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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대초록 Feb 17. 2021

코로나가 바꿔 놓은 스페인 풍경

딱 작년 이맘때쯤이었다. 

중국과 한국에서 코로나로 난리가 났을 때 강 건너 불구경하던 유럽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진 건. 먼저 이탈리아에서 확진자가 폭증했고, 유럽 전역으로 퍼진 건 순식간이었다.


'감기 같은 걸 가지고 뭐 그리 호들갑이야' 하던 사람들은 '어어 이게 아닌데' 하다가 락다운과 함께 집에 갇혔다. 그렇게 코로나와 함께 봄여름 가을 겨울을 한 바퀴 돌았다. 


이제는 몸의 한 부분 같아진 마스크, 손소독제의 생활화, 온라인 수업, 비대면 환경, 사회적 거리두기 등 코로나는 전 세계 삶의 풍경은 완전히 바꿔 놓았다. 여러 곳이 비슷한 모습이겠지만 코로나로 인해 내가 살고 있는 스페인, 특히 말라가의 풍경을 어떻게 바꿔 놓았는지 이야기해보려 한다. 



1. 시에스타가 없어졌다


스페인 남부 안달루시아 지역의 대부분의 도시에는 시에스타 시간이 있다. 대개 2시부터 5시 사이로 식당과 카페를 포함한 많은 가게들이 이 시간에 문을 닫는다. 시에스타는 낮잠이라는 뜻의 스페인어인데 사람들이 이 시간에 통으로 낮잠 자는 건 아니고 긴 점심 겸 휴식 시간이라 보면 된다. 그리고 5시부터 다시 오후 영업을 시작한다. 


지금은 코로나 규제로 슈퍼나 약국 같은 몇 가지 필수 시설 제외 모든 상업 시설은 저녁 6시에 문을 닫는다. 따라서 저녁 장사를 할 수 없게 된 음식점과 가게들은 시에스타를 없애고 6시까지 이어서 영업을 하고 있다.


사실 스페인에서 생활하면서 시에스타 시간 때문에 애로 사항이 상당히 많았다. 여전히 한국 스타일로 12시 반에서 한 시 사이에 점심을 먹다 보니 오후 두세 시쯤 커피나 디저트가 당기는데 그때는 꼭 카페 문이 닫혀 있기 때문이다. 대여섯 시쯤 커피와 함께 간단한 간식을 즐기는 스페인 사람들은 불편하겠지만 오히려 나는 원하는 시간에 커피를 마실 수 있게 되었다.  


사진 출처: BBC


2. 통금 시간이 생겼다


2021년, 부모님이 정한 게 아니라 나라에서 정한 통금 시간이 있다는 사실이 믿어지시는지. 한국 유신 정권 때나 있던 그 통행금지 말이다. 이건 스페인뿐만 아니라 프랑스, 이탈리아, 영국 등 유럽의 꽤 많은 나라들에도 해당되는 이야기다. 시간은 자치지역별로 조금씩 다른데 안달루시아는 밤 10시부터 새벽 6시까지 통행이 금지된다. 


그렇게 개인의 자유를 강조하는 유럽에서 어쩌나 이런 수까지 두게 되었을까. 스페인은 유럽 내에서도 특히 밤문화와 파티가 발달한 나라다. 저녁 8시에서 9시쯤 저녁 식사를 시작하는 스페인의 밤은 쉬이 끝나지 않는다. 경각심 없는 젊은 사람들이 모여서 파티하고 음주가무를 즐기며 바이러스가 확산되는 일이 자꾸 생기니까 이런 극단적인 조치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저녁 약속을 잡을 수 없게 된 요즘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이런 식이다. 오후 5시쯤 테라스 카페에서 만나 차와  디저트를 먹으며 이야기를 나눈다. 6시에 카페 문을 닫으면 바닷가를 따라서 긴 산책을 한다. 술은 없고 걷기 운동이 추가된 건강한 만남이다. 



