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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란현 작가 Oct 26. 2023

환불할까

환불할까. 로그인을 시도했다. 분실한 비밀번호까지 찾아가며 홈페이지에 들어갔더니 환불이 안 된다. 정확하게 말하면 환불하기 위해 직접 방문을 해야 한다. 네 번 남았다. 오늘 환불하러 간다면 가는 김에 차라리 레슨을 받는 게 낫겠다 싶다. 


2주에 한 번씩 가보자고 마음먹고 6월부터 '다시' 시작했다. '다시'가 중요하다. 2003년부터 하다 말다 반복했기 때문이다. 최근엔 2019년 1년간 봄, 여름, 가을까지 레슨을 받다가 겨울학기 부분 환불을 받았었다. 코로나 때문이었다. 교실에서도 입으로 부는 악기는 연주할 수 없었다. 음악 시간에 악기 부는 모습 보여주는 낙으로 배우는데 아쉽게 되었다. 


내가 배워서 어디에 써먹겠나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배우러 가는 그 시간이 나를 위한 시간이다 싶은 마음도 들었다. 지난주에 초고도 쓰고 강의 준비하느라 가지 못했으니 오늘은 반드시 가야 한다. 가기 싫은 마음이 들기 시작하자 불평거리만 찾게 되었다. 인원이 많아 나에게 돌아오는 레슨 시간이 길지 않다는 게 여름학기 때와는 다른 점이었다. 선생님이 연주하는 모습 봐주기 전에 내가 연습 시간 충분히 누리면 되는데 말이다. 


겨울방학 땐 어떻게 하지. 12회 중에 대학원으로 대구가 있는 동안에는 3회 이상 수업에 빠지게 되니 레슨비 아깝다는 생각도 하게 되었다. 목요일에 회식 잡히면 또 못 간다. 이렇게 빠질 일이 많은데도 계속해야 할까. 


한 번 하기 싫은 마음이 스며 들자 머릿속에는 하기 싫은 이유만 나열하기 시작했다. 갈까 말까 고민하는 사이 병원 결제 문자가 떴다. 알아봤더니 둘째가 병원에 가서 독감 검사를 받은 거다. 아침까지 괜찮았는데 무슨 일인가. 어쨌든 차는 애들 아빠가 병원에 가져갔고 나는 플루트를 가지 않아도 되는 합당한 이유가 생겼다. 막내가 혼자 집에 있을 수 없으니 집을 지켜야 하는구나. 


퇴근시간이 지났다. 5시 30분까지 가야 한다. 집에 가니 내 차가 주차되어 있네. 플루트 가방을 챙겼다. 2주 전에 열어보고 그대로 놔둔 가방이었다. 차 키, 마실 물, 핸드폰 챙겨서 출발했다. 롯데마트에 문화센터 입구에는 겨울학기 모집 광고가 붙어 있다. 레슨 하는 방으로 들어간다. 악기를 꺼냈고 30분간 이곳저곳을 불러 봤다. 왼쪽 팔이 아프다. 손가락이 자연스럽지 못하다. 배우다 말았다 했기 때문에 악기를 든 자세가 틀어진 것 같다. 


기초 레슨 곡집 순서대로 훑은 후, <크리스마스에는 축복을> 쉽게 편곡된 곡도 연주해 보았다. 오늘 배워서 언제 써먹나 무대가 없다고 생각했는데 교실에 악기를 갖다 놓고 수시로 부르겠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틈새 시간을 살려야 한다.


환불하려고 했던 마음이 연주하겠다는 생각으로 변하는 데 몇 분 걸리지 않았다. 현장에 와야 환불이 된다는 문구 때문이다. 현장까지 가려면 내가 레슨받지 뭐하려 환불하겠냐 싶었다. 그리고 무대는 주어지는 게 아니라 내가 만드는 것이다. 


플루트뿐이겠는가. 마음이 왔다 갔다, 갈팡질팡하는 일 많다. 책쓰기 무료특강 들을 때에는 나도 작가가 되겠다며 등록을 해볼까 생각하다가도 옆에 있는 누군가가 네가 무슨 작가를 하냐, 지금 하고 있는 것이라도 똑바로 해라라고 말하면 화 내면서도 수긍하게 된다. 또한 작가는 되고 싶고 배우려니 시간 할애하는 게 어려운 경우도 있다. 


시작을 했으면 계속해야 한다. 2003년 플루트 시작했다. 기분이 내키면 하고 기분이 가라앉으면 때려치웠다. 그러다가 몇 년 후 다시 배우고 싶은 마음 올라왔다. 레슨 등록했다가 귀찮아지면 빠지게 되었다. 이렇게 하다 말다 20년인데 실력은 초급이다.


글쓰기/책 쓰기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시작은 하지만 계속 쓰는 사람 되기는 어렵다. 바로 가시적인 성과가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배우는 시간조차 포기한다. 나중에 평생 무료 재수강이라는 것 생각이 나면 다시 강의를 신청한다. 듣다 말다, 쓰다 말다 반복하면 실력은 초급이다. 내가 플루트 초급인 것처럼 말이다. 20년 동안 꾸준히 연주를 익혔다면 어땠을까. 음대 생까지는 아니라도 교회 연주자나 교사 관현악단은 되지 않았을까 상상해 본다. 


3년째 자이언트 북 컨설팅 강의 듣고 있다. 3개월째 글빛백작 라이팅 코치로 살고 있다. 적어도 글쓰기/책쓰기 만큼은 플루트 꼴이 되지 않으려고 변수를 만들지 않는다. 할까 말까 생각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다. 무조건 공부하고 글 쓰고 책 내야 하는 상황이다. 


내가 노력해서 꾸준히 참여하는 게 아니라 강의 내용이 좋아서 TV 드라마 대신 줌에 입장한다. 이제는 TV 프로그램이 뭐가 있는지조차 관심 없을 정도다. 이렇게 나에게 몰입할 수 있는 영역이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 자이언트 없으면 무슨 낙으로 살았을까 하는 마음까지 들 정도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볼까? 글빛백작과 자이언트 안에서 플루트 연주할 수 있는 방법은?  겨울학기 등록할까 말까 고민을 한방에 없애는 방법은 하나다. 무대! 그리고 부끄럽지 않도록 연습하는 시간! 무대는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작가 백란현이자 플루티스트 백란현이라고 자체 광고 좀 해야겠다.


그러면 새 악기 사야 하는데.


https://blog.naver.com/true1211/2232473082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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