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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욱정 Sep 08. 2019

우리는 늘 서로를 지탱한다

생의 마지막에 남는 것


동양철학에서는 우주 만물이 생장수장(生長收藏)의 원리에 따라 변화한다고 말합니다. 글자 그대로 ‘탄생하고 성장하고 수렴하고 갈무리되는’ 순서를 거친다는 뜻입니다.


이 생장수장의 사이클은 멈추지 않고 반복됩니다. 쉬운 예로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이 순환하는 모습을 들 수 있습니다. 겨울의 끝자락에 우리는 봄이 다가올 것을 믿습니다.


인류의 역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는 생을 마감하지만 다른 곳에서는 새로운 생명이 태동합니다.

역사는 그렇게 수많은 죽음과 탄생의 사이클을 반복하며 이어져 왔습니다. 거시적인 관점에서 보면 죽음은 인간사에서 흔한 일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한 사람의 죽음은 그와 마음을 나누었던 사람들에게는 우주만큼 커다란 슬픔으로 다가옵니다.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냈을 때 슬픈 이유는 무엇인가요? 우리를 가장 슬프게 하는 것은 그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입니다. 슬픔에 담긴 기본적인 정서는 그리움입니다.


그런데 그 슬픔 속엔 두 가지 빛깔이 있습니다.

우리는 소중한 사람이 떠나면 그와 함께 보냈던 행복한 시간을 떠올립니다. 웃고 떠들며 정을 나누었던 시간들. 함께 지낸 세월이 길수록 쌓인 추억도 많을 것입니다. 그 기억들은 떠올릴 때마다 우리를 슬프게도 하지만, 마음 깊숙한 곳에 따뜻하게 남아서 우리를 살아가게 하는 힘이기도 합니다.

슬픔의 다른 한 쪽은 어두운 잿빛을 띠고 있습니다. 후회입니다. ‘더 잘할걸..’  ‘그때 난 왜 그랬을까..’ 소중한 사람의 빈 자리를 실감하고 나서야 밀려오는 미안함과 후회는 오래도록 우리를 힘들게 하기도 합니다.



소중한 이가 떠난 자리엔 그리움이 들어선다



사람은 일생에 걸쳐 많은 가치들을 추구하고 소유하며 살아갑니다.

인생의 여정을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가는 동안, 나무의 나이테가 하나씩 늘어나듯 한 사람의 안에는 많은 것들이 켜켜이 쌓입니다. 보고 들은 것, 경험한 것, 취한 것, 잃어버린 것..

잘 살았든 못 살았든, 부자로 살았든 가난하게 살았든 관계없이, 각자의 삶의 흔적을 새기다가 생을 마무리하게 되는 건 모두 똑같습니다.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을 때 우리에게 남아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삶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로 글을 시작한 이유는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나라는 사람의 곁가지를 다 걷어낸 후 가장 안쪽에 남아 있는 건 무엇인지. 나를 나로서 존재하게 하는 것은 무엇인지. 이승의 마지막 문 앞에 서서도 손에 꼭 쥐고 놓지 않을 것은 무엇인지.



저는 그것이 ‘소중한 사람들과의 관계’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와 맺은 관계는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우리 안에 고스란히 남습니다. 탄탄하든, 느슨하든, 엉켜있든, 끊어져있든 말이지요.

특히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각별하고 끈끈한 관계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니 그 이후에도 나의 존재를 증명하는 징표로 영원히 남게 됩니다. 그런 소중한 관계를 만드는 일이 평생에 걸쳐 우리가 하는 작업인 것입니다.



관계는 시공간을 초월하여 영원히 남는다.



정신건강의학 전문의 정혜신 박사는 저서 <당신이 옳다>에서 “사랑 욕구가 일생동안 쉬지 않고 안정적으로 공급되어야 피폐해지지 않고 살 수 있다. ··· 나와 또다른 존재 간에 공감적 관계를 유지하는 일은 삶의 동력원을 확보하는 일이다” 라고 이야기합니다.



앞서 다루었던 나 자신과의 관계는 마음의 기초체력이라 볼 수 있습니다. 한편 타인과의 관계, 특히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는 우리를 먹여 살리는 에너지원에 해당합니다.


둘 다 마음이 건강하려면 필수적으로 충족되어야 하는 요소입니다.

기초체력이 약하면 금방 지칩니다. 작은 일에도 상처받고 주저앉게 됩니다. 에너지원이 없다면 삶을 지속할 수 없습니다. 마음이 점점 시들어 갈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금 이 순간 내가 살아있다는 건 누군가가 나를 단단히 지탱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마찬가지로 나도 언제나 누군가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우리는 의식하든 의식하지 않든, 늘 서로를 지탱하고 있습니다.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산책은 혼자서 가는게 편하다. 그러나 혼자 산책하면 외롭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가 이 문장을 통해 '인간은 혼자 있을 때 편하리라 생각하지만, 이내 타인과의 소통을 바라게 되는 존재다'라는 깨달음을 이야기하려 한 게 아닐까합니다.

사람들은 혼자 있기를 바라면서도 멈추지 않고 댓글을 달고 메시지를 주고받습니다. 스마트폰 속 세상으로 자꾸 빠져드는 것은 오히려 끊임없이 타인과 연결되고픈 욕구의 표현입니다.



자주 얼굴보고 만나는 가까운 사람들이 우리의 마음건강도를 결정합니다. 가족, 친구, 동료들과 좋은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건 내 마음 속 곳간을 든든하게 채우는 일입니다. 때아닌 기근이 닥치더라도 양식이 가득하다면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금방 다시 일어날 수 있습니다.



마음 곳간을 채우는 삶의 방식은 무엇인지, '나'와 '너'의 관계를 중심으로 살펴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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