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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대초록 Feb 15. 2021

웃기지도 않는 유럽인들의 농담



두 달 전부터 매주 일요일마다 언어교환 모임에 나가고 있다. 영어를 연습하고 싶어 하는 스페인 사람들과 스페인어를 연습하고 있는 외국인들이 일주일에 한 번 만나 브런치를 하면서 이야기하는 모임이다. 


스페인어와 함께 영어도 연습할 수 있고 새로운 사람들도 사귈 수 있어서 꽤 만족스러웠다. 하지만 매번 새로 온 사람들이 들어오다 보니 첫 만남에 하는 대화 패턴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어느 나라에서 왔냐, 한국에서 왔다, 남한에서 왔냐 북한에서 왔냐, (남한이라고 해도 꼭 다시 한번 확인하는 건 뭐지) 남한에서 욌다. 그럼 그때부터 시작되는 북한에 대한 이야기. 또 하나는 무슨 일 하냐, 한국어 가르친다, (엄청 놀라 하며) 대체 누가 한국어를 배우냐. 왜 배우냐....


북한이 너무 신기해서 그럴 수도 있고, 한국어를 배우는 스페인 사람들이 있다는 걸 상상도 못 해봐서일 수도 있지만 어쩜 이렇게 한결같은지. 특히 북한 타령은 13년 전에 첫 유럽 배낭여행했을 때나 듣고 그 이후 아시아, 호주, 미국, 중남미를 여행할 때는 딱히 듣지 못해 옛날 질문이라 생각했는데, 이걸 2021년의 스페인에서 이렇게 자주 들을 줄이야. 


오늘 만난 아일랜드에서 온 영어 선생님은 농담이랍시고 시종일관 이런 드립을 던졌다. 몇 가지만 언급하면 이런 식이다. 


"어디에서 왔어요?"

"프랑스요."

"프랑스? 거기가 어디죠? 아, 옛날에 엄청 잘 나갔다 망한 그 나라?

(프랑스 아저씨는 웃겨서 뒤로 넘어간다)


"한국인들은 어떤 종교를 믿어요?"

"한국은 국교가 따로 없어요. 불교와 기독교가 25퍼센트 정도고 그 외에 가톨릭, 소수 종교나 무교죠."

"그럼 나머지는 김정일교를 믿나 보죠?" 


(프랑스인 아저씨가 자기 집에서 모로코도 보인다는 말을 하자)

"마루에코(Marueco, 스페인어로 모로코)가 어디죠?"

"Moroco요'

"아~ 그 옛날에 당신네들 식민지였던 나라?" 


옆에 앉은 프랑스 아저씨는 재미있어 죽겠다는 표정인데 나는 전혀 웃기지 않았다. 이런 고정관념과 편견으로 무장한 농담을 하는 사람은 인종, 성적 소수자에 대한 차별과 혐오도 농담이라는 이름 하에 서슴없이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피로함을 안고 집으로 걸어오는 길, 문득 아시아인 친구들이 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적어도 그들과 만나자마자 북한 얘기를 할 일은 적을 테니까,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소리를 듣고 눈을 똥그랗게 뜨고 그게 말이 되냐는 표정은 짓지 않을 테니까. 


고국을 떠나 사는 외국인들에게 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00인'. 이 타이틀만 떼어버려도 어느 나라의 대변으로서 말하는 시간을 줄이고, 사람대 사람으로 서로의 서사를 알아가고 더 깊어지는 시간을 벌 수 있을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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