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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lte Liebe Jul 01. 2022

어른의 사랑 , 마침내. <헤어질 결심>

배운 변태들이 만든 연애영화만큼 좋은게 또 있을까! 

헤어질 결심 최고네요. 영화가 아가씨처럼 호사스럽거나 복수 시리즈 처럼 뜨거운건 아니지만 엄청 다이나믹하고 어른스러운 로맨스입니다. 세상에 배운 변태들이 만드는 연애영화만큼 좋은게 또 뭐가 있겠습니까!! 
 
 스포일러 없이도 상당히 장점을 많이 말할 수 있는 영화입니다. 스포일러 거의 없으니까 마음 편하게 읽으셔도 됩니다! 




1. 


주연 배우 둘다 굉장히 훌륭한데, 탕웨이는 탕웨이처럼 훌륭합니다. 일단 한국어와 중국어 쓸때의 리듬이 달라지면서 생기는 콘트라스트가 너무 좋네요.  한국어가 서툴기 때문에 생기는 외부자의 순진무구함과 아름답고 성숙한 중국어로 사랑과 죽음에 대해 많은 경험을 쌓은 지적인 어른의 느낌을 오가면서 저정도로 능수능란한 연기를 해낼 수 있는 다른 배우가 있을거 같지 않습니다.  그냥 최고! 


 탕웨이가 당연하게 훌륭하다면 박해일은 놀랍게 훌륭합니다. 제가 별로 박해일에게서 이렇다한 인상을 받아본 적이 없어서인 이유도 있겠지만.. 뭐라고 해야하지? 기본적으로는 양식화된 헐리웃 고전배우 연기를 하는데 그 와중에 한국 경찰물 특유의 구질구질한 생활감이 살아있기도 해서 생기는 충돌이 굉장히 신선합니다. 


깐느에서부터 히치콕 스타일이나, 현기증 얘기가 같이 꽤 많이 언급되는 것도 - 물론 소재나 줄거리가 거의 즉자적으로 히치콕 스릴러들을 떠올리게 하는 면이 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박해일이 모럴 코어가 붕괴된 제임스 스튜어트 연기를 너무 그럴듯하게 해내기 때문이기도 할거 같아요! 




 2.


깐느 감독상을 받는 등 해외 평가도 좋지만, 한국어 문어와 구어의 뉘앙스를 확실히 구분하는 사람들이 보면 훨씬 더 재밌을게 확실해요. 영화의 배경은 21세기 한국이고, 아이폰이나 애플워치가 중요한 플롯 디바이스로 계속 등장하는데도 클래식 느와르/ 로맨스의 느낌이 강한데, 여자쪽의 한국어가 서툴기 때문에 발생하는 상당히 양식화된 방식의 문어체 대화가 그런 느낌을 강화하는거 같거든요 (보신 분들은 무슨 말인지 다 아실) 심장에 처음 떨어지는 폭탄같은 "마침내." 와 "At last" 가 같을 수는 없겠죠. 


두 주인공 사이를 흐릿하게 막아서는 언어의 벽과 피의자/ 경찰이라는 위치로 인해 둘의 소통은 상당히 제한된 상태로 시작됩니다. 외국인들과 연애해본 경험이 있는 분들은 이해하실 것도 같은데, 특히 둘 중 한명의 언어가 충분히 좋지 않을때는 다소 선택지를 갖고 진행하는 연애시뮬레이션 같은 면이 생기지 않나요? 한국 영화 데이트 장면 중 가장 잘 찍은거 같은 아름다운 사찰, 말 그대로의 '그린듯한' 우중 데이트 장면도 그런 느낌을 강화하구요. 


 TTS 와 간단한 문장으로 오고가는 서툰/ 쉬운 한국어의 짧은 이야기들과 주인공들의 행동들로 그들은 우리가 사랑이라고 부르는 것의 원형에 더 가까워집니다. 제한된 소통은 각자가 생각하는 사랑에 대한 환상으로 주인공들을 더 활발하게 달려가게 하죠. 


 그러고 보니 이것도 현기증의 변주군요! 박찬욱은 비주얼 페티시스트였던 히치콕보다 더 텍스트적인 변태이기 때문에, 그 환상과 언어의 관계가 좀 더 타이트하구요. 


