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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란현 작가 May 10. 2024

1학년이 좋아! 마흔다섯, 철없이 살아가는 이유

우리 반은 19명이다. 21년 교직 생활 중에 가장 인원이 적다. 점심시간에 실무원 선생님께 말을 건넸다. 예전에 32명, 35명일 때 어떻게 가르쳤는지 신기하다고.

19명이라 좋은 점 있다. 한 명씩 이름을 부르기도 수월하고, 발표 시킬 때 짧은 시간 동안 모두의 목소리 들을 수 있다. 한 명씩 특징 파악도 잘 된다.

마칠 때 사랑해라고 속삭이고 가는 **

밥 먹을 때 선생님이 먼저 일어나길 기다리더니 **

쉬는 시간마다 A4용지 가져가서 그림 그리는 **

내가 앉은 의자 옆까지 와서 집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는 **

오늘 생일이라고 말해주고 가는 **

체험학습 가서 어제, 오늘 얼굴 보지 못한 **

도서관 간다길래 걸어가라 했더니 대답하고는 바로 뛰어가는 **

화장실에서 비누 거품 놀이하느라 늦게 들어오는 **

아침에 엄마한테 혼나고 왔다면서 혼난 이유는 양치 때문이라고 웃는 **

...

모두가 내 아이들이다.


아이들과 오늘 시 쓰기 시도했다. 쉽지 않을 거라고 예상했다. 나의 성급한 도전이 아이들 한글 쓰기에 대한 호기심을 방해하는 것은 아닌지, 교육과정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지도한다고 욕 듣는 것은 아닌지, 부담된다. 그래도 얇은 책이라도 어서 한 권 만들어 주고 싶은 게 내 마음이다. 하루라도 빨리 학급 운영비로 주문하고 싶어서.

내 주변이 이야깃거리다. 아이들이 들려준 이야기를 메모한다. 메모가 아이들 시에 녹아들어 가길 바라면서.


오늘 5교시 수업이다. 5교시 하는 날마다 아이들이 지쳐 하니, 만들기, 색칠하기, 놀이 위주로 구성하는 편인데도 지쳤나 보다. 갑자기 묻는다. 오늘은 5교시까지냐고. 교실 환경 미화에 관심이 없는 나는 시간 안내나 시간표를 부착하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시계를 볼 줄 몰라서인지 매 순간 묻는다. 지금 몇 교시에요?

" 지금 5교시야. 6교시가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이니?

3학년에 형이 있는 **이가 말한다.

"우리 형은 목요일이 싫대요. 6교시라서."

"5,6학년이면 매번 6교시야. 1학년이 얼마나 좋은지 알겠지?"


1학년이 좋아!

지금을 즐겨야 해!


얼굴은 아기 티를 벗지 않은 친구가 어른처럼 말하니 얼마나 웃음이 나던지.

이렇게 살 수 있어서 좋다. 내 나이 마흔다섯이지만 철이 덜 든 이유는 초딩들과 매일 놀아서인 것 같다.

우리 반에 주니어 작가랑 같은 이름의 친구가 있다.

"저한테 작가라고 하는 것 같아 부담돼요."

"너 작가야! 우리 반 모두 작가거든!"

그렇게 말하면서 주니어 사인회 당일 찍은 사진을 보여주었다. 수업 흐름이 예상외로 흘러가긴 하지만

"와! 선생님! 박** 작가님 옆에 선생님이 있는 게 젤 신기해요!"

"나도 작가거덩."

"얘들이 날 모르네! 2학년 올라가고 나서 유명한 백란현 작가 못 알아봤다고 후회하지 마라!"

"선생님 이름 네이버에 검색했는데  안 나와요. 구글에 검색하면 나와요?"

"백란현 말고 박란현으로 검색한 거 아니야?"

(나를 믿지 않는 것 같다.)

이렇게 이야기 주고받으며. 5교시 부채 색칠하기는 끝났다.


꼬맹이들과의 대화 속에 내 자랑도 했다가 "망했다" 소리 하지 말라고 연설도 늘어놨다가, 오늘 행복하다고 오버액션도 했다가, 갑자기 노래도 틀었다가. 오늘 하루 금방 지나갔다.

이렇게 몇 자 끄적이고 있는데 부채 "망했다"라고 했다가 다시 작업? 해서 가장 멋진 부채로 뽑혔던 친구가

방과 후 교실 갔다가 교실에 들렀다. 내가 또 보고 싶었나 보지!

급식소 가는 길, 앞 학교에서 가르쳤던 녀석이 나를 먼저 알아보고 먼저 인사하는 걸 보면 애들한테는 내가 잘하는 교사라는 점 증명한 것 같다.


지금 딱 좋다. 1학년! 그렇다고 내년에도 하겠단 소리는 아님!

원하지 않았지만 책임을 다하려 한다. 나의 아이들. 한 명이라도 소외되지 않도록 챙기려 한다. 주고받는 대화 속에 사랑을 주는 교사이고 싶다. 삶의 방식이 다양한 것처럼 교육법도 선생님마다 다를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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