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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대초록 Jan 15. 2024

영하 22도에서 얼음물 점프, 진짜 가능해?

핀란드 사람처럼 사우나 해 보기


오로라는 핀란드 외에도 몇몇 나라의 북극권에서  볼 수 있지만, 핀란드가 오로라 여행지로 갖는 장점은 단연 사우나가 아닐까 싶다. 영하 20도의 추위 속에 있다가 사우나에 들어가면 그날 하루치 추위가 다 보상받는 기분이 드니까. 


그래서인지 핀란드의 웬만한 호텔에는 다 사우나가 있다. 숙박업소뿐 아니라 일반 가정집 또한 개인 사우나나 건물 공동 사우나를 갖추고 있는 게  흔하다고 한다. 


아쉽게도 헬싱키와 로바니에미 에어비앤비에는 사우나가 없었지만,  헬싱키에서 묵은 호텔과 사리셀카 호텔에는 다 사우나가 있어서 핀란드에 있는 동안 거의 매일 사우나로 하루를 마무리할 수 있었다. 




사우나에서 다 벗어도 될까?


헬싱키 호텔의 사우나에서였다. 한국 목욕탕처럼  핀란드 사우나도 남녀 구분되어 있는 곳이라면 옷을 다 벗고 들어가는 것이 일반적이라 한다. 그곳도 남녀 사우나실이 따로 있어서 들은  대로 옷을 모두 벗고 샤워를 한 후 사우나실 문을 열었다. 그 순간 너무  당황해 그대로 밖으로 나오고 말았다. 안에 있던 네 명의 여자들이 모두 수영복을 입고 있었기 때문이다!(정확히 한 명은 원피스 수영복 나머지는 수영복 하의만) 


혼자만 알몸이 되어 버린 나는 급히 수건을 집어 들고 몸을 가린 뒤 다시 사우나 실로 들어갔다. 내가 잘못한 건 없지만  몸을 가린 사람들 앞에서 혼자만 다 벗고 있는 건 민망하니까. 다행히 조금 후 나처럼 옷을 다 벗은 사람이 한 명 더 들어와 얼마나 마음이 놓이던지.


그리고 다음 날, 전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이번에는 수영복 하의를 입고 들어갔다. 그런데 왜 오늘은  다 벗고 있어? 그래도 다 입을 때 벗는 것보다야 다 벗을 때 입는 게 낫지 뭐.....  한바탕 사람들이 들락날락하고 혼자가 되었을 때 일본인으로 추정되는 사람이 들어와 '곤니치와'하고 인사했다.


여기서 잠깐 옆길로 새자면, 헬싱키에는 일본 사람이 정말 많다. 20대 때 유럽이나 동남아 배낭여행할 때만 해도 일본인 여행자들을 참 많이 만났는데, 어느 순간부터 여행에서 일본 사람을 마주치는 일이 드물어졌다. 그 많던 일본 여행자들은 다 어디 갔을까  했더니 다 핀란드에 있었던 거였다!


과장 안 보태고 지금까지 여행한 곳 중 일본을 제외하고 일본인을 가장 많이 본 듯하다. 길에도 가게에도 호텔에도 어딜 가나 일본 사람들이 있었다. 일본인들도 그걸 아는지  아시아인을 보면 으레 일본인이겠거니 하고 일본어로 실례한다거나 사과를 하곤 했다. 


아무튼, 그분도 내가 당연히 일본이려니 하고 일본어로 인사한 듯하다. 둘이 어색하게 앉아 있다가 스토브 돌 위에 물 뿌려도 되냐고 질문한 걸 계기로 대화가 시작됐다. 어제 사우나에서 있었던 일을 말해 주니까 엄청 웃더니 그래서 지금 수영복 하의만 입고 있는 거냐고 했다. 그분은 알몸이었음.


일본 사람을 만난 김에 줄곧 궁금했던 헬싱키에 일본 사람들이 많은 이유  물어보았다. 그분은 잠시 고민하더니, 연어를 주로 사용하는  핀란드 음식이 연어를 자주 먹는 일본인들 입맛에 잘 맞고, 핀란드 디자인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것 같다고 했다. 거기다 무민의 인기 또한 빼 놓을 수 없을 것이다. 


핀란드 브랜드 '마레메꼬'에 대한 일본인들의 사랑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 마리메꼬 아웃렛에 가면 90퍼센트가 일본인들이고 다들 바구니가 넘치도록  담아 가더라. 마리메꼬뿐 아니라 아라비아나 이딸라 봉투를 양손 가득 들고 가는 일본 사람들도 흔히 볼 수 있다. 


그런데 알고 보니 핀란드의 일본에 대한 사랑 또한 대단한듯했다. 핀란드의 유명한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알바 알토도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마리메꼬 또한 일본 예술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인지 유럽의 어느 나라를 가도 일식집이 많긴 하지만 헬싱키는 일본인들만큼이나  일식집 또한 정말 많았다 한국에서 2007년에 개봉한 영화 <카모메 식당>을 보며  왜 하필 배경이 헬싱키인지 궁금했는데 핀란드에 와서야 그 궁금증이 해소됐다. 



사우나와 얼음물 목욕


오로리를 보러 간 핀란드 북극권 사리셀카의 숙소에는 사우나 시설이 두 개가 있었다. 하나는 전기 사우나,  하나는 전통 방식인 스모크 사우나. 스모크 사우나에는 굴뚝이 없어  돌로 된 커다란 스토브에 나무를 태우면  사우나실 안이 연기로 가득 채워진다. 시간이 지나면 연기는 밖으로 빠져나가고 남아 있는 열이 사우나실을 계속 헤서 따뜻하게 유지하는 방식이다.