3. 


이 이야기를 성숙한 어른의 사랑으로 만드는 건 도덕주의와 책임감 입니다. 탕웨이가 연기한 서래가 이야기를 끌고 나가는 주도적인 힘을 제공하지만,  박해일의 붕괴되는 도덕적 내면은 이야기를 모으는 응집력과 공감의 내심을 만들어주죠.  피의자와 사랑에 빠져서 도덕적 붕괴를 겪는 형사는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한편으로 박해일의 갈등은 매우 흔한 것이기도 하니까요. 사실 인간은 그다지 ‘죽음이 갈라놓을때까지’를 기한으로 하는 일부일처제에 잘 맞는 동물은 아닌 것 같지 않나요? . 압도적 이혼율과 비혼율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우리 중 대부분은 평생 한명 이상의 파트너와 관계를 맺습니다. 
 
   그래서 꼭 불륜 같은 흔한 말을 쓰지 않더라도, ‘어른’들의 사랑이란 어느 정도의 도덕적 붕괴를 상정하게 되는 면이 있습니다. 그게 예전에 했던 굳은 사랑의 약속이건, 현재 지켜야 하는 사회적 책임이건, 본인의 도덕적 기준이든, 새로운 사랑은 뭔가를 붕괴합니다. 불륜을 미화하자는게 아니라,  형사-피의자의 관계가 일반적인 어른의 사랑얘기로 자연스럽게 튀어오르는 조건이 생각보다 자연스럽게 형성되면서 대부분의 관객들은 이 이야기를 자기 이야기로 쉽게 받아들일 수 있었을 것 같습니다. 대부분의 좋은 예술들이 그렇듯이요. 





강한 도덕기준을 가진 사람이 그렇게 붕괴되어 가는 내면 대신에 얻고 싶어하는 건 뭘까요? 돌봐주고, 지켜봐주고, 떠나지 않고, 기억해주는 것?  하지만 도덕적 붕괴의 내상에 사로잡힌 사람에게는 어떤 것도 가능해보이지는 않죠. 그래서 진짜 사랑을 다루는 컨텐츠들이 다들 쫌 ' 미친 맛'이 생기는 거 같아요. 박찬욱은 진짜 미친 맛을 보여주기엔 너무나 먹물 함량이 높은 분이시기 때문에, 매우 은유적이고 우아하고 서늘하게 그걸 해냅니다. 끝까지 아름답네요. 
 


<사진 바로 뒤에 미세 스포 한줄 있음> 





'그' 장면에선 어쩐지 원전의 노심에 냉각수를 공급하고 제어봉을 삽입하는.. 그런 장면이 떠올랐습니다.  반감기 2만5천년의 사랑..? (농담임) 





-- 스포 끝 --



4. 


그 밖에.... 


 - 부분 부분 꽤 웃기고, 작정한 듯한 유머도 좀 있는데, 관객들이 잘 못웃는 듯한 느낌.. 아무래도 문어체로 웃기고 싶으면 좀 더 명확한 싸인이 필요할 것 같아요! 


 -  영화에서 아이폰 쓰면 범인이 아니다는 클리쉐가 있는데, 깨진다고 봐야할거 같습니다. 스포일러라고 할수도 없는게, 다들 아이폰을 쓰지만 시체는 있으니까 아이폰을 쓰는 누군가 죽이긴 했겠죠..… ._.)a 


- 하나마나 한 말이지만 영상이 굉장히 아름다워요. 한 장면 안에서의 역동성도 매우 커서, 기본적으로 배우들 감정에 기대가는 연극적인 느낌의 작은 영화인데도 지루하거나 늘어지는 면이 전혀 없습니다. 예전 헐리웃 영화에서 프로젝션 스크린 놓고 찍던 느낌으로 카메라 고정하고 찍은 드라이빙 씬들 너무 로맨틱하구요. 예고편에도 나왔던 우중절간 장면도 완전 끝내줍니다. 
  

- 키스신 하나 없지만, 엄청나게 섹시하고 육체적입니다. 손바닥의 촉감, 입술의 감촉, 함께 내쉬는 호흡의 교환으로 이렇게 물리적이고 육체적인 사랑의 세계를 구축할 수 있다니. 영화란 정말 너무 굉장하지 않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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