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확진 후기
* 글 쓰는 날로부터 한 달 전 시점입니다
한 달 전 아침, 일어나니 목이 아프고 두통도 있는데다 오한까지 오는 게 좀 싸해, 바로 약국에 가서 코로나 자가 키트를 2개 사서 돌아왔다.
첫 번째 코로나 키트는 뭘 잘못했는지 아예 결과가 나오지 않았고, 두 번째 결과는 양성. 하아....
동료, 학생, 친구, 지인들 중 코로나 걸렸던 사람도 워낙 많고, 이미 확진자 접촉도 여러 번 했던 터라서 결과가 놀랍지도 않았다. (백신, 맞았습니다... 주변에 걸렸던 사람들도 거의 다 맞았고요.)
이런 분위기라면 분명 언젠가 걸려도 걸릴 텐데, 다가오는 시험 기간은 좀 피하자며 바짝 신경 쓰고 다녔다.(뭐 코로나가 내가 신경 쓴다고 안 걸리는 것도 아니지만) 그런데 어쩜 이렇게 중요한 시험 다 끝내놓자마자 딱 걸려 버렸는지. 아무래도 말하기 시험 때 학생한테 옮은 게 아닐까 싶다.
양성이 나오자마자 바로 코로나 걸렸던 사람들 몇몇에게 연락을 돌려서 프로토콜을 물어보았다. 일단 Salud Responde라는 곳에 연락하라고 해서 전화하니 내 개인 정보와 증상 등 이것저것을 물어 보고는 지금부터 바로 7일간 격리를 시작하란다. 오후에 내 주치의에게 전화가 올 거고 더 자세한 얘기를 해 줄 거라며.
몇 시간 뒤에 의사에게 전화가 왔다. 증상, 백신 접종 여부, 확진자 접촉 여부 등등 물어보더니 열이 나면 8시간에 한 번씩 파라세타몰을 먹고 7일 동안 격리해야 하는데, 만약 7일째에 증상이 더 있으면 3일간 더 격리하란다. 음? 이게 끝? 뭐 더 특별한 얘기 해 주나 했더니.
초기 증상은 오한, 두통, 인후통, 식욕 없음, 속 메스꺼움이었다. 체온계가 없어서 열은 재지 못했지만 몇 시간 지나자 몸에서 열감도 느껴졌다. 그중 제일 두드러진 증상은 두통과 오한과 속 메스꺼움. 옷을 세 겹이나 껴입었는데도 몸이 덜덜 떨렸고, 급체했을 때처럼 속이 메스껍고 머리가 띵하게 아팠다.
식욕은 하나도 없었지만 뭐라도 먹어야 할 것 같아서 얼마 전 맛있게 먹은 채소 전골을 다시 끓였는데 놀랍게도 맛이 하나도 없었다. 코로나 증상에 미각 상실과 후각 상실도 있다더니, 내가 미각을 상실한 건지 요리를 잘못한 건지. 간장과 소금으로 간을 더 맞춰 봤지만 여전히 못 먹을 맛이다. 몇 숟가락 먹다가 포기. 속도 불편하고 소화도 안 돼서 계속 흰죽만 끓여 먹었다.
이틀차에도 주요 증상은 여전했고, 목에 가래가 끼는 게 추가됐다. 레몬 생강차를 끓여다가 마셨는데 역시나 맛이 안 나고 속이 불편했다. 이날도 죽으로 연명.
삼일차에는 주요 증상에서 오한이 사라졌다. 속 메스꺼움과 두통만 좀 사라져도 살 것 같은데. 뭘 제대로 먹을 수가 없으니까 미칠 것 같다. 몇 끼를 흰죽만 먹고 있는 건지. 이 소화장애가 코로나의 증상인 건지 코로나와 함께 위장염이 온 건지 모르겠다.
한국에서 흰죽은 늘 김치와 함께 먹었으니 김치를 먹으면 좀 괜찮아질까 싶어서, 필요한 거 있으면 가져다주겠다고 하는 동료이자 친구 파트리에게 집 근처 아시아마트에서 김치를 좀 사달라고 부탁했다. 두부나 김 등 뭐 뭐 사갈까 묻는데 집에 있는 음식들도 속이 안 좋아 다 못 먹을 판이라, 죽 만들어 먹느라 떨어져 가는 쌀이나 하나 더 부탁했다.
선물과 함께 문 앞까지 배달해 준 천사, 파트리. 매일 연락 와서 상태 물어보고 재미있는 넷플릭스 시리즈랑 스페인어 게임도 추천해 주었다. 이 친구도 두 달 전에 코로나에 걸렸다가 회복되었다.
흰죽에 김치를 같이 먹으니 미각이 돌아오는 느낌. 역시 한국인은 김치가 있어야 하는가.
그리고 사일 차, 드디어 두통과 속 메스꺼움이 좀 가셨다. 목에 가래 끼는 거도 좀 나아졌고 대신 콧물이 좀 나고 코가 막히는 증상이 추가됐지만 이건 그간의 증상에 비하면 약간 성가신 정도라 괜찮다.
둘째 날 한창 상태가 안 좋을 때는 살짝 서러워질 뻔했는데, 그래도 친구도 없던 2020년 봄이 아니라 지금 걸린 게 다행이라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안느도 매일 연락 와서 상태를 물어보고 비타민C가 중요하다며 여러 종류의 과일과 직접 만든 단호박 수프를 집 앞에 배달해 주었고, 소식을 전해 들은 사람들 다 연락 와서 필요한 거 있으면 말만 하라고 바로 갖다주겠다고 하고. 수시로 연락해서 몸 상태가 어떤지 물어왔다.
요즘 코로나 걸리는 사람들이 워낙 많으니 그냥 대수롭지 않게 여길 수도 있는데, 막상 코로나에 걸린 입장이 되어 보니, '몸은 어떠냐', '좀 괜찮냐' 물어보는 이 한 마디가 별 거 아닌 말이 아니었다. 하나하나 의미있게 다가와서 치료제 같은 역할을 했다. 격리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 누군가가 코로나에 걸리면, 나도 똑같이 세심하게 챙기고 도울 수 있는 건 최대한 도와야겠다는 생각도 하고.
그리고 언제 걸려도 걸렸을 거, 학사 일정에 지장 없이 지나가 다행이고, 혼자 살아서 바로 옮길 사람 없어서 다행이고, 의지와 상관없이 조금밖에 못 먹어서 격리하면서 오히려 살 빠진 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격리가 거의 끝날 때쯤 호박죽을 가져다 준 안느도 코로나 확진이 되었다. 다행히 안느는 약간의 콧물만 있고 큰 증상 없이 지나갔다. 이 글을 쓰는 시점으로부터 한 달 전인 2월 초가 스페인에서는 확산세의 피크였고 지금은 확산세가 꺾인 상태이다. 실외 마스크 착용 의무도 해제되었다. 이제는 한국이 정점을 지나고 있는 듯하다. 한국의 친구와 지인들 등 여기저기서 확진되었다는 소식이 들린다.
영국과 덴마크, 네덜란드를 포함한 유럽의 몇 나라는 이미 코로나 관련된 모든 규제를 풀었다. 뭔가 긴 터널의 끝이 이제야 조금씩 보이는 것 같다. 그때까지 부디 다들 무사했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