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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신바람 신여사 Jul 16. 2023

직밴 합주후기

면의 굵기가 일정하지 않아서 그런지 면이 국물을 잘 머금고 있다. 약간 짭짤하지만 중식은 자극적이어야 맛있으니까. 젓가락으로 그릇 속을 휘저으니 바지락이 와라락~ 한다. 역시 짬뽕엔 홍합보다는 바지락이다. 스펀지 돼지비계 중간쯤 되는 물컹한 대왕 오징어 살조각이 아니라 진짜배기 오징어가 넉넉하다. 소주 한 병이 맛있게 비워진다. 한 시간 넘게 갇혀있던 강변북로의 피로가 술과 음식에 다 풀어진다.


카드를 내미는데 사장님이 오랜만에 와줘서 고맙다고 하신다.

설마 알아보실까… 했는데…

어떻게 버티셨어요? 했더니 눈썹이 금방 기울어진다.

주방 보조 내보내고, 홀도 혼자 보고 그랬어요.

삐져나오는 한숨을 헛기침으로 꾹 막고 사장님의 기름때 묻은 앞치마 자락으로 시선을 떨군다.

카드를 받아 들고 또 오겠다 인사하며 중국집을 나선다.


곱창집, 맥줏집, 합주실… 고맙게도 다 그대로.

익숙한 그 골목에 몇 년 더 늙은 우리만 쭈뼛쭈뼛 어색하다. 주차장 승합차 사이에서 하나 둘 담배에 불을 붙인다. 따가운 공기를 몸통 가득 채운다. 그리움과 반가움이 희미한 연기로 피어오른다. 3년의 시간을 힘껏 뿜어낸다.


합주실로 내려가는 계단 따라 한껏 멋 부린 공연 포스터가 즐비하다. 공연 일시는 이미 3년 전. 누렇게 변색되는 중이다. 커피 묻은 종이컵을 다 삼키지도 못하던 쓰레기통은 얌전히 엎드려 입을 다물고 있다. 연습실에 먼저 들어간 팀이 나오길 기다리던 의자엔 먼지가 뽀얗다. 일주일 전에 예약해야 간신히 입성할 수 있던 합주실엔 이제 사장님과 우리뿐이다. 사장님의 옅은 미소가 오렌지색 조명에 투명하게 물든다. 못 본 사이 사장님은 머리칼도 걸음걸이도 희미해졌다.


육중한 방음문을 열자 묵은 공기가 일렁인다. 서늘한 지하실 냄새가 훅 끼친다. 드럼 바닥에 깔린 카펫 패턴은 여전히 흉터 같고, 목 긴 선풍기는 아직도 회전이 안된다. 우리가 다녀간 이후로 누구의 손도 안 탄 듯 모든 게 너무나 그대로인 공간을 보니 코로나 몇 년이 거짓처럼 느껴진다.

앰프 전원을 켜고 케이블을 악기에 연결한다. 소리가 안 난다.

볼륨 노브를 조절해 보고 케이블을 바꿔본다. 소리가 안 난다.

멀티탭 전원을 껐다가 다시 켜본다. 소리가 안 난다.

뒤통수를 긁어보고 허리춤에 두 손을 걸쳐봐도 악기는 고집스레 입을 열지 않는다.

팀원들 미간 사이에 당혹감이 내려앉는다.

완전히 반대로 꽂힌 케이블을 찾아 소리만 내는데 20분이 걸린다.


손에 익었던 모든 일들이 이젠 애쓰고 의식하지 않으면 잘 되지 않는다. 순서와 방법은 그대로인데, 우리만 어딘가 고장 난 모양이다. 오래된 곡들을 오랜만에 연주해 본다. 손이나 풀자. 가벼운 마음으로 만났지만 수월하던 연주가 기억나지 않고, 몸이 내 마음처럼 움직여지지 않자 덜컥 겁이 난다. 길 잃은 심정에 굳은살 사라진 손만 자꾸 문지른다.


우린 회의와 업무, 평가와 실적 사이사이를 요령껏 파고들어 기어코 서너 시간을 도려냈다. 빠듯한 용돈에서 한두 방울 짜내어 마련했던 악기를 다시 꺼냈다. 3년 넘게 멈춰있던 밴드를 일으켜 세워 달리게 하는 건 예상보다 더 많은 시간이 들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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