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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수 지회장이 고공에 올라갔다

2025년 3월 15일, 이미 끝난 고공농성에 대한 시민 연대자의 기록

by 해인



2025년 3월 15일 오후 6시 49분에 찍은 사진. 저 위에 김형수가 있다


때린 사람은 우는 사람이 불편하기 마련이다. 가해자의 논리는 “(나는 가해자가 아닌데) 네가 우니까 내가 가해자가 된 것 같아 기분 나쁘다. 고로 네가 가해자”다. 자기 행동을 피해자 탓으로 돌리고 심지어 동의와 웃음을 강요한다. 아이고 사건은 눈물이 불법을 넘어 체제 위협으로 간주된 예다. 눈물=체제 위협. 눈물은 힘이 세다.

(중략)

눈물은 정치적이다. 그래서 ‘아이고 사건’은 어디에나 있다. 여론이 약자에게 동정을 보일 우려가 있고, 사랑하는 이를 잃은 슬픔은 걷잡을 수 없는 힘이 있기 때문이다.


정희진, <나쁜 사람에게 지지 않으려고 쓴다> ‘스물 한 통의 역사 진정서’ 고길섶 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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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5일 오전 4시, 또 한 명의 노동자가 고공에 올랐다.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지회장, 김형수다. 그는 을지로입구 역 한화빌딩 앞 청계 2가 삼일대로를 비추는 도로교통 CCTV 철탑에 올라가 있다. 30미터 고공, 몸을 쭉 뻗을 수도 없는 너비. 그가 어떻게 그 위까지 올라갔는지 나는 모른다. 해도 안 뜬 새벽에 지지대 하나 없는 철탑 위를 어떻게 올라갔냐고 물으면 그는 분명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휙 날아서 왔지. 금속노조는 축지법을 쓰거든.’

이 좁은 한국 땅에서만 고공 농성을 하는 노동자가 네 명이 되었다. 경북 구미 불타버린 공장 옥상에서 일본 기업 닛토덴코에 고용 승계를 요구하며 437일째 투쟁 중인 박정혜와 소현숙, 세종 호텔 앞 철제 구조물에 올라간 지 36일이 된 고진수, 한화빌딩 앞 CCTV 관제 철탑에 올라간 지 나흘째인 조선소 하청노동자 김형수다. 저 위에 사람이 있다. 저 높은 곳에 사람이 있다.


나는 그를 2024년 12월 31일 거제도에서 처음 보았다. 내가 본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해맞이 축제 포스터에 적힌 문구 중 기억나는 것은 딱 하나다. ‘남태령의 소녀들이 궁금합니다’ 나는 소녀는 아니지만 남태령에는 있었다. 스쳐 지나가는 뉴스에서 땅 끝의 누군가가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는 기사를 보기도 했다. 회색 작업복을 입은, 푹 패인 뺨을 한 사람들이 머리에 띠를 두르고 무슨 얘기를 했더라. 그 사람들이 도대체 무얼 말하려고 단식을 했는지. 그들은 남태령의 소녀가 궁금하다고 했고 나는 그들이 먹고 씹고 넘기는 일을 그만둔 이유가 궁금했다. 그래서 갔다. 거제도 한화오션 정문 앞에.


문화제는 적당히만 즐겁고 충분히 엄숙했다. 겨우 이틀 전에 179명의 목숨을 앗아간 대형 참사가 있었으니까. 웃으며 울다가 먼저 떠난 사람들을 추모하고 기억했다. 노동자 문화제에서는 시작할 때마다 의례를 한다. 국가에 충성하는 국민의례가 아니라, 노동자들의 생명과 안전을 위해 투쟁하다 죽은 열사들, 대한민국의 민주주의를 외치다가 사망한 망자를 위한 민중의례를. 아는 이름도 있고 모르는 이름도 있지만 확실한 것은 사람이 죽었다는 것이다. 이 나라에서는 휴전이 된 후에도 싸우다 죽은 사람이 너무 많았다. 민중의례라는 게 생길 만큼 많이도 죽었다. 문화제 뒤풀이 토론회에서 김형수 지회장은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환상이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했다. 대한민국은 노동자의 죽음과 투쟁에 귀 기울이지 않고, 모든 시민이 노동자이며 노동자 역시 시민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고. 자본가와 권력자들이 저지르는 불합리한 사법 보복이 판을 치는 나라가 과연 시민이 주인인 민주주의라고 할 수가 있냐고. 너무 많은 사람들이 그저 우리가 민주주의의 나라에 살고 있다는 환상에 홀려있는 게 아닐까 한다던 김형수 지회장. 대한민국의 법은 기득권과 강자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졌지만 누군가는 그 법이 평등하다 믿는다. 친위쿠데타를 주도한 내란범이 민주주의를 위협에서 지켜내고자 한 국민에게 발포명령을 하는 세상이다. 노동자의 인권을, 장애인의 인권을, 주목받지 못하는 성소수자와 약자의 인권을 위해 싸우는 사람들은 민주주의를 믿지 않는다. 김형수 지회장은 그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이었다. 투쟁의 선봉에 서서.


