관 정문 청동 화환들이 우습고 조악하다. 미국을 찬양하지 못해 미쳐버린 나라. 미국한테 발발기지 못해 아쉬운 사람들이 정치판에 그득한 나라.

지금 나는 성격이 좋지 않다. 노근리와 산청 함양, 인천 월미도 인천상륙작전에서 죽어버린 수십만의 민간인의 원혼을 못 본 체하는 잘난 전쟁기념관을 다녀왔기 때문이다. 남한의 교육매체는 6.25를 이야기할 때마다 마치 북한이 하루아침에 남한을 공격한 것처럼 묘사한다. 하지만 해방 후는 물론 제주 4.3항쟁이 있었던 1948년부터 남한 땅에서는 사회주의조직 남로당의 유격대와 친일군경이 시시때때로 충돌하고 있었다. 예고 없는 전쟁은 없다. 이승만이 왜 전쟁이 일어나고 3일 만에 한강 다리를 끊고 대구에서 대전까지 도망갔느냐 하면, 그때가 정말 죽을지도 모른다는 위협을 느꼈기 때문이다. 이승만과 정부는 6월 25일 새벽 네시의 공습이 매번 있는 빨치산과 국군의 육탄전인지, 아니면 북한 정부에서 전면적으로 개시한 실제 전쟁인지도 파악이 안 되고 있었다. 서울 바로 코 앞인 의정부가 북한군의 점령하에 넘어가고 나서야 부랴부랴 짐을 싸고 도망가는 해방대한민국 단일정부의 수령. 그는 가면서 라디오로 서울은 안전하다는 방송을 남겼다. 54년 전 6월 28일 오늘, 대한민국 국군이 서울 진입로인 한강 인도교를 폭파하며 최소 800여 명이 죽었다. 500명 이상의 사인은 폭사다. 이 처참한 현장을 전쟁기념관은 국군이 과감한 결단으로 한강 다리를 끊어 북한군으로부터 6일간 용맹하게 서울을 방어한 것으로 묘사했다. 학살자 이승만의 이름은 눈곱만치도 적어놓지 않고서.


용산 전쟁기념관은 사람이 들어서자마자 군대와 군인을 숭배하게 만드는 곳이다. 평화를 기반으로 통일을 꿈꾸는 곳이 아닌 국가에 충성하는 열렬한 반공전사를 길러내는 곳이다. 전쟁기념관은 끝까지 무장공비침투, 대통령 암살기도 등 북한을 무자비하고 끔찍한 대상으로 그려놓았다. 전쟁기념관은 한국이 통일이 되면 세상이 무너진 것처럼 슬퍼할 것이다. 세상에 전쟁과 군대가 사라지고 국경 없는 시대가 도래하면 밥그릇을 약탈당한 것처럼 화를 낼 것이다.

죽음 없이는 얻을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는 양 외치고 다닐 것이다. 이 약하고 가벼운 평화가 정말로 영원할 것 같냐고 겁을 줄 것이다.


그래서 늘 싸울 생각을 하고 산다. 국가가 부르면 해변가의 모래처럼 스러져야 하는 일회용품이 되고 싶지 않아서, 사람을 일회용품처럼 쓰고 버리는 세상에게 그들의 입맛대로 이용당하고 싶지 않아서. 평화가 영원하지 않을지언정 평화를 바라는 인간의 마음은 영원하다. 그들은 이 말까지 터무니없다고 말할 테지만, 돈과 권력 앞에 무너지지 않는 치는 없다고 비웃겠지만, 그래도 그런 작자들과 싸울 생각을 하고 산다. 이 땅에서 돈과 권력은 한 번도 강한 영혼을 제대로 이겨본 적이 없으니까. 지긋지긋하고 짜증스러울 정도로 그 영혼들은 돈과 권력의 발목을 잡고 백성들의 눈을 번쩍 뜨이게 했으니까.


어떤 무기는 돈으로 살 수 있고 어떤 이상은 죽창과 화염병으로 가까워질 수 있다. 어떤 평화는 영원히 맞서 싸울 생각을 해야만 찾아온다. 돈과 권력에 찌들 대로 찌든 나라가 하라는 대로만 하고 살 바에야, 죽일 테면 죽여보라지 하지만 순순히 죽어주지는 않을 것이다 하고 살아야 마음이 편하다.


지금까지 늬들이 가르치는 대로 스펀지처럼 배우면서 국가안보 간첩 신고를 노래로 부르고 다니는 애들을 보고 뿌듯했지? 그 애들이 잘못 크면 나처럼 죽창을 들지 못해 안달 난 어른이 된다. 틈만 나면 이승만은 능지처참할 놈이라고 손가락을 놀리는 쌈닭이 된다. 나는 죽을 때까지 전 세계에 떠들고 다닐 거야. 나라가 나를 제대로된 역사라곤 모르는 공교육 멍청이로 만들어놨다고. 나라가 쳐두었던 성긴 그물을 스스로 찢어발기고 나서야 눈이 뜨였다고. 나처럼 말 많고 나대는 사람한테 더 성실하게 반공교육을 했어야지. 더 집요하게 이승만이 위대한 건국대통령이라고 말했어야지. 나는 지금 너무 좋다. 이제 신나는 늦깎이 빨갱이의 키보드 칼춤이나 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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