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전 상서

보고싶다는 말 천 번을 담아.

by 해인








운동하다가 하늘을 봤는데 달이 없었다. 심장이 철렁 내려앉는 기분이었다. 항상 저기에 있었는데. 내 위에는 달이 있어야 한다. 달은 내게 두 번 다시 보지 못할,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사람의 분신이 되었다.


달을 보면 떠오르는 사람 없는 이들이 조금 부러운 마음이다. 영화에서 왜 청승맞게 달 덩어리에 사람 얼굴을 끼워 넣나 했더니 내가 지금 딱 그 꼴이라서. 그리고 그것은 생각보다 매번 눈물 나게 절실한 일이라서.


조부의 부고를 들은 날은 오랜만에 친구들을 보는 날이었다. 아빠의 전화를 끊고 숨을 세 번 고른 뒤 약속을 취소하고 운동복으로 갈아입었다. 한참 조깅에 재미 들렸을 때였다. 아침저녁으로 두 번씩 달리기도 하고 삼십 분 한 시간 씩 마냥 달리던 때. 집 옆 강변에 깔린 산책로를 따라 쭉 쭉 달리는데 처음 뛸 때처럼 숨이 차지도 않고 힘들지도 않아 조금 우쭐하던 그때. 햇살이 따사로운 오후의 강변을 내달렸다. 할아버지 없이 처음 달린 세상은 참 빌어먹게도 여전히 아름다웠다. 이래서 사람이 경험을 해봐야 아는구나. 우습다고만 생각했던 사랑 노래의 가사들이, 유치하다고 고개 돌렸던 영화 속의 그리움들이 어딘가에 사는 어느 누가 가슴 절절하게 겪어본 일들이었다는 것을 그때 다시 깨달았다.


당신 없는 지금도 눈부신 하늘과, 눈부시게 웃는 사람들. 나의 헤어짐을 모르는 세상은 슬프도록 그대로인데.


정말 맞다. 말 그대로 눈이 부신 날이었다.


삼일장을 치르고 할머니를 꼭 안아드린 다음 상경한 서울 집에서 옷을 갈아입고 달리러 나갔다. 풀벌레가 찌릉찌릉 우는 밤이었다. 평소에는 보이지도 않던 달이 그날 따라 왜 그렇게도 커 보였는지. 사람을 구원 삼으면 안 된다는 것을 호되게 알았다. 당신을 인생의 부적으로 삼아서 딱 고만큼 앓았고 고만큼 힘들었다. 세계 어느 나라를 가 있어도 당신이 있는 곳이 내 집이라 생각했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마다 많이 작아진 그 어깨를 언제까지고 꼬옥 안아줄 수 있을 줄 알았다. 사랑한다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다 참 부족하지 않게 말했다고 생각했는데 아니었구나. 그 말은 20년을, 평생을. 아니, 내가 죽을 적까지 하고 또 해도 모자란 말이었다.


불씨가 남아있는 하얀 가루를 쓸어 담고 눈알이 빠지게 운 날이었다. 암색 하늘에 붉은 달이 떴다. 신호등보다는 덜 빨간, 은행알보다는 훨씬 벌건 달. 이제 나의 달에는 떡방아 찧는 옥토끼가 아니라 할아버지가 산다. 그 길을 달리는 시간은 할아버지와의 방정맞은 독대 시간이다. 저 오늘은 소세지를 굽다가 손목을 덴 거 있죠. 아빠는 길가면서 토끼 밥 준다고 풀떼기를 그렇게 뽑는다니까요. 정현이는 또 장학금을 받았어요. 할아버지, 할아버지. 정말 예쁜 날 가셨어요. 할아버지 가는 길 비가 왔으면 흰 발로 흙 밟고 가실까 봐 잠도 제대로 못 잤을 텐데. 할아버지가 그걸 알고 올여름 제일 청명한 날 간 거라고 아빠가 그러더라구요. 할아버지는 항상 신선 같았는데 아가의 마음으로 돌아가셨네요. 꿈에 한 번만 나와주세요. 보고 싶다는 말은 안 할 테니까 그냥 인사 한 번만 해주시면 안 돼요?


달 속에는 할아버지가 계신다. 늦은 밤 강변을 달릴 때 가장 가까워진다.


나는 소원대로 할아버지의 꿈을 꾸었고, 그것은 정말 할아버지다운 인사여서 꿈속에서도 밖에서도 펑펑 울었다.


그분은 여전히 나의 부적이다. 달이 있는 한 나는 세상에 무서울 것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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