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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대초록 Nov 20. 2019

낯선 공간에 적응한다는 건 마음 붙일 공간을 늘리는 것

단골 카페 만들기




말라가, 이 매력 넘치는 도시에서 딱 하나 아쉬운 게 있다. 바로 카페와 커피.


말라가에 카페가 없어 그러냐고요? 너무 많은 게 문제입니다. 그것도 반 이상이 노천카페고요. 가끔은 여기 인도가 넓은 이유가 테라스를 만들기 위해서가 아닌가 싶을 정도.


카페는 저어어엉말 많지만 한국 스타일의 ‘카페’라기보다는 아침과 간단한 점심을 파는 ‘카페테리아’가 대부분이다. 근무 중에 30분 정도 간단한 아침을 먹으러 나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빨리 먹고 빨리 일어나고, 오후에는 여럿이 우르르 와서 이야기를 나누는 곳이라 혼자 와서 노트북을 펴놓고 오래 앉아 있을 분위기는 아니다. 콘센트를 사용할 수 있는 분위기는 더더욱 아니고.


그리고 결정적으로 커피가 맛이 없다. 여기 사람들은 보통 에스프레소(Cafe solo)나 에스프레소에 데운 우유를 탄 것(Cafe con leche)를 마시는데 값은 2000원도 안 할 정도로 저렴하지만 그냥 쓰다. 종종 원두도 팔고 커피 맛으로 승부 보는 카페들도 있기는 하지만 그런 곳은 너무 좁고 작아서 30분 이상만 앉아 있어도 눈치 보였다.


코스타리카는 말할 것도 없고 한국만 해도 그날의 무드별로 골라서 카페를 갈 수 있을 만큼 채이는 게 카페고, 커피 한 톨도 생산 안 하면서 웬만한 카페에서는 커피 원두를 살 수 있으며, 원두도 고소한 맛, 산미 골라서 마실 수 있는데! 비싸다는 단점이 이 모든 장점을 한 방에 상쇄시켜버리긴 하지만.


너무 커서 공장 같고, 너무 작아 부담스럽지 않은 적당히 아늑한 크기에 포근한 조도, 번잡스럽지 않지만 지루하지도 않은 인테리어, 거슬리지 않지만 한 번씩 어 음악 좋네 하며 귀에 턱 걸리는 음악 선곡, 40퍼센트 이상 차지하는 나 홀로 족들, 그리고 커피 맛. 이 조건을 갖춘 곳 찾기가 찾기가 참 어렵다. 써 놓고 보니 엄청 까탈스러워 보이지만, 서울서는 집 근처에서만 이런 곳을 매일 바꿔가며 다닐 수 있었다. (다시 한번 비싼 게 문제)


이상적인 카페를 찾기 위해 한참 유랑하다 드디어 발견했다. 저 모든 조건을 만족하는 단골 삼고 싶은 카페를!


이름하여 Cafe de viajero, 여행자의 카페.




말라가의 핵 관광지인 알카사바 요새를 지나가다가 우연히 고개를 왼쪽으로 휙 돌린 순간 카페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작은 테라스 사이로 난 문으로 세계 지도가 보였다. 이름도 여행자 카페래. 들어가 보지도 않고서 왠지 끌려 구글지도에 표시해 놨더랬다,


쉬는 날인 오늘, 다가올 크리스마스 방학 때 부모님과 함께 할 여행 준비를 해야겠다 생각하다 문득 그 카페가 떠올랐다. 여행자 카페에서 여행 준비를 해야겠다!


적당히 아늑한 크기 합격, 조도 합격, 노트북이나 책을 가지고 와 혼자 있는 사람들 비율, '여행'을 주제로 하면서 잡다하지 않게 중심 잡은 인테리어까지 합격! 주력 메뉴가 차인지 차 종류가 굉장히 많았는데 커피 메뉴에 우리 카페는 차가 메인이지만 커피 또한 그에 뒤지지 않는다는 자부심 넘치는 멘트가 쓰여 있길래 믿어 보자는 마음으로 시켰는데, 한 모금에 별 반짝! 이 얼마 만에 마셔 맛보는 산미인지. 마드리드 포함 지금까지 스페인에서 마신 커피 중에서 제일 맛있었다! 핵 관광지에 있으면서 가격도 매우 착하고. 일하시는 분들의 진지한 태도까지도 매우 마음에 들었다.  


그리고 비건 케이크도 판다! 오늘은 안 먹어봤지만 다음에는 먹어 봐야지. 커피 두 잔을 마시는 동안 내일 수업 준비도 하고 다가올 여행 계획도 짰다. 언젠가 가족과 친구들이 오면 여기 내 단골 카페야! 하며 데려갈 수 있는 곳을 만들게 된 것만으로 이 도시에 발을 좀 더 깊이 넣은 것 같다.


<느려도 괜찮아, 여기는 코스타리카>에서 (내가) 그러던데. 낯선 곳에 적응한다는 건 마음 붙일 공간을 하나둘씩 늘려가는 거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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