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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열대초록 Feb 13. 2021

좋아하는 장소를 지키기 위해서



한국에 있을 때 제일 좋아했던 식당 겸 카페가 영업을 종료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눈 깜빡하면 모든 게 휙 바뀌는 서울에서 2006년부터 14년 넘게 같은 자리를 지켜온 곳이었다. 봄이면 건물 앞 라일락 나무에서 나는 꽃향기가 길 건너까지 날려왔다. 기다린 나무로 된 바 테이블, 말린 채소와 과일청이 담긴 유리병, 농부들의 이름이 적힌 메뉴가 있는 곳이었다. 


2008년 처음 알게 됐을 때부터 얼마나 많은 사람들과 함께 혹은 혼자 그곳을 드나들었는지 모르겠다. 서울 살이 만만치 않을 때, 마음에 위로가 필요할 때마다 그곳의 민트색 문을 열고 들어갔다. 코스타리카에서 귀국 후 그곳을 걸어갈 수 있는 거리로 이사한 다음엔 일주일에 몇 번씩 들르기도 했다. 내겐 서울의 산소 호흡기 같은 곳이었다. 


한결같이 같은 자리에 같은 색깔로 있었던 곳이 없어진다니 추억의 한 페이지, 아니 수십 페이지가 사라지는 것만 같았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모든 테이블의 모양과 스탭들의 얼굴, 화장실까지 선명히 그려지는데. 그곳이 왜 문을 닫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다. 시기상 코로나로 인한 경제적인 이유 때문이지 않을까 조심스레 추측해볼 뿐. 


작년 3월 스페인의 전국적인 락다운 이후 많은 가게가 버티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그중에는 말라가에서 처음으로 단골을 삼고, 나중에 친구나 가족들이 오면 데리고 가야지 생각했던 카페도 있다. 봉쇄가 풀리고도 한참 문이 닫혀 있어 지나갈 때마다 언제 문을 여나 기웃거렸는데 어느 날 간판이 바뀌어 있었다.


어쩐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커피 맛있다고, 멋진 공간이라고 혼자만 생각하지 말고 직접 말해 줄 걸. 구글에 평점도 남기고 리뷰도 쓰고 할 걸. 그렇게 했다고 그들이 입은 경제적 손실이 사라지는 건 아니겠지만 조금 더 계속해 볼 힘에 1g은 보탤 수 있지 않았을까. 






2월에는 요가원 수업이 온라인 수업으로 전환됐다. 코로나 확산 방지 규제가 워낙 자주 바뀌다 보니 체육 시설이 문을 닫을 확률이 있어 아예 한 달간 안전하게 온라인으로 돌려버린 거다. 온라인으로 일하는 것도 벅찬데 몸과 마음을 쓰는 요가까지 온라인으로 하고 싶지는 않았다. 한 달간 요가 앱으로 수련하고 3월부터 다시 요가원에 나갈까 하다 마음을 고쳐 먹고 온라인 수업에 등록했다. 코로나 때문에 충분히 휘청거린 우리 요가 선생님이 더 이상 지치지 않도록 응원하는 마음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말라가 코로나 확진자가 증가하며 이 주간 모든 비필수 업종들이 문을 닫았다. 식당과 카페는 테이크아웃만 가능하다. 산책을 나가면서 일부러 좋아하는 카페에 들러 커피를 산다. 산책이 끝나면 단골 타코집에서 채소 타코를 포장해 집으로 돌아온다. 조금 비싸도 비건 식품점에서 장을 본다. 요가할 곳을 찾는 사람이 있으면 바로 우리 요가원을 추천하고 선생님의 연락처를 알려준다. 


내가 좋아하는 장소들이 늘 그곳에 있을 수 있게 작은 힘을 보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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