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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대초록 Oct 24. 2019

드디어 집을 구했다

스페인에서 집 구하기


삼 일 전, 드디어 집을 구하고 어제 이사를 마쳤다. 몇 개의 집을 둘러보고 어쩜 저리 사진과 다를 수 있나 실망만 남던 날들이었다. 예산 최대치이기는 하나 위치 괜찮고 상태도 괜찮아 보이는 집과 약속을 잡아 놓은 게 있어 여기에 모든 기대를 걸고 있었다.


하지만 어이없이 파투 나고 매우 실의에 빠져 있던 찰나 전날 연락해 놓은 곳에서 보러 오라고 연락이 왔다. 사진상으로는 꽤 좋아 보였으나 사진과 실물 다른 집 많았으니 별 기대도 안 했다.


집주인보다 먼저 도착했는데 일단 건물 입구 깔끔해 보여 합격, 그리고 바로 앞의 작은 plaza(번역하면 광장이나 광장이라고 하기엔 매우 작아 그냥 plaza라 쓴다)에 몇 백 년은 된 것 같은 매우 큰 나무 세 그루에 +1점. 집 안 사진과 거의 일치해서 +10점!


원래는 에어비앤비로 사용하던 곳이었는데 집주인이 말라가 밖에 나와서 살게 되며 왔다 갔다 하기 힘들어 장기 렌트를 놓는 거라 한다. 그래서 관리 잘 되어 있고 집주인 센스 있어 인테리어도 매우 예쁘고 가구, 주방도구, 욕실용품, 청소도구 싹 다 있어 개인적으로 살 거 거의 없다.


단 하나 걸리는 건 학교까지 바로 가는 교통편을 포기해야 한다는 것이나 학교 매일 가는 거 아니고 집 문을 나와 학교 건물로 들어가는 시간 계산해보니 한국에서 직전 직장 다니던 시간이랑 같아 할 만하겠다 싶었다. 숙소로 돌아가 주인아주머니께 동네 치안 어떤지 확인받고, 사무실 동료들한테도 물어보니 괜찮다고 하여 이 집으로 결정!                       


이사 기념 축배


코스타리카에서는 그 나라도 잘 모르고 스페인어도 못 하는 채로 도착하자마자 혼자 살기 시작했었다. 집을 안 구해도 된 건 편했으니 생존 현장에 바로 내던져진 것 같기도 했었다. 스페인어는커녕 한국어 한 마디 안 하는 날도 종종 있었다. 차라리 홈스테이나 셰어하우스에서 좀 지내다가 혼자 나왔으면 어땠을까 싶기도 했다.


그런데 이번에 집을 빨리 못 구한 탓에 예상보다 긴 시간을 머물게 된 에어비앤비가 본인들이 살고 있는 집에 남는 방 두 개를 여행객들에게 내어주는, 말 그대로 공유 숙박인 진짜배기 에어비앤비였고(요즘 아예 숙박업소로 하는 에어비앤비도 워낙 많다) 심지어 방 하나는 예전에 손님으로 왔다가 다시 돌아와 장기 체류하고 있는 스위스인 하숙생이 있어 진짜 홈스테이처럼 지냈다.


방은 작았지만 14년 전에 이민 온 칠레 가족들 너무너무 다정하고 따뜻했고, 도착한 첫날은 스페인어 숫자 17이랑 70도 헷갈려 집 주소도 잘못 말할 정도였는데, 하루의 끝에 가족들과 조잘조잘(이라 쓰고 더듬더듬이라 읽는다) 거리며 입도 귀도 많이 풀렸다.


집 못 구하면 그냥 여기서 지내라는 거 하마터면 혹할 뻔했다. 이사하는 날은 차로 새집까지 데려다주기까지. 임시 숙소가 불편했다면 집 구하는 기간 얼마나 괴로웠지 상상도 안 간다. 내가 갖고 태어난 가장 큰 복이 인복이라 살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의 호의와 도움을 받고 살았다. 이를 다 갚으려면 얼마나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할까.   


살짝 익숙해지려 하니 새 집, 새 동네, 다시 새로 시작하는 기분.


이제 수업만 잘 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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