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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te Liebe Feb 21. 2022

솔직히 악당은 아닌거같은 사람들의 유독성을 이해하는 법

애플 TV <모닝쇼>


 -


1. 


저는 종종 “언니는 페미니스트는 아니”라는 말을 듣거나, “20-30대 페미니스트를 이해 못한다.” 라든가 “세상 편하게 살아서 좋겠다.” 라는 등의 말을 듣곤 하지만 (따옴표는 다 직접 들은 말로 아무리 사소한 일도 다 품을 수 있는 넓은 마음 속에 담고 있었음) 스스로를 페미니스트라고 생각하고 있기는 합니다. 


사실 저런 말 들으면 좀 억울하긴 하지만, 아니라고 우기기 좀 머쓱한건, 저는 인생의 꽤 긴 시간을 여성들에게 적대적인 직장과 사회환경에서 나름대로 잘 살아남은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까 불평등하고 종종 적대적인 환경에서 살아남는 과정에서 분노를 다스리고, 꽤 많은 것들을 양보하고, 티내지 않게 위협들과 불쾌한 상황을 사뿐사뿐 피하는 방법으로 나를 보호하는 동시에 남녀불문 모두에게 좋은 후배이자 동료로 남는 걸 사회생활이라고 부르던 때가 있었고 전 확실히 그쪽에 재능이 좀 있었어요. 부끄러운 얘기를 굳이 꺼내는건, 우리중에 상당수, 기성세대라면 아마 더 높은 확률로 저와 비슷한 상황일거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린 사실 바뀐 세상의 기준을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2. 




애플 TV의 <모닝쇼>는 최고 시청률을 자랑하는 모닝쇼 진행자인 알렉스 (제니퍼 애니스톤)에게 청천벽력같은 소식이 전해지면서 시작됩니다. 자신과 함께 오랫동안 호흡을 맞춰온 동료 밋치(스티브 카렐)가 미투의 가해자로 지목되면서 방송 하차가 결정되거든요. 둘은 환상의 호흡을 자랑하는 콤비이고, 밋치는 알렉스를 아메리칸 스윗하트로 만드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준 동료이자 사적인 친구이기도 합니다. 믿었던 친구가 저지른 파렴치한 행동, 최고의 시청률을 자랑하는 쇼에 닥친 위기, 여기 피가 보글보글하는 젊은 여성 앵커(리즈 위더스푼)가 투입되면서 온갖 일들이 생기는데…


결론부터 말하자면, 모닝쇼 1시즌은 제가 본 드라마들 중에 가장 정확하고 심오한 방식으로 성정치를 다루고 있는 작품입니다. 수많은 담론들과 판단들, 그 중에서 우리가 정말 이야기해야할 것들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교한 그림들이 모두 들어있어서 사실 우리나라의 모든 국민들이 다같이 이 드라마를 보고, 서로 충분히 대화할 수 있다면 바람직한 선에서 성정치와 미투에 대한 모든 복잡한 논의들에 대한 적절한 합의점을 찾을수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어요. 


3. 


드라마가 시작되고 사건이 막 터진 시점에서 시청자는 밋치에 대한 판단을 내리기가 좀 어렵습니다. 밋치는 카리스마가 있고, 거침없는 알파메일이며 유머감각과 능력이 있는 사람입니다. 주인공인 알렉스와는 오랫동안 좋은 친구이기도 했죠.  짖궂은 농담을 하고 가끔 선을 넘는 것 같기도 하지만, 정말 못참아줄 정도로 형편없는 인간은 아닌 것 같습니다.


에피소드 하나를 들어보자면, 끔찍하고 비극적인 사건 현장에 파견된 알렉스는 방송 중에 눈물이 쏟아질 것 같은 위기에 처합니다. 리포터가 극단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건 해서는 안되는 일이죠. 미치는 알렉스를 진정시키려고 하면서 케겔 운동을 하면 눈물이 멈출거라고 충고합니다. 부적절한 충고처럼 보이지만, 아무튼 알렉스는 밋치의 조언으로 잠시 웃으며 위기를 벗어나고 무사히 방송을 마치게 되죠. 


아무것도 아닌 농담, 사소한 부적절함, 용납할 수 있는 선의 안팎을 오가는 에피소드들이 한개씩 툭툭 던져지면서 우리는 밋치가 어떤 사람인지 조금씩 알게됩니다. 대체로 유능하고 재미있고, 꽤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것 같고, 크고 작은 조직을 자기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구축해서 물 속에 살고 있는 물고기처럼 편안하고 자연스러운 사람들이요. 


그들은 권력이나 매력으로 자기에게 완벽한 조직을 구축합니다. 자기의 농담이 먹히고, 자기가 일하는 스타일이 통하는 조직. 이런 사람들은 미투운동 전까지는 아무런 문제도 겪은 적이 없습니다. 


아무튼, 미투고발과 함께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지게 된 밋치는 그건 강간이 아니었고, 상대방도 합의한 것이라는 주장을 이어나갑니다. 밋치는 매력적인 남자이고, 권력도 있죠. 아마 자발적으로 그와 관계를 할 사람들도 꽤 있었을거에요. 