1월 1일 거제에서 함께한 조합원들을 1월 6일부터는 서울에서 볼 수 있었다. 한화오션이 약속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화는 강인석 부지회장의 48일 단식에도 노동자들의 처우개선과 노조와의 협상 요구에 거절로 일관했다.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일부 조합원들이 한화오션 본사 앞에서 투쟁하기 위해 상경했고, 김형수 지회장도 그중 한 명이었다.

한화빌딩 앞에서 거제통영고성 노동자들과 같이 보는 세상은 내가 살던 곳과 다른 곳이었다. 언제 사냥당할지 모르는 먹이가 된 것처럼 기이하리만큼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상경투쟁 첫날, 매서운 추위 속에서 임시로 쳐놓은 텐트를 부수고 조합원 한 명을 병원에 보낸 한화 용역들을 잊을 수 없다. 다음날에도 어김없이 폭력으로 막으려는 통에 현장에 있던 연대자와 조합원들이 온몸으로 대거리를 하며 안간힘을 다해 농성 천막을 쳤다. 직접 마주한 폭력에 놀란 연대자들은 날이 저물도록 불안해하며 천막을 지켰다.

‘이제는 쟤들도 어떻게 못해요. 천막을 치는 순간 이거 훼손하면 불법이거든. 그래서 죽어라 못 치게 하려고 덤빈 거예요.’

거통고 조선하청지회의 조합원들이 웃으면서 말해도 듣지 않았다. 아직 어린 연대자들에게 이렇게까지 적나라한 물리력은 처음이었을 것이다. 애초에 천막을 부수는 게 불법이라면 천막 치는 것을 막아서며 밀치고 위협하는 것은 왜 불법이 아닌가? 노동자들은 어떻게 웃으면서 말할 수 있는 걸까? 연대자가 없었으면 주먹으로 때리고 패대기를 치고도 남았을 거라는 얘기를, 연대자가 없었으면 일주일이 지나도록 천막도 못 치고 맨바닥에 침낭만 깔고 잤을 거란 얘기를, 자기들은 괜찮으니 이제는 집으로 돌아가서 편히 자라는 얘기를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들어야 할까. 김형수 지회장은 두려움 하나 없는 눈으로 이렇게 말했다.


‘희망이 보여요. 동지들이 우리 얘기를 들어주잖아요. 나는 이런 날이 올 줄 몰랐어요. 노동자의 천막이 이렇게 새로 온 동지들로 가득 차게 될 줄은.’

