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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란현 작가 Oct 25. 2023

멍이 들었다




지난주 토요일 밤 9시. 수서에서 부산행 SRT에 올랐다. 창 측 자리를 선호하는데 늦게 예매를 해서 복도 쪽에 앉게 되었다. 지나가는 여자 승객이 쇼핑백을 어깨에 메고 지나가면서 내 왼쪽 팔을 쳤다. 옷을 사면 넣어주는 가방, 옆으로 길쭉한 종이 가방이었다. 걸어가는 속도도 있었으니 강도가 나름 있었다. 

그 여자는 나랑 부딪쳤는지 몰랐을 터다. 통로가 좁으니 본인 짐을 들고 갈 때 앉아 있는 사람을 배려해야 할 텐데. 잘못하면 얼굴 부딪칠 수도 있는 상황일 거다.

부딪친 통증은 없는데 멍이 들었다. 가방 모서리만큼 좁은 면적의 멍이 연둣빛을 띈다. 내 팔에 멍이 들었고 멍이 사라지는 과정을 보고 있지만 부딪힌 사람은 모른다는 것. 

나는 상처를 받았지만 상대방은 모르는 일 허다하다. 반대로 상대방은 나로 인해 상처를 받지만 나는 상처 준지 모르는 일 또한 많을 터다.

최근 교실이 소란스럽다. 5학년 2학기를 절반 지난 상황에서 학생들을 집중시키기 벅찰 때가 있다. 나의 목소리가 커진다. 학생 전체를 보다 보니 여기저기서 수다를 떨기도 하고, 다음 시간 교과서를 꺼내놓지 않는 경우도 있다. 수업 종 울리면 화장실 급하다고 나가기도 한다. 공부시간인데 우유를 책상 위에 던지면서 바로 세우는 놀이도 한다. 우유는 터져 있고, 터진 우유 그대로 방치해 두고 집에 간 친구도 있다. 

다양한 아이들을 만난다.  아이들이 나에게 상처가 되기도 하구나 느낀 날이다. 그런데 학생들 입장에서는 다르겠다 생각도 해본다. 선생님의 큰 목소리로 인해 학생들 중에는 스트레스 받는 경우도 있겠구나. 

각자 상처받은 것만 생각한다. 나도 그렇다. 그리고 감정을 넣어 해석한다. 

멍은 우연히 일어난 일이다. 찢어진 것도 아니고 병원에 갈 일도 아니다. 그런데 쇼핑백 메고 지나가던 여자가 자꾸 떠오른다. 부딪쳤다고 한마디 했어야 하나 생각도 든다.

교실에서 5학년 학생들이 소란스럽게 움직이는 건 당연하다. 내가 소란스럽다고 봐서 그렇지 어쩌면 친구관계가 좋다는 증거일 수도 있다. 터진 우유 내가 좀 치워도 되는 거다. 다만 우유를 남기고 간 학생들을 안타깝게 생각해야 하는 거다.

상황은 동일한데 내가 어떻게 보고 감정을 섞느냐에 따라 심각도가 달라진다. 그만큼 나에게도 스트레스로 다가오기도 한다.

잠잠하게 돌아볼 때다. 심각한 일을 사소하게 여기는 것도 문제가 되겠지만 객관적으로 봤을 때 큰일도 아닌데 감정을 넣어 크게 부풀리는 것도 에너지 낭비다.

소란스럽다고 여긴 교실은 더 이상 소란스럽지 않으며 팔의 멍 자국은 얼굴이나 눈에 난 상처가 아니라 다행한 일이다.

왜 이렇게 피로가 쌓였나 생각해 보니 감정 낭비를 많이 해서 그런 것 같다. 글을 쓰면서 낭비했던 감정도 되돌려 본다. 내일 가볍게 시작해야겠다.


https://blog.naver.com/true1211/223233186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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