어쩌면 무고를 주장하는 그의 말이 사실인건 아닐까? 나쁜 데이트, 보상받지 못한 애정이 종종 미투로 변신하기도 하쟈나? 그가 매력적인 남자이기 때문에 우리의 혼란이 시작됩니다.  솔직히 그가 혐오스러운 로저 에일스나 도무지 용서할수 없는 와인스타인은 아니잖아요. 


4. 


이 드라마는 가해자나 피해자의 인간 자체를 보자거나, 어떤 사람을 평가할때 모든 점을 감안해야한다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쇼는, 가해자가 자기에게 맞게 구축된 환경에서 얼마나 수월하고 아무렇지도 않게 피해자를 착취할 수 있는 지에 집중합니다. 


밋치는 스스로가 와인스타인같은 쓰레기와는 다르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이미 오염된 물속의 최상위 포식자입니다. 상대 여성이 적극적으로 자기를 원하지 않더라도 자신과의 관계를 통해 얻는 보상이 있을거라는 걸 지나치게 과신하는거죠. 어떤 세상이 한 사람의 욕망과 편의에 의해 만들어진 상황에서 벌어지는 일들에는 관점의 차이가 당연히 존재합니다.


왜 미투와 성폭력과 관련한 논의는 이렇게 깔끔하게 끝나지 않는지 생각해보면, 강간범이라는 꼬리표는 너무 끔찍해서 상대방이 아주 명확한 반대를 표하지 않았기 때문에 멍청하게도 단지 상황을 잘못 이해한 남자에게 붙이기에는 좀 꺼려지는 면이 있지 않나 싶어요. - (이게 맞는 태도라는 건 아니지만) 최대한 이해력을 확장해보자면 저는 강간범과 성폭력범에 대해 형법이 관대한 경향을 보이는 데도 비슷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윤택이나 와인스타인 같은 빼박 개자식들을 제외한 보통의 남자들은 (잘못은 했다 치더라도) 그런 꼬리표를 붙일 정도는 아니지 않나? 라는 막연한 거부감이 들 수 있겠죠.


 그 거부감은 22살에 막 백악관에 들어온 인턴을 미국의 대통령이 성적으로 착취했을때나, 후보 위주로 돌아가는 캠프의 스탭이 위계에 의한 성착취를 주장했을때도 비슷하게 발현되는 것 같습니다. 이게 단지 가해자를 인간적으로 동정하는데서 끝나면 그래도 나을텐데, 이런 태도는 결국 피해자에 대한 매도와 2차가해로 이어지게 되죠. 


5.  


김건희씨는 미투가 충분히 보상을 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라고 했지만, 사실 미투는 보상을 해줄수 있는 권력이 존재하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그게 위계의 본질이거든요. 김건희씨의 발언이 미투에 대한 수많은 틀린 말들 중에 가장 심각한 언급이라고 생각하는 것도 그것 때문이에요. 남녀 공히, 우리를 억누르고 있는 건 잘못된 위계이고, 미투운동의 흐름이 정말 깨부수고 싶어하는건, 상황과 사정이 다르고 각자의 동정받을 이유가 있는 남자들 자체가 아니라 이러한 환경인 것입니다. 


밋치는 한 젊은 직원을 성적으로 착취하면서 자기가 하는 일이 별로 떳떳하지는 않다는 걸 알고 있습니다. 자기중심적이기는 하지만 완전히 미친새끼는 아닌 그가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건, 상대방도 이 관계를 통해 얻는 보상이 있다는 생각 때문이죠. 승진이든, 좋은 조건이든, 혹은 최고 권력자의 인정이든 어떤 방식으로든 보상해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사람들만이 위계에 의한 성폭행을 저지를 수 있고, 피해자의 입을 오랫동안 다물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오랜시간을 지내오다가 사회가 변화하는 흐름에 따라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임계점을 마침내 넘은 것이 미투 운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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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니까 김건희 말이 맞는 면도 있어. 라고 고개를 끄덕이지 마세요. 그건 그냥 여러분이 김건희만큼이나 미투운동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일 뿐입니다. 우리는 미투운동을 모욕하지 않으면서도 가해자들을 인간적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에 대한 인간적인 이해와 동정이 피해자에 대한 가해로 나가지만 않는다면, 사실 본인이 부지불식간에 구축한 위계의 희생자로 인간적 동정심을 가질 수는 있지 않겠습니까? 


쓰다보니 이게 드라마 추천인가뭔가 모를 글이 되어버렸지만, 아무튼 드라마는 꼭 보세요! 


저는 사실 ,오피스의 마이클이 뭐 눈치가 없어서 그렇지 나쁜 사람은 아니쟈나 라고 생각할 정도의 정신나간 스티브 카렐의 팬이기 때문에, 그가 프레데터의 연기를 하는 것을 보는 것이 꽤 괴로웠지만… 아무튼 특히 김건희 말이 맞는 면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은 꼭 보시기 바랍니다. 위에도 말했지만 정말 예민하고 정교하고 충격적으로 잘 써진 드라마입니다. 


그리고 그가 짜증나게도 중년미남으로 나오지요... 중요한 건 아니겠지만...(또르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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