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Alte Liebe Feb 21. 2022

SM 로맨틱 코미디의 패러독스

넷플릭스 모럴센스 Moral Sense 유감 


다수는 소수의 취향과 생각을 존중하고 그들이 개인적 행복을 추구하는데 불만을 가져선 안됩니다. < 교양시민101>의 첫번째 챕터에 나올만한 당연한 얘기죠. 그런데 그 뻔한 얘기를 서현이 채찍을 들고 펨돔을 연기하면서 한다면, 약간은 앗! 그렇다면 한 번 봐볼까? 하는 생각이 들게 되는 법!  넷플릭스의 <모럴센스>를 봤습니다. 


사실 저는 SM 로맨틱 코미디라는 이 영화가 너무 지루하고 뻔해서 끝까지 보지는 못했는데, 그러니까 아마도 이 글의 목적은 “왜 SM과 로맨스와 코미디는 모두 재미있을 거라고 기대되는 것들인데 이걸 합쳐놨더니 재미없는 SM 로맨틱 코미디가 되었나” 라는 패러독스를 이해하는 것이 될 것 같습니다. 


1. 이 영화가 재미없는 이유를 설명하는 가장 편리한 방법 중엔, 이 영화가 정치적인 올바름과 무해함을 추구하다보니 재미가 사라졌다고 주장하는 것이 있습니다. 영화를 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게, 감독이 관련 게시판을 드나들며 공부를 열심히 했으며, 여성주의적 입장을 고수하는 듯한 노력을 하고 있다는 것이고, 사실 도덕교과서에는 별로 재밌는 점이 없기 때문에, 이 분석은 일면 맞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모두 다른 취향을 갖고 있고, 사랑의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며, 어쩌고 저쩌고 … 감독은 (이준석이 적대시하고 있는) 성인지감수성이 뛰어난 사람인 것 같고 - 요즘 저는 이준석이 싫어할만한 사람들에게는 대체로 호감을 가지고 있는 상황이고 -, 감독이 싫어하는 직장 내에서의 성희롱과, 타인의 성적 취향에 대해 이러쿵저러쿵 하는 사람들을 마찬가지로 싫어하는 입장이니까, 나름대로 재밌게 볼수도 있지 않았겠습니까?  사실 좀 뻔한 얘기긴 하지만, 그것도 못지키는 사람도 엄청 많으니까, 이런 얘기가 하고 싶었을 수도 있겠죠. 그것 자체야 뭐 대단히 나쁜 일은 아니겠지만.. 


이 민감한 소재를 잘 다루고 싶어서 꽤 여러모로 노력하고 있는 감독은 그 와중에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중요한 사실 하나를 잊어 버리고 맙니다.  자기가 SM 얘기를 소재로 들고 왔고, 뭐라고 포장을 하든 이건 결국은 ‘섹스’ 에 대한 얘기라는 점이요. 



2. 우리나라의 대중문화나 인터넷 게시판에서 SM의 밈은 섹스의 자리에 심각치 않은 폭력을 대신 넣을 수 있다는 편리함 때문에, 섹스가 나서기 좀 불편한 자리를 빠르게 대체하면서 확산되었습니다. 조신했던 여친이 첫날밤에 채찍을 들고 나타나는 신동엽 주연의 SNL스케치 같은 식으로요. 


이런 패턴은 섹스에 대한 엄숙주의가 팽배한 우리나라에서 분명한 실용적 쓸모가 있었기 때문에 빠르고 넓게 퍼졌고, 아마도 제 생각에 우리나라는 오버그라운드 매체에서 SM을 농담의 소재로 가장 많이 활용하는 나라들 중 하나가 아닐까 싶어요. 분당샘물교회 밈이 대중적 농담이 된다는 것 자체가 사실 그렇게 흔한 일일 것 같지는 않거든요. 


게다가 SM은 힘과 권력을 상대에게 넘겨주고 신체적 안전을 포함한 모든 것을 포기하는 포기와 통제의 게임이기 때문에, SM의 판타지는 서로에 대한 완벽한 신뢰, 상대방이 내 모든 것을 가졌다는 환상, 내가 상대방을 전적으로 소유했다는 믿음같은 것들로 종종 구성되곤 합니다. 이런 것들은 우리가 완벽한 로맨스를 이야기할 때 같이 기대하기도 하는 것들이죠.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를 비롯한 상당히 많은 여성향 섹스 컨텐츠들이 이러한 SM의 판타지를 기반으로 완벽한 로맨스를 구축하는 방식을 보면 알 수 있잖아요. 이런 컨텐츠들에서 옷장 속의 SM 액티비스트들은 처음의 쓰레시홀드만 넘길 수 있으면 곧바로 완벽한 연인으로 기능하게 됩니다. 