전기 사우나는 투숙객들이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스모크 사우나는 12유로에 따로 예약해서 사용 가능한데, 아쉽게도 내가 묵은 주에는 예약이 꽉 차 있었다. 


어느 아침, 방 안에서 뭔가 타는 냄새에 잠이 깼다. 여기저기 킁킁거리며 돌아다녔지만 냄새의 원인을 알 수 없었다. 냄새를 따라서 복도를 지나 건물 밖으로 나가 보니 건물 끝에서 작게 연기가 나는 게 보였다. 


불안해진 우리는 얼른 로비 건물로 달려가 방 안에서 타는 냄새가 나고 건물에서 연기가 난다고 했고 스태프는 웃으면서 스모크 사우나에서 나는 거라 했다. 오후에 사용할 수 있게 하려면 아침부터 불을 때는 거라며. 


스모크 사우나와 같은 전통적 방식의 사우나는 몸을 한껏 데운 다음  얼음물에 뛰어들어 몸의 열기를 식히고 다시 사우나에 들어가기를 여러 번  반복한다고 한다. 숙소 스모크 사우나 앞에도 있던 꽁꽁 언 얼음을 깬 호수가 있었고 전기 사우나를 사용하는 사람들도 들어갈 수 있단다.




얼음물에 몸을 담그고 온 친구가 너무 개운하다며 한번만 해보라고 했지만, 핀란드 사람들이야 어렸을 때부터 쭉 해오던 거라 문제 없어도, 나 같은 사람이 갑자기 얼음물에 들어갔다가 심장마비 오면 어떡하냐며 손사레를 쳤다. 


사우나가 답답하면 그냥 잠깐 밖에만 나갔다 와도 1초만에 열기 다 식을 것 같은데 얼음물에 들어가는 그런 고통스러운 짓을 왜 하냐고. 그리고 닥 30분 뒤에 나는 그 고통스러운 짓을 하고 마는데........


계속되는꼬득임에 넘어가 사우나실 돌 위에 물을 계속 부어 뜨거운 스팀으로 가득 차게 만든 후, 열기를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때쯤  문을 박차고 얼음물이 있는 곳으로 뛰어 나갔다. 멈칫하면 더 추우니 그냥 단번에 들어가라는 말에 에라 모르겠다 그냥 성큼 성큼 물로 걸어 들어갔다.


으아아아악. 너무 차가워!!!


이날 기온 영하 22도. 목까지 물에 담그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위로 튀어 올라왔다. 물에서 나온 순간은 피부가 찢어질 것 같았는데, 3초가 지나니까 신기하게도 상쾌함과 개운함이 온 몸을 휘감고 올라왔다. 여름에도 찬물 샤워 절대 안 하고 솜이불 푹 덮고 자는 내가 이런 짓을 하다니!


다시 사우나 안으로 들어가니 한참을 앉아 있어도 답답하거나 뜨거운 느낌이 안 들고 가뿐하네? 아, 이래서 사우나하고 얼음물에 들어가는구나!  이후 두 번 더 얼음물에 들어갔고 그때는 비명도 지르지 않았다. 이게 바로 자연 도파민인가?



스모크 사우나


사리셀카 마지막 날, 혹시나 싶어서 숙소에 스모크 사우나 자리 난 거 없냐고 물어보니  마침 딱 한 자리 난 게 있다고 했다. 공항으로 가는 버스 시간이 4시 15분인데 스모크 사우나가 3시부터 시작하니까 시간은 충분했다. 


스모크 사우나는 남녀 공용이라 실외에 있는 스모크 사우나 탈의실에서 얼른 수영복으로 갈아입고 사우나실 문을 열었다. 사우나 안에는 엄청나게 큰 스토브가 있고 매우 어두컴컴했다.문앞에서 두리번거리고 있으니 안에 있던 핀란드 분이 밖에 있는 나무 깔때기 갖고 와 깔고 앉으란다. 안 그러면 연기 때문에  엉덩이가 다 새까매진다며.


연기 때문에 숨을 제대로 쉴 수 있을까 걱정했는데 생각보다 연기가 많지는 않았다. 전기 사우나처럼 중간중간 사람들이 스토브 안으로 물을 끼얹으면 열기가 훅 올라왔다. 좀 있으니 사람들이 점점 몰려들어 옆사람과 꼭 끼여 앉았고, 내부는 금세 시끄러워졌다. 말 없는 핀란드 사람들이 제일 시끄러워지는 때가 사우나 안이라더니. 


점점 답답해져 올 때쯤 나가서 얼음물에 들어갔고, 그 장면을 본 사람들이 대단하다며 엄지 손가락을 치켜 세웠다.아... 얼음물 때문에 에고가 성층권을 뚫고 올라가버려 이러다가 나중에는 스카이다이빙도 해 버릴 것 같은데 어떡하지? 그래도 그건 절대 못 함....



사우나 후 영하 22도 날씨에 얼음물 들어가기. 다행히 심장마비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고, 처음이 어렵지 한 번 하니까 그 다음부터는 별 거 아니었다. 핀란드인처럼 사우나 해 보고 싶은 분들은 이거 하나만 꼭 기억 하시길. 멈추지 말고 한 번에, 성큼성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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