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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대초록 Oct 24. 2019

걸어서 말라가 속으로

 



학생들 재시험도 다 끝났고 집도 구했겠다, 이제 다음 주에 있는 개강만 남겨놓은 상태라 오늘은 홀가분히 관광객 모드가 되어보기로 했다. 현재 숙소가 시내에 있기도 하지만 말라가가 워낙 인도가 잘 깔려 있고 시가지가 촘촘하게 이어져 있어 말라가 저 끝에 위치한 학교 갈 때 제외하고 대중교통 이용할 일 없다. 요즘 하루 만 보는 기본으로 걸었더니 드디어 발목과 무릎이 시큰해오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 와중에 나는 두 시간짜리 프리 워킹 투어를 신청했지. 



벌써 여러 번 지나갔지만 지식이 없어서 우와 멋있네 하고 말았던 곳에 대해 설명을 제대로 들으니 재미나 연신 고개를 끄덕끄덕 거렸다. 그리고 심지어 손필기도 했다! 블로그에 포스팅하려고! 초등학생 때 학교에서 박물관 같은 데 견학 가면 꼭 감상문 쓰라 하니까 그때 공책 들고 가서 쓴 이후로 뭘 들으며 쓴 적 처음이다. 당연히 오늘의 투어 그룹에서도 쓰는 사람은 나하고 실습 나온 가이드 견습생분밖에 없었다. 그래도 그분은 휴대폰으로 쓰더라. 하하



다 이해하지는 못했지만 들은 것 중에서 인상적인 것들을 정리해 본다.



말라가는 3000년의 역사를 가진, 스페인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의 하나로 고대 페니키아 인들이 세운 것으로 추정되며 기독교인들의 통치 전까지 약 800년간 무슬림이 지배했다고 한다.



좁은 골목을 지나가다가 갑자기 등장하는 웅장한 말라가 대성당은 짓는 데 무려 200년이나 걸렸지만 비용 문제로 결국 중단되었고 성당이라면 으레 양쪽에 있어야 하는 종탑이 하나만 있는 미완성 상태로 남아 있다. 그래서 이 성당의 별명이 스페인어로 라 만끼따(La Manquita), 팔이 하나밖에 없는 여인이라는 뜻이라고.


하지만 말라가 사람들의 대부분은 나머지 종탑이 완성되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고? 왜냐하면 이 팔이 하나 있는 대성당이 말라가의 상징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사진 출처, 구글 이미지. 말라가 대성당

          

왼쪽에 있는 종탑이 오른쪽에는 없다


성당 뒤쪽은 이슬람 모스크였던 것을 개조한 것인데 무슬림들은 절을 하니 모스크의 천장이 높을 필요가 없는 반면 성당은 높은 천장을 필요로 했고, 이슬람 모스크는 남쪽을 향하나 성당은 동서로 세워지므로 개조하는 과정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요 건물이 이슬람 모스크였음

                               

이 대성당의 특징 중 하나로 오렌지 나무가 가득한 정원을 꼽을 수 있는데 원래 이 자리는 모스크에서 기도하기 전 몸을 깨끗이 세정하는 곳이었다 한다. 무슬림들은 냄새에 민감한데 이 오렌지 나무에서는 매우 강한 향기가 나기 때문에 곳곳에 심었다고. 그래서 말라가의 골목골목에서 오렌지 나무를 가로수로 심어 놓은 것을 볼 수 있다. 이 나무에서 오렌지를 따 먹는 건 불법은 아니지만 맛이 없어서 추천하지는 않는단다.


                         

그리고 유럽의 avenue, 거리들이 넓고 길게 뻗어있는 것과 달리 말라가 구시가지에서는 미로처럼 좁은 골목을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무슬림 지배 역사와 관련 있다 한다. 보통 사막이 있어 더운 무슬림 국가에서 길 사이 간격을 좁혀 시원한 그늘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했고, 또한 적들로부터 보호하기 위해서도 그런 모습으로 만들어졌다고. 그래서 무슬림 지배 하에 있었던 세비야, 그라나다와 같은 다른 안달루시아 도시에서도 이런 골목을 찾아볼 수 있다고.

         

                                          

아, 가장 중요한 말라가의 뜻!



말라가 로마 극장 앞, 피라미드 유리로 덮인 곳 아래에 로마 시대 절임 생선 소스 가룸(garum)을 생산하던 시설물이 있는데, 말라가는 이 가룸 생산으로 유명했다 한다. 당시 음식 저장에 필수적이었던 소금은 은보다도 가치가 있었고 가룸을 만드는 데 필요한 소금이 풍부했을 터이니 city of salt, 소금의 도시 즉 city of money 돈의 도시라는 뜻이었다고. (집에 와 찾아보니 Malaga의 Malac이 소금이라는 뜻이란다) 



그 외에도 여러 가지 설명을 들었지만 생략! 투어 후에 원하는 만큼의 돈을 내면 되는 Free Walking Tour는 처음이었는데 유익했다. 역시 알고 봐야 보인다.



투어를 마무리하며 가이드분이 스페인의 대표적인 음식으로 여겨지는 빠에야나 상그리아가 말라가에서는 관광객들만 먹는 거라며 여기에 왔으면 말라가 모스카텔이나 레드와인에 환타를 섞은 띤또 데 베라노(Tinto de Verano)를 먹으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투어 끝나고 꿋꿋하게 빠에야에 화이트 와인을 한 잔 시켰지!


아직까지 스페인 와서 빠에야 먹어본 적 없는데다 마침 근처에 채식 식당이 있었고 베지테리언 빠에야를 팔길래 마다할 이유가 없었다. 쌀 먹은 지 오래됐기도 했고. 그리고 띤또 데 베라노는 맛있기는 한데 술에 뭐 섞는 거 싫어. 여름에는 차가운 화이트 와인이지! 완전 마이웨이 맞고요.

                


화이트 와인과 채식 빠에야


                          

오늘도 말라가는 하늘 예쁨!            


                      

덧, 말라가 출신 제일 유명한 인물로 화가 파블로 피카소가 있습니다. 그래서 말라가에 피카소 미술관과 생가가 있고요. 그리고 스페인의 유명한 배우 안토니오 반데라스도 말라가 출신이지요. 부활절마다 들러서 유명한 말라가의 부활절 퍼레이드를 보고 간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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