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유학파 철학자 디오게네스의 가르침에 따라!
기원전 334년 그리스의 여러 폴리스(도시국가)의 대표들이 코린트에서 회합을 갖고 알렉산드로스를 아시아 출정군의 최고사령관으로 선출했다. 이에 명망이 높은 정치가, 유명 예술가와 철학자들이 알렉산드로스를 알현(謁見)하고자 줄을 이었다. 알렉산드로스는 예전부터 꼭 한 번 보고 싶었던 디오게네스를 불렀으나 오지를 않자 몸소 그를 찾아간다.
나무 술통에 기대어 일광욕을 즐기고 있던 디오게네스에게 대제 알렉산드로스가 다가가 “내가 바로 대왕 알렉산드로스요.”라고 하자 디오게네스는 “나는 개(犬)인 디오게네스요.”라고 답했다. 알렉산드로스가 “왜 개로 불리느냐?”며 묻자, “내게 무언가를 주는 사람들에게는 꼬리를 흔들고, 아무것도 주지 않는 사람에게는 짖어대며, 악한 자들은 물어뜯기 때문이요.”라고 답했다.
알렉산드로스가
“무엇이건 원하는 것이 있으면 한 번 말해보라”라고 하자
디오게네스는
“햇빛이나 가리지 말고 좀 비켜 주시오”라고 대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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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철학자들 중에서도 유난히 좋아하는 디오게네스가 위대한 정복자 알렉산드로스 대왕을 앞에 두고 나눈 대화 중 일부다. 견유학파의 대표 철학자이자 플라톤에게 '미친 소크라테스'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 별종이었던 디오게네스는 동네방네에 자신의 사상처럼 '개처럼 살자'라고 외치고 다닌 것으로 유명하다. 욕심 없이 살 것, 지금 이 순간에 만족할 것, 그 무엇에도 부끄럽지 않도록 살 것. 보기만 해도 목구멍에 탄산수를 넘긴 것처럼 속이 뻥 뚫리는 말들이다. 기름기가 쫙 빠져나간다.
개처럼 살자! 미련도 욕심도 없이 마냥 행복하게.
나는 출근을 십분 남겨놓고 널따란 광장 벤치에 드러누워있다.
아방가르드한 예술 광장이라 높은 천장에 붙은 금속 판에 발랑거리는 내 모습이 비쳐 보인다. 요즘 계속 날씨가 좋아 창가를 바라보는 고양이의 머리통 뒤에 파란 가을 하늘이 걸렸다. 가을 고양이, 하고 부르면 슬쩍 이쪽을 뒤돌아보는 9살 노묘. 고양이가 보던 하늘을 뻥 뚫린 광장에서 나도 보고 있다. 곧 횡단보도를 건너 땡볕에 뛰어가야 하겠지만 당장은 살랑살랑 부는 바람과 기온이 기분이 좋다. 한국의 가을이다.
지난번엔 여름에 대한 글을 썼던 것 같은데 한 달 새 계절이 이렇게 변했다. 글을 쓸 마음이 들기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전전긍긍하던 위스키 공부를 끝냈고, 6권의 술 책과 캐롤라인 냅의 번역 저서를 모두 읽었다. 언젠가 노트북을 펴게 될 날을 생각하며 쓰고 싶은 것들을 하나하나 적어두었다. 새삼 글을 쓰는 것을 꽤 그리워하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출근길에 우당탕탕 적고 있어 지금은 흐물거리는 감정밖에 얘기할 수 없지만, 퇴근하고 자리 잡고 글을 쓰게 되면 보다 단단한 이야기들을 쓸 수 있으리라. 쓰고 싶은 것들이 아주 많았다. 내가 이렇게 글을 쓰고 싶어 했나 의아할 정도로 많았다. 글 쓰는 상상을 하며 나는 행복하게 지냈다. 혼자서 야금야금 행복했던 것들을 글로 적어야겠다.
금은보화와 부귀영화를 제안하는 대왕의 말에 비스듬히 기대 누워 제 앞에 드리운 당신네 그림자나 치워달라는 디오게네스의 말은, 꼭 누워서 적고 싶었다. 날씨도 좋고 기분도 좋은 것이, 한껏 개 같은 내 인생에 필요한 건 그쪽이 등으로 막고 있는 햇살 한 줌 뿐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