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onjour!
야심 차게 프랑스어 공부 기록을 시작했더니 수업 시작 2주 만에 2주간 휴강한단다. 알파벳, 이름과 국적 말하기까지 배우고 이 주만에 수업에 갔더니 거의 리셋 상태다.
우리 선생님은 스페인 현지인 수준으로 스페인어를 구사하는 프랑스인이다. 알고 들으면 말투에 약간의 프랑스식 억양이 섞여 있는 걸 느낄 수 있지만 따로 말하지 않았다면 스페인 사람인 줄 알았을 거다.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올 때는 스페인어로 인사하고 이런저런 지시사항도 스페인어로 일러주는데 시작하면 바로 프랑스어 모드로 바뀐다.
충격적이었던 건, 이게 막 알파벳을 뗀 기초 수업이란 거다. 나도 한국에서 완전 기초 수업부터 한국어로만 강의했지만 말은 최대한 간단명료하게, 기호나 동작을 충분히 함께 사용하는 게 원칙이었다. 그런데 우리 선생님은 정상 속도로 줄줄 설명을 읊는단 말이죠. 예를 들면 '이 발음은 자음과 자음 사이에 있을 때는 S 소리가 납니다'를 프랑스어로 한단 말입니다.
학생들이 멍~ 하게 보고 있으면 스페인어로 설명해 주기도 하지만 어찌됐든 기본은 프랑스어다. 신기한 건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으면서 또 대~충은 알아듣는다는 거다. 어느 정도 스페인어와 프랑스어가 비슷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또 하나 충격적인 수업 방식도 이 선상에 있다. 교재에 수업 시간에 자주 사용하는 표현들, 이를테면 '들으세요', '따라 하세요', '이게 프랑스어로 뭐예요? 와 같은 문장이 나와 있고 이걸 선생님이 자주 사용하는지 학생이 자주 사용하는지 고르는 문제가 있었다. 추측할 수 있는 그림도 없었는데 이 문장만 읽고 무슨 뜻인지 맞춰 보라는 건데 이게 가능해? 응. 해 보니까 가능해...
들으세요
스페인어: Escucha (에스꾸차)
프랑스어: Écute. (에꾸떼)
어떻게 써요?
스페인어: ¿Cómo se escribe? (꼬모 쎄 에스크리베?)
프랑스어: Comment s'écrit? (꺼멍 세스크릿?)
영어와 차이를 생각하면 확실히 비슷해 보이죠?
잠깐, 너네 지금까지 영어도 프랑스어도 이런 식으로 공부했던 거니...? 그러니 유추가 전혀 불가능한 한국어를 공부하는 게 얼마나 어려웠을까.
방학 때 한 달간 공부했던 스페인어학원에서 이탈리아인들이 접수하는 걸 본 적이 있다. 그들은 A1 수업을 원했지만 담당자는 이탈리아인들은 A1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없다며 A2부터 시작할 걸 권했다. 우와, 두 언어가 얼마나 비슷하면 완전히 새로 배우는데 한 레벨을 건너뛰어? 내가 스페인어 한 레벨을 공부하는 데 얼마나 시간이 걸렸더라. 어찌나 부럽고 배가 아프던지.
그러니까 5개 국어씩 하는 유럽 애들을 심심찮게 보는 게 이런 이유에서였던 거다. 물론 언어 공부가 비슷하다고 다 쓱 잘하게 되는 건 아니고 어느 단계 이상을 넘어가려면 언어적 감각과 본인의 의지가 필요하다. 그래도 나와 같은 정도의 힘은 들지 않겠지.
유럽의 몇 나라, 특히 이탈리아, 포르투갈어, 스페인어는 서로 자기 나라 말로 말해도 어느 정도까지는 의사소통이 가능하지만, 동아시아의 세 나라, 한중일 같은 경우 한자 문화권이었기는 해도 해당 언어를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자기 나라 말로 말을 걸면 의사소통이 전혀 불가능하지 않나.
스페인어를 하는 걸로 프랑스어 시작이 조금은 수월한데 그렇다면 이탈리아어랑 포르투갈어는 어느 정도일지. 스페인어를 공부할 때 성수 일치에 엄청나게 많은 동사 변형에 너무 고생해 이제는 외국어를 더 공부하지 않겠다, 하는 거나 열심히 하자 마음먹었지만, 이제는 기회가 닿는다면 다른 유럽어들도 다 공부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