두 달여의 상경투쟁 중 조합원들은 평일 아침점심저녁으로 선전전을 하고 매주 토요일마다 광화문 광장에 나갔으며 민중가수와 연대자들을 불러 신나는 문화제를 했다. 그 수선에도 을지로 입구역 앞 한화오션은 꼼짝도 하지 않았다. 반응을 하지도, 교섭에 응하지도, 해놓은 약속을 지키지도 않았다. 1년에 7명씩 노동자가 죽어가는 일터, 다단계 하청 고용으로 불안한 고용조건과 열악한 임금, 2000억이 넘는 영업이익을 남기고도 복구되지 않는 하청노동자들의 상여금. 2016년 조선업의 불황을 이유로 550%이던 하청노동자의 상여금을 삭감한 한화오션은 나날이 흑자를 남기는 지금도 상여금을 이전의 9% 밖에 주지 않는다. 이마저도 노동조합의 투쟁으로 얻어낸 것이다. 조합원들은 이제 회사가 충분한 이익을 남기고 있으니 550%까지는 안되더라도 300%는 달라고 요구했다. 그것도 싫다기에 300%까지도 바라지 않을 테니 지금보다 상여금을 올려주기만 하라고 말했다. 한화오션은 그 조차도 거절했다. 임금과 관련된 문제도, 노동자들의 상여금도 원청이 움직이지 않으니 교섭에 참여하는 하청업체 대표들도 배를 쨌다. 거제에 적을 둔 노동자들이 서울까지 와서 하루하루 시간이 지나고 있는데 한화오션은 미동도 없다. 선전전에서 마이크를 쥔 조합원들의 목소리가 점점 커졌다. 좋은 말로 할 때 교섭에 응하시오. 명태균과 내란 정권의 협잡으로 한화오션을 인수할 때 단체협약을 승계하고 지역경제에 기여하겠다던 약속을 지키시오. 1년에 7명, 떨어져 죽고 빠져 죽고 깔려 죽은 하청노동자들의 죽음에 원청 한화오션이 책임을 지시오. 노동자가 죽음 옆에서 일하지 않을 수 있는 일터가 되도록 조치를 취하시오. 다시 한번 말합니다. 마지막 경고입니다. 약속을 지키시오. 교섭에 응하시오. 원하는 대로 다 맞춰 주었소. 정규직은 900% 받는 상여금 우리는 300%도 필요 없으니 지금보다 올려주기만 하라는 게 그리 아깝소. 우리도 빌딩 앞에서 소리나 지르자고 상경한 것이 아니오. 정말로 무서운 꼴을 보기 싫다면, 험한 꼴을 보기 싫다면 교섭에 응하시오. 마지막 경고요. 우리가 무슨 짓을 할지 모르오.

피켓을 들고 있던 나는 생각했다. 한화빌딩 꼭대기의 사장실을 점거하려나. 빤질한 유리창을 다 깨버리려나. 재수 없는 경비가 지키고 있는 회전문을 밖에서 잠가 가둬버리려나. 아, 지난겨울 노동자와 연대자가 다 같이 만들었던 튼튼한 나무배를 빌딩의 정문에 처박아버리려나보다.

3월 15일 오전 4시,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 김형수 지회장이 고공에 올랐다. 을지로입구 역 한화빌딩 앞 청계 2가 삼일대로를 비추는 도로교통 CCTV 관제 철탑. 30미터 고공, 몸을 쭉 뻗을 수도 없는 너비에 키가 멀쑥하니 큰 김형수 지회장이 올라가 있다. 그는 고공에 올라가기 몇 시간 전 광화문에서 기타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불렀다.

누가 나에게 이 길을 가라 하지 않았네

내게 투쟁의 이 길로 가라 하지 않았네

그러나 한걸음 또 한걸음 어느새 적들의 목전에

눈물 고개 넘어 노동자의 길 걸어 한 걸음씩 딛고 왔을 뿐

누가 나에게 이 길을 일러주지 않았네

사슬 끊고 흘러 넘 칠 노동 해방 이 길을

사슬 끊고 흘러 넘 칠 노동 해방 이 길을


그걸 코앞에서 듣고 있던 나는 왜 몰랐을까. 금속노조가 아무리 투쟁하고 싸우고 화를 낸다고 해도 그들은 누군가에게 위해를 가할 사람이 아니라는 걸. 노동자가 공격할 것은 결국 자기 자신의 몸밖에 없고 노동자가 협박할 것은 본인이 가진 목숨밖에 없었다는 걸. 그 누구도 몰랐다. 아무도 몰랐다. 어린 동지들과 한데 어울려 최신 밈을 흉내 낸 릴스를 찍고, 가끔은 락밴드 경력을 살려 기타 치며 김광석의 노래를 불러주던 김형수 동지가, 때로는 사자처럼 용맹하게 투쟁사를 읊어 보는 사람의 가슴을 뜨겁게 했던 김형수 동지가, 늘 남색 겉옷을 입다가 갑자기 민들레보다 진한 샛노랑 패딩으로 바꿔 입고 온 김형수 동지가, 너무 오래전부터 이 철탑에 오를 생각을 하고 있었다는 것을. 2월 19일 한화오션 470억 손해배상 재판에서 집행유예 선고를 받고 나서였을까. 어쩌면 2025년 1월 1일부터, 아니면 유최안 부지회장이 0.3평의 철창에 들어갔던 2022년 여름부터였을까. 내가 스쳐 지나가는 뉴스에서 땅 끝의 누군가가 단식투쟁을 하고 있다는 기사를 자세히 보고 그들과 더 일찍 함께 했다면, 회색 작업복을 입은 사람들이 머리에 두른 빨간색 ‘단결 투쟁’ 띠가 무슨 의미인지 알고 연대했다면 김형수 지회장은 함박눈이 내리는 3월에 고공에 올라가지 않아도 되었을까.

