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고 강렬하게
날씨가 평소와 달랐다. 갈까 말까를 고민했다. 비 오는 날씨는 아니었다. 폭우라면, 우중런을 생각하며 조금은 내켰을 것이다. 부슬비들이 날려와 창에 맺히는 날씨였다.
가는 길에 비를 좀 맞았다. 바람이 불면서 추위에 노출되는 게 느껴졌다. 비는 멎는 듯 멎지 않았고, 하늘은 개는지 개지 않는지 확실치 않은 날씨였다. 먹구름 사이, 뜨는 해도 기대하기 어려웠다. 흐린 날씨가 계속될 것 같았고, 오늘의 러닝도 예측 가능해 보였다.
여느 때처럼 크루와 함께 뛰었다. 시작은 산뜻하지 않았다. 비가 와서 그런지, 한 걸음 내딛을 때마다 밑창 소리가 크게 들렸다. 대열 안에서 고무 소리는 불협화음으로 뒤섞이고 있었다. 비인지 땀인지 계속해서 맺혔고 무거운 느낌을 주고 있었다. 온몸이 축축해지는 것을 느꼈다.
난 데 없이 뛰고 싶어 졌다. 지금도 뛰는데, 진짜 뛴다는 느낌.
리셋 버튼을 누른 것처럼 대열에서 벗어나기 시작했다. 그리고 진짜로 뛰기 시작했다.
막 답답함을 벗어나서였을까. 감각이 예민해지는 것을 느꼈다. 꽃가루인지 미세먼지인지 씻겨 내려간 공기는 또렷한 풍경으로 다가왔다. 나무가 그렇게 푸르고 도드라져 있는지 몰랐다. 푸르뎅뎅한 색감들은 내게 찐 자극을 주었다.
나무 아래 하얀 꽃들이 떨어져 있었다. 적당한 위치로 흩뿌려져 있는 게 신비로웠고, 다시 피어날 듯 새초롬하게 얹혀 있는 모습이 앙증맞았다. 다가서니 향이 났다. 수명을 다하고 내쉬는 마지막 숨일까. 밟지 않으려 피했다녔지만 나는 자꾸 그 향이 맡고 싶어졌다.
슬며시 기록을 보니 최고 기록을 달성하고 있었다. 이제껏 이 속도로는 뛰어본 적이 없었다. 지금의 호흡, 나의 걸음걸이 하나하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최고 속도를 낼 때 누구나 그러겠지만, 호흡이 깊고 가빠진다. 조금은 가쁜 숨을 내 쉬는 것을 느꼈다. 규칙적인 걸음에 맞춰 호흡을 쪼개고 싶었다. 습습 하하.. 습습 하하. 앞의 ‘습습’이 다소 불안정하긴 했어도 규칙적으로 두 박자 씩 네 박자를 걸어두자 패턴이 생겼다.
처음에는 어려웠다. 상체가 안정적이지 못하고 계속 흔들렸기 때문이다. 코어 운동의 필요성을 되새겼다.
어느새 얼굴은 땀과 비로 가득했다. 명치에서부터 열기가 올라오고 있었다. 오버 페이스를 했지만 한계상황에서의 나를 경험해서였는지, 얼굴은 내내 웃고 있었다.
녹기 전의 아이스크림을 먹은 느낌이랄까. 짧고 강렬한 러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