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뷰 : 꿈의 제인

불행함에 대한 이야기

by 얼그레이

여러 팸(family)를 전전하는 가출 소녀 소현, 그녀는 자신의 첫 번째 말이 거짓이었다고 회고할 정도로 스스로의 감정/생각에 솔직하지 않은 인물이다.


타인으로부터 사랑받기 위해 사랑을 했고, 버림받지 않으려 살아온 그녀는 세상과 가까워지는 것이 무엇보다 어렵기만 하다.


그녀를 받아주는 곳은 같은 고아원 출신의 '정호 오빠', 하지만 그도 소현을 떠나게 되고 소현은 충동적으로 자살을 결심하게 되는데 그곳에서 ‘제인’이라는 몽환적인 어른을 만나게 된다.


이 영화는 행복을 갈구하던 소녀가 끝끝내 불행한 상태로 허덕이는 삶을 조명하고 있다. 트랜스 젠더, 성매매, 가출 팸 등 일상적이지 않은 소재를 이용해, 우리가 갈구하는 꿈, 발 붙이며 사는 현실이 조화되는 길을 조심스럽게 드러내고 있다.


하지만 그 길은 그리 희망적이지는 않은 그저 흩날리는 바람, 말 없는 강물처럼 그렇게 살아가는 것 그 자체였다.


미러볼 씬이 자주 등장한다.


소현은 병욱이 이끄는 가출 팸에서 생활하고 있다. 병욱은 처음 온 이들에게 혹독한 신고식을 치르게 하여 복종하게 만드는 제왕적 인물. 소현은 이런 팸이 지옥 같고 가혹할 지라도 버려지는 것이 더 두려워 비참하게라도 살고자 한다.


어느 날 활기찬 지수 언니가 새로운 팸으로 들어온다. 소현은 그녀에게서 처음으로 가족의 느낌을 가지게 된다. 지수의 첫번째 목표는 돈을 모아 팸 생활에서 벗어나는 것, 두번째 목표는 사랑하는 여동생과 함께 살아가는 것이라고 소현에게 이야기 한다.


소현을 데리고 알바를 뛰는 지수

이내 지수가 탐탁치 않은 병욱이 신고식을 펼친다. 갇혀 있던 지수를, 살려달라고 외쳐대는 지수를 소현은 방조하는 쪽에 섰다. 팸에 반기를 들고 서는 것은 자신이 버려지는 쪽을 택하는 것과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지수에게는 여동생이 있기에 지수 쪽에 서도 자신은 이래저래 버림받을 것이라고 생각한 소현은 우물쭈물하다 시간을 흘려보낸다. 결국 탈출을 시도하던 지수가 사망에 이르는 사건이 발생한다.


10대 소녀 소현이 이 대목에서 어떤 감정을 느꼈는지는 잘 드러나지 않는다. 다만 지수를 땅에 묻고 패밀리들이 하나둘씩 찢어지면서 다시금 혼자가 되었을 때, 그때서야 비로소 응어리진 감정이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스스로가 지수인 척을 하고 팸들에게 연락을 돌리며 만나 달라 이야기하는 장면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소현은 그저 달리기를 하면서 자신을 받아줄 곳을 찾고 있었다.


서로를 알아가는 소현과 제인

그리고 돌아온 것은 정호에게서 버려진 뉴월드라는 모텔방. 소현은 자신과 비슷한 감정을 느끼고 있을 또 다른 자신을 위해 편지를 쓴다. 극단적인 선택을 하던 찰나, 몽롱한 상태에서 제인을 만나게 된다.


불행한 사람은 불행한 사람을 알아본다고 했던가. 첫 만남부터 소현은 제인을, 그리고 제인도 소현을 알아본다. 외로움에 빠져있다는 점이 그들이 가진 공통적인 특징이었지만, 제인은 소현과 달리 누구보다 주체적이고 독립적이라는 점이 달랐다.


제인은 영화에서 누구보다 어른스러운 모습을 드러낸다. 함께 이겨내는 삶이 소중하고 누구도 소외되지 않아야 한다며 불행을 대하는 태도는 늘 관조적인 점이 인상깊었다.


소현은 자신을 부정해서라도 불행을 숨기고자 했지만, 제인은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함으로써 가끔씩이나마 찾아오는 행복을 자신의 것으로 살아내고 있었다.


시시해지지 않으려는 제인

소현이 약해져 있을 때 제인이 구원자로 등장하지만 소현이 성장할수록 제인은 소멸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로웠다. 손에 닿으면 사라져가는 이상처럼. 소현은 제인을 자신을 구해 줄 어른으로 느끼지만, 소현이 다가설수록 제인은 필연적으로 약해지는 운명의 거리를 유지하고 있었다.


그리고 영화의 말미는 초반 소현이 내뱉었던 말. 나는 거짓말이 최초의 기억이고 사람들과 가까이 있는 법을 모르겟다는 말을 제인이 트랜스 젠더 바에서 그대로 내뱉으며 소현을 위한 노래를 불러준다.


영화를 보고 와 닿은 점은 결국 모든 사람은 혼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제인이 누구였든, 내 안에 잠들어 있는 또 다른 자아이기에 누구든 부를 수 있고 누구든 상상하여 내 것으로 살아낼 수 있다.


내 안의 빛을 발견해내는 것, 그것을 살아내는 것, 오랜 불행 속에서도 가끔씩 내 것 같은 충만한 행복이 아닐까 싶다.


제인.. 그는 누구였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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