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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백란현 작가 Jun 09. 2024

케이크

[백작] 책쓰기 전문과정_글쓰기 모임 여름학기 1회_30분 글쓰기

엄마, 아빠는 참외 농사를 지으셨다. 하우스 참외 모종을 키우셨다. 일손이 부족할 땐 동생과 나도 일을 도왔다. 아침저녁 거적을 벗기거나 덮기도 했고 접붙인 모종을 키울 때 필요한 비닐 화분에 흙도 넣었다. 초봄부터 참외도 수확해야 하고 가을부터는 내년 농사를 준비해야 하니 사철 내내 쉬는 날 없었다. 

기념일? 챙긴 적 없었다. 매일이 같았다. 함께 살았던 할아버지, 할머니 생신이 봄이었으니 그때 삼촌, 사촌 모여서 식사 한 끼 하는 게 기념일의 전부였다. 

대구에서 사시는 숙모가 케이크를 사 오셨다. 촌에서 베이커리 구경해 본 적 없는 나는 할아버지, 할머니 생일 때만 먹을 수 있는 케이크를 기다렸다. 언제 맛을 볼 수 있는지 기다렸다. 사촌들도 있고 동생도 함께다. 내 입에 들어갈 조각은 크지 않았다. 

초등학생 고학년이 되니 동네 친구들 한 명씩 생일파티를 했다. 초대받는 순간 케이크 생각이 났다. 선물은 뭘로 할지 고민스러웠다. 용돈도 없었고 동네 문구점도 보이지 않으니 사용하지 않았던 공책을 선물로 가져갔던 것 같다. 친구 집에서 생일 축하는 뒷전이고 케이크에 눈이 갔다. 크기가 작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생일이 다가오고 있었다. 11월 7일. 친구들 모두 돌아가며 생일파티하고 내 생일까지 기억하지도 못하는 가을이다. 집에선 내 생일이라고 해서 케이크를 마련하지는 않을 터. 생일을 기억해 주는 것과 상에 미역국 올라오면 감사한 일. 꾀를 냈다. 생일 파티 열어달라고. 지금까지 한 번도 열어주지 않았으니까. 나도 친구들 초대하고 싶다고. 

엄마는 꽈배기 도넛을 만들었고, 과자도 준비했다. 근처에 빵집은 없었을 테니 읍까지 나가서 케이크를 사 온 모양이다. 참외를 팔지 않으면 돈이 없었던 시절. 생일상 차려주었고 동네 친구들, 언니, 동생들 초대한 덕분에 생일 축하 노래도 듣고 집집마다 가져온 선물, 공책과 연필도 받았다.

파티는 경험을 했고 가만히 보니 케이크는 나눠 먹어야 하는 상황. 다음 해 생일부터는 친구를 초대하지는 않았다. 대신 엄마에게 요구했다. 케이크 값을 달라고. 케이크를 사서 혼자 먹겠다는 심보다.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 아빠는 양껏 드시지는 않았다. 동생과 내 입에 거의 다 들어갔다. 생일날만 맛볼 수 있었다. 

내 생일 나흘 뒤 11월 11일은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이었다. 두 분이 기념일 챙기는 걸 보지 못했다. 결혼한 날짜 정도로만. 가만히 생각해 보면 결혼 1주년이었을 때 내가 태어난 지 4일째였다. 시부모 모시면서 결혼기념일 챙긴다는 건 쉽지 않았을 터다. 그 당시 챙겨야 한다는 생각조차도 못했을 수도.

케이크. 2016년 10월부터 11월까지. 셋째 낳고 3일에 한 번 사 먹었다. 파리바게뜨 화이트초코가 올라간 케이크를 좋아한다. 아침에 남편이 첫째 학교에 보내고, 둘째 유치원에 데려다준 후에는 케이크와 카페라테를 사 왔다. 어릴 적 양껏 먹고 싶었던 마음이 서른일곱이 되어서 떠올랐던 것 같다. 

세 달 전 아빠 생신이었다. 케이크를 사서 촛불을 켰다. 아빠에게 생일 축하 노래를 불러드렸고 아홉 살 된 막내가 촛불을 껐다. 아빠가 기억하는 마지막 생일파티였으리라. 

사람과 추억을 떠올리는 음식은 다양하겠지만 유독 케이크 생각이 많이 난다. 축하할 일 있으면 카카오 선물로 보내게 된다. 축하에 대표적인 음식이라서 그러겠지.

빵집에 가는 횟수를 줄였다. 예전보다 늘어난 식비에 빵값까지 보테긴 어렵겠다. 또한 다이어트에 적은 밀가루니까. 

주중에 1학년 입학한 지 100일. 100일 파티를 하자고 아이들이 난리다. 절대 파티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대신 나 혼자 집에서 화이트초코를 맛볼 테다. 입학식부터 업무 챙긴 나, 1학년 100일 내가 가장 많이 축하받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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