평소 같은 토요일 오후, 광화문으로 가려고 운전하던 차 안에서 알았다. 그가 벌써 8시간 전에 고공으로 올라갔다는 것을. 이미 고공농성 기자회견도, 금속노조 결의대회도 끝나고 내가 사랑했던 거제통영고성 조선하청지회의 동지들마저 거제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는 것을. 목적지를 미래에셋빌딩으로 바꾸고 대체 어디에 올라가 있는 건지 계속 찾아보았다. 운전에 집중하지 못해 뒤차 옆차에게 클락션 소리도 여러 번 들었다. 나에게 찬란한 1월 1일을 선물해 준 사람들이었다. 나에게 연대의 의미를 알려준 사람들이었다. 나를 더 이상 ‘남태령의 소녀’가 아닌 동지라고 불러주는 사람들이었다. 원청 한화오션은 끝끝내 그들을 하늘로 떠밀었다.

너무 울어서 눈알이 빠질 것 같다. 다른 연대동지들의 눈알은 이미 빠져서 바닥에 굴러다닐 것이다. 나는 뒤늦게 달려가느라 지각을 했지만 그들은 김형수 동지의 목소리를 들으며 거통고 조선하청지회 동지가 거제로 내려가는 길을 배웅했기 때문이다. 너무 화가 나서 울 때는 한숨이 나오는구나. 숨이 턱턱 막혀서 큰 호흡을 쉬어야 하는구나. 목소리도 들리지 않는 30미터 고공, 김형수 지회장의 샛노란 패딩은 눈에 확 들어온다. 바닥에 구멍이 술술 뚫린 철제 관제탑. 지붕도 벽도 없다. 다리를 펴고 누울 수도 없다. 멀리서도 잘 보이려고 거제에서 패딩 색깔을 바꿔왔구나. 또 눈물이 난다. 아무래도 피붙이 보다 더 사랑하게 되었다보다. 거대한 자본에 맞서 투쟁하는 노동자들을. 정의롭고 용감한 노동자들을.

그들은 이 투쟁에서 질 수 없다고 했다. 이미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없다고, 앞으로 가는 것밖에는 방법이 없다고 했다. 그들은 한화오션 조선소 노동자의 70%에 달하는 하청노동자들의 권리를 위해 싸운다. 조합원 한 명 한 명의 연봉과 복지를 위한 것이 아니라, 한화오션 모든 노동자들이 안전하고 부당하지 않게 노동할 환경을 만들기 위해 싸운다. 사람 하나가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무겁고 처절한 싸움을 한다.

이것이 내가 사랑하는 투쟁 전사들의 이야기다. 너무나 이타적인 결심을 해버렸기 때문에 결심하기 전으로 돌아가기보다 세간의 눈총을 받으며 목숨이 깎이더라도 계속 그 길을 가야 할 전사들. 이미 지나온 고난도 앞으로 펼쳐질 고난도 외롭도 쓸쓸한 바위 같은 사람들.

어제도 울고, 오늘도 울고, 내일도 운다.

고공농성장 아래에서, 보이지 않는 집구석에서, 다른 투쟁장의 천막 안에서 계속 운다. 누군가 당신을 위해 눈물을 흘린다. 우리는 정말로 욕조 하나를 채울 수 있을 만큼 엉엉 울었다. 당신이 아무도 모르게 철탑에 올라갔던 3월 15일에.

눈물이 정말로 힘이 세다면, 우리는 벌써 서로를 구했을 텐데.

아니지, 우리는 이미 서로를 구했는데 아직 세상을 구하지 못한 것뿐이다.

느리고 게을러서 느릿느릿 따라오는 세상이다. 이승만이 하야하고 신군부가 막을 내리고 박근혜가 탄핵되었듯이, 우리의 세상도 언젠가는 옳은 길을 따라올 것이다. 그때까지 우리는 한 명이라도 더 조직하면서, 그리고 어떤 노동자라도 일하다 현장에서 죽지 않기를 기도하며 기다려야 한다. 이만큼의 슬픔이, 이 정도의 화남이, 눈알이 빠질 것 같은 눈물이 한화오션의 거대자본을 불편하게 한다면 얼마든지 울어줄 수 있다. 아끼는 이를 고공으로 올려 보낸 연대자의 눈물은 마르지 않는다. 나의 전사들의 앞에 가시밭을 심어놓은 자 들아, 눈물의 바다에 빠져 죽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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