3. 테라스에서 담배 연기가 사라졌다. 


지난여름이 끝나갈 무렵 스페인 정부는 코로나 확산 방지 조치의 하나로 공공장소에서 흡연을 금지시켰다. 담배 연기를 내뿜을 때 나오는 비말을 통해 바이러스가 전파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스페인에서 정말로 질렸던 것 중 하나가 거리 흡연자들이었던지라 이런 조치가 개인적으로 반가웠다. 이게 이제야 금지되었다는 게 신기한 노릇이다. 


테라스에 잘못 앉았다가 옆 테이블의 담배 연기만 홀랑 뒤집어쓰다 온 , 버스 정류장의 담배 연기를 피해 그늘에도 못 서고 땡볕에 있었던 일, 걸으면서 담배 피우는 사람들을 가로지르는 일, 해변에서 여유로운 시간도 담배 연기로 망쳐버린 일 등, 일일이 나열하자면 끝도 없다. 특히 아이들과 함께 있거나 유모차를 끌면서 담배를 피우는 모습은 진심으로 경악스러웠다. 


이제는 담배 연기 없이 테라스에서 맑은 공기만 마실 수 있다!


출처: Mallorca daily



4. 볼뽀뽀를 안 해도 된다


처음 만난 사람이든, 친구의 남자친구든 사람을 만나면 무조건 해야 하는 볼뽀뽀 인사, 살루도(saludo)

코스타리카에 살며 이미 익숙해지기는 했지만 그때는 한 번만 하면 됐는데 스페인에서는 양볼에 두 번이나 해야 한다. 지금까지 수도 없이 했을 텐데도 할 때마다 늘 어색하고 가능하면 안 했으면 하는 살루도...


2m 거리두기가 생활이 된 코로나 시대에 볼뽀뽀가 웬 말이냐. 여러 유럽 국가에서 악수나 포옹, 볼뽀뽀를 금지하고 팔꿈치를 툭치며 인사할 것을 권장하고 있다


팔꿈치로 인사하는 스페인 총리, (출처: tribuna)


그럼에도 불구하고 밖에 나가면 마스크 낀 채로 할 사람들은 다 하더라. 그래도 살루도를 안 할 핑계가 생긴 건 너무 좋다. 



4.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고 다니는 사람들


커피를 한 손에 들고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들을 마주치는 게 특별한 일이 아닌 한국에 계시는 분들은 이게 뭐 별일인가 싶으실 것이다. 하지만 말라가에서 이런 도시적인(?) 모습을 보는 일은 흔치 않았다.


지금까지 여기에 살면서 커피를 손에 들고 걸어가는 사람들을 본 건 손에 꼽을 정도다.(마드리드나 바르셀로나 같은 대도시는 다를 수도 있겠다) 여기 사람들은 커피 자체를 즐긴다기보다는 사교생활을 하러 카페에 가고 커피를 마시기 때문인 듯하다. 


지난 일주일간 말라가에서 코로나 감염자 수가 급증하며 일주일간 식당, 카페를 포함한 비필수 시설은 영업을 중지해야 했다. 식당과 카페는 테이크아웃만 가능했다. 지난 일주일간 본 테이크아웃 커피잔을 들고 공원이나 바닷가를 산책하는 사람들의 모습은 지난 일 년 반 동안 본 걸 합친 것보다 많았다. 뉴요커처럼 커피를 들고 걷는 안달루시아 사람들이라니. 물론 커피를 들고 느릿느릿 걷는 풍경이 뉴욕이나 한국의 그것과는 사뭇 다르기는 하다. 



쓰고 보니 내 기준에서 그리 나쁘지 않은 변화들 같아 보인다. 그런데 이게 다 무슨 소용인가. 코로나로 인한 나쁜 변화는 오만 개는 넘는 것들. 좋은 것들 몇 가지 다 포기해도 되니 그저 얼른 코로나가 종식되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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