3. 하지만 SM은 모든 사람들이 꿈꾸는 로맨스의 다른 이름도 아니고, 부먹/찍먹 같은 단순한 취향의 문제도 아닙니다. 세상에는 지배와 복종과  신체적 고통과 속박을 통해 성적 쾌락을 얻는 사람들이 있고, SM은  어떤 사람들에게는 섹스 자체를 성립할 수 있게 하는 필수 요소이거나,  최소한 섹스를 더 재밌게 만드는 매우 중요한 어떤 것입니다. 그리고 SM에 관한 컨텐츠를 만드는 사람들은 그 주춧돌을 함부로 움직여서는 안됩니다. 


이 얘기를 경쾌하고 발랄한 신선한 로맨틱 코미디로 풀고 싶었던 감독은, 남녀 관계에 있어 매우 중요한 섹스의 문제를  ‘그저 남들과 조금 다른 취향’을 가진 남자가 마침내 이해받을 수 있는 짝을 찾는 이야기로 만들면서 불편할만한 부분을 막연하게 덮어버립니다. 그러면서 이 드라마에서 해결해야 할 가장 중요한 문제를  ‘다름으로 인해 고통받는 마이너리티’의 문제로 바꿔버리죠. 아니, SM activists 들이 우리나라에서 변태로 낙인찍히고, 마이너리티로 고통받지 않는다는게 아니라, 남녀 관계에서 어떻게 흥분하고, 섹스하는가는 단순한 이해심의 문제가 아니지 않습니까? 


단적인 예로, 드라마에서는 남자의 성향을 이해 못하고 헤어진 남자의 전 여친을 다소 악의적으로 그리고 있는데, 섹스 성향이 안맞는 남자랑 사귈 수 없는게 어떻게 이해심의 문제겠습니까. 그냥 안되는건 안되는 거죠. 


4. 서현이 채찍을 휘두르건, 하이힐로 남자배우의 등을 밟아주건 어쩌건 서현이 맡은 여주인공은 처음부터 SM에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그녀는 그냥 상대 남자에 대해 관심이 있을 뿐이에요. 왜 이 남자가 이런걸 좋아하는지 이해 못하지만, 상대도 좋아하고, 본인도 좀 스트레스가 풀리기도 하고, 의외로 좀 재능도 있는 것 같으니까 하고 있긴 하지만요. 남자는 눈치가 없는 건지, 상대방이 즐기든 아니든 상관이 없는 건지, 그냥 자기가 구축한 판타지 속에서의 관계에 만족합니다. 


저는 앞에서 이 드라마의 감독이 이 예민한 소재를 들고 정치적으로 올바른 영화를 만들려고 엄청 노력했다고 이야기했지만, 결과적으로 감독은 SM 액티비스트들을 무고한 마이너리티의 자리에 두기 위해, SM이 남녀가 함께 즐겨야 하는 섹스 장르의 세부 카테고리라는 사실을 망각해버립니다. 그 결과 이 영화는 정치적으로 올바르고 권장할만한 이야기조차 되지 못해요. 왜냐하면 서현이 채찍을 휘두르고, 욕도 하고, 하이힐을 신고 남자를 밟고 있건 어쩌건, 이건 기본적으로 좋아하는 남자의 욕망에 여자가 휘둘리다가 결국 관계를 원하는 여자의 의지에 남자가 맞춰주기로 하는 흔한 얘기일 뿐이거든요. 


채찍을 휘두르는 여자의 이미지 자체는 강한 여성의 이미지로 활용될 수 있겠지만, 거기 여자의 즐거움이 없으면 그건 전혀 주체적인 여성상이 아닙니다. 생각해보면 남자에게 고분고분하고 순종적인 여자를 소비하는 판타지보다 별로 나을 것도 없습니다. 아니 가사노동을 채찍노동(?)으로 바꾼다고 해서 여성의 상황이 훨씬 나아졌다고 할 수 있을리가요. 


5. 똑같이 직장내에서의 SM을 다루는 세크리터리 같은 영화가 일상과 판타지를 교묘하게 섞으면서 폭발하려고 하는 두 사람의 성적 욕망을 어떻게 그려내고 있는지 보세요.  섹스는 할 때나 볼때나, 상호적인 관계여야 훨씬 재미있습니다. 저는 이 드라마가 아예 방을 잡고 채찍을 휘둘러대도 세크리터리보다 밍숭맹숭한 이유가 정치적 공정성과 올바름의 추구 때문이라고 생각되지 않아요. 할랄로 도축된 고기로 만든 스테이크가 맛이 없을때 도축을 위생적으로 했기 때문이라는 핑계를 댈 수 없는 것처럼, 공정하고 훌륭한 시민의 윤리를 담고 있다고 해서 꼭 재미없는 걸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자기가 다루려는 소재에서 제일 맛있는 부분을 찾아내는 건 좋은 감독/요리사의 기본입니다. 


자주 하는 비유인데, 사과가 빨갛다고 해서 사과 껍질로 파이를 만들면 안됩니다. 채찍과 목줄과 서현의 페티쉬 의상은 이 소재의 빨간 껍질일 뿐입니다. 즙이 흐르는 속살을 파이지에 올리지 않는다면, 그건 사과파이라고 불러선 안되겠지요. 


매거진의 이전글 <굿모닝 인디애나 - 더 프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